brunch

에필로그

코드와 캔버스: 미술사조와 프로그래밍의 만남

by jeromeNa

르네상스부터 팝아트에 이르기까지 미술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을 살펴보면, 하나의 명확한 패턴이 드러난다. 새로운 사조는 결코 진공상태에서 탄생하지 않으며, 항상 시대적 맥락과 이전 사조에 대한 반발 또는 발전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중세 교회의 폐쇄적 권위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르네상스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화폭에 담아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단순히 아름다운 작품이 아니라,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사고가 전환되는 시대정신을 구현한 혁명적 선언이었다.


예술의 중심지 또한 시대의 권력 구조와 함께 이동했다.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시대를 거쳐 루이 15세 치세에 들어서면서 귀족 중심의 살롱 문화가 번성하며 예술의 중심축이 프랑스로 이동했다. 로코코 양식의 화려함과 우아함은 이러한 귀족 문화의 산물이었고, 앙투안 바토의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는 그 시대의 정취를 완벽하게 포착했다.


20세기에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예술계에도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전쟁을 피해 많은 유럽 예술가들이 영국과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예술의 중심지가 대서양을 건너게 되었다. 뉴욕은 새로운 예술의 메카로 떠올랐고,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라는 독창적인 미국적 양식이 탄생했다.


팝아트 이후부터는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행위예술, 포스트모더니즘, 네오팝, 스트리트 아트, 디지털 아트 및 AI 아트 등 “정의될 수 없는 시대”로 개인성, 매체 실험, 사회 참여 등 많은 예술이 등장한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각 지역과 시대만의 독창적인 예술가들이 존재했다.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르네상스 정신을 북유럽의 정밀함과 결합시켰고, 한스 홀바인은 초상화를 통해 새로운 사실주의의 경지를 개척했다. 바로크의 선구자 카라바조는 극적인 명암법으로 종교화에 혁신을 가져왔고, 스페인의 벨라스케스는 「라스 메니나스」 (시녀들)를 통해 회화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네덜란드의 렘브란트는 빛과 그림자의 마술사로서 인간 내면의 깊이를 화폭에 담아냈다.


AD_4nXc53dmymzI9HHMyI--z1zyOWsc18o4VH5kqzpYwhEufUe0O5YZKcgl4VpI8kQpC4ALpQ3sKbXLwrYXgr8fo8L3iM8HRrXTFt__O6SfRHHrPekurfVrVkQNWqxX8XuE2NfwEIjUr?key=GdOjhPNd0mJvh694QQNh9_nX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Self-Portrait...)>, 1500, Oil on panel, 알테 피나코테크(뭔헨, 독일)


AD_4nXeOOhFD7NfggcU9BlVcsZG895m5x-aSaL8z-UFY8PWdjZI3vD2ibC6wUVOOn_Vw8JGpx1ne-CZhgfI3mLAURskXmSINl9k8vyR-koLbdEezynDr2q4_xuQGtLfqp4KKXmDWGIJl9w?key=GdOjhPNd0mJvh694QQNh9_nX 한스 홀바인, <대사들(The Ambassadors)>, 1533, Oil on oak, 내셔널 갤러리


AD_4nXc3d0s_q8cJcMwpMPwhELAre9EGTnmPMGTkmftPc0cnFBbek27qMReVtlIsVNDCtEVTlUWpmUkf4qjoGP46yVVyDWPi13HNMmaPoLJlEiyIyUQ9GC1NZDQqSv08KtNfkHAMqcyqww?key=GdOjhPNd0mJvh694QQNh9_nX 카라바조, <성 바울의 개종(The Conversion of Saint Paul)>, 1600–1601, Oil on canvas,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AD_4nXe3QG99LGoJjwDikSmiCkDs_jVFlbSdFyd-DR5kqSoojXwaSJRZ13EJ0wZLjQ7gKhLljKR54CG_DVfh_ZUINK7Ghlj7B8eMpKq_0h1GGJWe5_T4xhA6P4g0gQ70El0Ysr_tGvKxdA?key=GdOjhPNd0mJvh694QQNh9_nX 렘브란트, <야경(The Night Watch)>, 1642, Oil on canvas,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AD_4nXf_NVI83cff1UKZGvlcnNJUKW9wON4XnJYWVR9sUUn9vn3yO3Vm7ReShixlYBkO9NKsrf5bwmwKc2Wb612JzXQ50roiTtYXQm4Q-OyRvrG0Vr9acqv_YqG1EMic6u32nzCMzz3uzQ?key=GdOjhPNd0mJvh694QQNh9_nX 디에고 벨라스케스, <라스 메니나스 (Las Meninas)>, 1656, Oil on canvas, 프라도 미술관


19세기 후반 후기 인상주의와 함께 등장한 아르누보는 특히 흥미로운 사례다. 이 양식은 회화보다는 건축과 장식예술에서 더욱 꽃 피웠다. 스페인의 안토니 가우디는 자연의 유기적 형태를 건축에 도입하여 사그라다 파밀리아 같은 걸작을 남겼고, 오스트리아에서는 빈 분리파가 독자적인 아르누보를 발전시켰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황금빛 화폭과 알폰스 무하의 우아한 포스터 디자인, 그리고 에곤 실레의 강렬한 표현주의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시대의 미감을 구현했다. - 개인적으로 무하 작품을 좋아하지만, 전체적인 큰 흐름을 기준으로 하였기에 제외하였다. -


