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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omeNa Jun 23. 2020

‘상식'에 대한 단상

'상식'을 버려야 배울 수 있다.

컴퓨터는 당연히 인터넷이 되야 하고, 스마트폰도 당연히 인터넷이 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인터넷도 안되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기계로 인식되기도 한다. 더 크게 보면 생활 자체가 되지 않는다.




2018년 11월 갑자기 TV가 안 나온다는 가족들의 말에 셋탑박스를 껐다 켜보고, 리셋도 해 보았지만, 깜깜 무소식이었다. 스마트폰도 인터넷이 먹통이었고, 전화 조차가 되지 않았다. 공유기도 리셋하고, 선이 연결된 KT 모뎀도 리셋 등 모든 인터넷이 연결된 기기들은 리셋을 했다. 결과는 여전히 깜깜 무소식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건물에 문제가 있나 생각에 밑에 층에 내려가 인터넷이 되는지 물어보았다. 밑의 층은 인터넷이 되고 있었다. 통신사가 어디인지 물었다. LG였다. 


KT에 문의를 하려고 했지만, 스마트폰이 먹통이라 그것도 되지 않았다. 몇시간을 끙끙거리다 보니 배가 고팠다. 밖으로 나가 음식점에 들어갔다. 카드결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왜 냐고 물어보니, KT 아현지사에서 불이나 인터넷이나 통신이 다 안된다는 걸 알았다. 다른 음식점에 들어가 먼저 통신사를 물어보았다. LG라고 자기들은 결제가 된다고 했다. 음식점에서 틀어주는 TV를 시청하며, KT 아현 지사의 화재현장을 지켜보았다. 


뉴스를 보다 와이파이 유목민이라는 새로운 신조어가 나왔다. 마포, 은평, 종로, 서대문구 일대에서 통신이 되지않아, 통신이 되는 강남이나 동쪽으로 사람들이 이동한다는 뉴스였다. 이날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동네는 한산했다. 그냥 통신이 두절됐을 뿐인데, 시골같은 분위기가 연출됐고,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할지 당황해 했다.




당연한 것이 안 될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모르고 상당히 당황한다. 당연하다는 것 자체가 매너리즘이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것에 너무 관대하고, 이것을 상식으로 여겨버린다. 상식으로 여겨버리는 순간 머리 회전은 멈춰버리고, 단단하게 고정시켜 버린다. 고정된 것을 빼려고 하면 고통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고통은 짜증으로 유발되고, 상식을 지키기 위해 화내거나, 포기하거나, 내 멋대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나는 이것을 ‘꼰대'와 같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환경에 접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적응은 그 환경에 대해서 배우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다른 환경의 상식을 가지고 오거나, 잘 이해하지 못한 지식을 상식으로 고정시켜서 이해하려고 하면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고, 이해 조차도 안된다.


IT에 처음 발을 딛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당연하다라고 생각한 것에 의심을 해야하고,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확인해 봐야한다. 이런 당연함에 대한 의심은 IT뿐만아니라, 어떠한 분야에도 적용된다.


당연히 그렇게 되야 한다는 ‘상식'은 더이상 일반적인 사항이 아니다. 


개인의 ‘상식'일 뿐이지
다른 사람에게는 ‘상식'이 아닌 ‘특수함'으로 인식될 수 있다. 




군대 자대배치를 받고 신병생활을 했을때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가본 곳 중에 제일 먼 곳이라곤 경기도 밖에 없고, 사투리도 전혀 모르고, 오로지 서울말투 밖에 몰랐다. 자대는 대구 아래에 있는 경북 영천으로 배치가 되었다. 군기로 바짝 긴장되어 있던 때라 다른 선임들이 무슨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특히나 거의 대부분의 선임병들이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별세계였다. 한국말인건 확실한데,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선임병들이 시키면 알아듣지 못하고, 헤매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샌가  말길도 못 알아 듣는 고문관이 되어 있었다. - 그렇다고 군 생활내내 고문관으로 지냈던 건 아니다. 군생활 중반 이후에는 중대에서 어느정도 신뢰받는 위치까지 올라가 있었다.- 군대에 오기전까지는 학교에서 리더 역할도 하고, 나름 잘 나가는 축에 속했었다. 


사투리를 못 알아 듣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상식도 없다'였다. 어떤게 ‘상식'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선임들 이부자리 깔아주는게 상식인지, 선임들이 침상에서 내려오면 슬리퍼를 대령해야하는게 상식인지... ‘상식'이라는 단어에 대한 개념이 무너졌다. 이부라지를 깔아준다던지, 슬리퍼를 대령한다든지 이런게 일반적인 ‘상식’은 아니다. 다만, 선임병들은 그 전의 선임병들에게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상식'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군대에서 배운 상식을 사회생활에 적용하게 되면 바로 부적응자 내지 ‘꼰대'로 인식되거나, 기피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생활'과 ‘생활' 사이의 ‘상식'도 틀린데, 개인과 개인의 ‘상식'이 같을리는 없다. 또한 ‘분야'와 ‘분야'의 ‘상식'도 마찬가지이고, ‘사회'와 ‘사회', ‘국가'와 ‘국가', ‘문화'와 ‘문화' 등등 사이의 ‘상식'은 말 할 것도 없이 틀릴 수 밖에 없다. 마치 ‘상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듣는 말 중에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 등의 ‘상식'은 도대체 어떤 ‘상식'이며, 누구의 ‘상식'인지 되묻고 싶다.




‘상식'은 일반화에서 태어난다. 


사람을 혈액형으로 일반화 하려고 하거나, 성별로 일반화 하려고 하거나, 나이로 일반화 하거나, 정치 사상으로 일반화 하려고 하는 등 어떻게 해서든 일반화 하여 ‘상식'이라는 단어로 묶어 버리려고 한다. 나나 상대방이나 ‘상식'으로 묶어서 대화하려고 하면, 대화자체가 안되는건 자명한 일이다. 


‘상식'이라는 틀을 깨야 이해와 대화가 된다. ‘상식'의 틀을 깬다는건 당연한 것을 의심하는 것이다. 당연한 것을 한번 더 물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어본다고 해서 상대방이 무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분야에 접했으면, 항상 쓰는 말도 의심하고, 질문하고, 알아가야 한다.


특히나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신기술과 개념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IT에서는 ‘상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제의 유용한 코드가 오늘은 버려질 코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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