AD_4nXd6h0zxgLCgvmX-t9udy2kyavi6xbBXIzNyDSw790ojUdopGfiChqvirEimSnwrl5imhrNzj3XZgwXOsdOPTOabCRsasX2EmupY8ZaFokewomRvNJVLp6VU1doQeqni9iAHm3tKyw?key=GdOjhPNd0mJvh694QQNh9_nX 구스타프 클림트, , 1907–1908, Oil and gold leaf on canvas, 벨베데레 미술관(오스트리아 빈)


AD_4nXfhU7-YcBQWJ66cGgp77jMzjTNrV6cPOnaI3udbuolMlGklFgI9I5T43Q-XTq9QPPD7_R6r0VmaswCpfE5u2uZVcX2kHUwIpfU6uZfRrVaM8TXB5ynyAfKAIPKEUg80O-SLKKzNJg?key=GdOjhPNd0mJvh694QQNh9_nX 알폰스 무하, , 1896, Lithograph on paper, 무하 재단 또는 프라하 무하 미술관


AD_4nXfuwEc2RYVfnMeBGQ9fe3msHUF0GZpOLgYbEypkhIfAM9uMzx5QU5MS1Oa0ZqcJhTzlEPjhK3YPM3xGRqFx1XnNpekuh5ozhIMOy0B785kK0ijWFZioRAGsfr3ll1x_gru-Dm2JBA?key=GdOjhPNd0mJvh694QQNh9_nX 에곤 실레, <중국 등롱이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Chinese...)>, 1912, Oil on canvas, 레오폴트 미술관(오스트리아 빈)




미술사조의 변천을 관찰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새로운 사조가 등장할 때마다 예술이 추구하는 방향과 표현 시스템이 더욱 다양하고 정교해진다는 점이다. 이는 미술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클래식 음악사를 보면 바로크에서 고전주의, 낭만주의를 거쳐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마다 새로운 화성과 리듬, 형식이 개발되었다. 문학 역시 서사시에서 소설로, 사실주의에서 모더니즘으로 발전하며 인간 경험을 표현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정교화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로그래밍을 바라보면 전혀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프로그래밍은 결코 외계의 언어가 아니다. 처음 코딩을 배울 때 마치 완전히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일상과 인문학적 사고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의 프로그래밍 개념들은 사회의 개념에서 차용되었고, 자연 현상이나 인문학적 사고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의 '클래스'와 '인스턴스' 개념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현실세계의 관계와 유사하다. '상속'은 생물학적 유전 개념을 차용한 것이고, '다형성'은 같은 행동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구현되는 일상의 원리를 코드로 옮긴 것이다. 함수형 프로그래밍의 '순수함수' 개념은 수학의 함수 개념에서 왔고, '재귀'는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랙털 구조와 본질적으로 같다.




코드와 캔버스라는 비유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프로그래밍이 우리 일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며, 논리적 사고만이 프로그래밍의 전부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자 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논리적 사고와 감성적 창의성을 대립적인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진정한 창의성과 논리적 사고는 서로를 보완하는 것을 넘어서 반드시 함께해야 하는 관계이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를 생각해 보자. 이 작품의 위대함은 단순히 감성적 영감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다. 천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대한 치밀한 계산, 원근법과 해부학에 대한 정확한 지식, 그리고 복잡한 구성을 하나로 통합하는 논리적 설계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뛰어난 프로그램도 창의적 아이디어와 논리적 구현이 완벽하게 조화될 때 탄생한다.


AD_4nXd7PYE_9mvo4A0Zsg2suckIx6DT_GuyjhH9kuTmXeWP2wbFwkS-40tB5CVTgAVbcNtYIrE4m_D3Fh2Ff-tUMTxDjPpkY5HLRzuAg3-d5Sjt8bS9NKmbA3Gn_k27fvhYKLwP6JG3tw?key=GdOjhPNd0mJvh694QQNh9_nX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천지창조(The Creation of the Heavens and Earth)>, 1508-1512, Fresco, 시스티나 성당(바티칸 시국)




현재 우리는 AI가 순수한 논리적 작업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단순한 논리적 코딩 작업은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 핵심은 AI를 통해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에 있다.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면 자신이 그 일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알아야 통제할 수 있고, 모르는 것을 맡기는 것은 의존과 종속의 관계로 이어진다. AI도 마찬가지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내가 원하는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동작해야 하는지, 어떤 논리로 흘러가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모든 세부사항을 알 필요는 없지만, 큰 그림과 핵심 설계 원리는 파악하고 있어야 AI를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AI 시대의 프로그래밍 교육은 코드 작성 중심에서 개념과 설계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최초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논리적 설계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며, 효율적인 구현은 AI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이는 마치 건축가가 설계도를 그리고 시공 전문가들이 실제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은 협업 관계다.




시스템 설계와 프로그래밍은 결코 별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있는 인문학적, 철학적, 예술학적 사고방식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수학과 과학을 예술에 접목시켰듯이, 현대의 프로그래머들도 인문학적 상상력과 논리적 사고를 결합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미술사조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진화해 왔듯이, 프로그래밍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각 시대마다 창조자들이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는 점이다. AI 시대에도 이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진정한 창조는 여전히 인간의 상상력과 통찰력에서 시작된다.


코드와 캔버스, 논리와 감성, 기술과 예술. 이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의 창조적 여정 위에서 만나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