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romeNa Aug 04. 2020

‘취미’에 대한 단상

나에게 인정받기

난 아직 ‘취미'를 모른다. 40을 넘겼는데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좋아하는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러가지 해보면 그 중에 발견할 수 있다라는 말은 나에게 통하지 않는 듯 하다. 피아노, 오카리나, 기타, 노래, 수채화, 파스텔, 유화, 스케치, 만화, 3D 캐릭터, 애니메이션, 탭댄스, 축구, 야구, 당구, 탁구, 볼링, 헬스, 자전거, 스노우보드, 스키, 수상보드, 수상스키.. 나열해 보니 정말 많은 것을 해봤지만, 재미라는 요소를 찾기 힘들었다. 대부분 1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초등학교때 체육 시험을 보면 100m를 걸어가도 빠를 18초에 돌파했다. 1000m 달리기는 그야말로 거북이가 하품하며 잘 시간에 도착했다. 가끔 축구를 하면 제일 중요한 포지션인 깍뚜기를 도맡았다. 발은 개발이라는 타이틀이 더 굉장했을 정도로 극과 극이 만나듯 공이 내발을 피하는건지, 내 발이 공을 피하는 건지 모를 발이었다. 운동은 나와 맞지 않는다. 맞는다는 표현은 유화적인 표면일 것이다. 운동과의 거리가 사회적 거리가 아닌 지구 반바뀌만큼의 거리가 있는 것 같다. 한다미로 저질체력이다.


초등학생때부터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사리가 들었다. 수업시간에 기침을 참을려고 얼굴 시뻘겋게 달아오를데로 오른 후에 온 영혼을 토해내듯 기침을 해댔다. 너무 기침을 한 나머지 헛구역질까지 나왔다. 성당에 다녔을때 조용한 묵상 시간을 시작으로 신부님의 설교시간까지 기침이 멈추질 않았다.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성가대에 참여해서 공연을 할때 갑자기 그냥 사리님이 들어와 얼굴이 달아오른채로 노래도 부르지 못하고 참았던 기억이 있다. 목이 이모양이니 노래하고도 친하지 않은건 당연하다.


기타는 손가락이 아파서 그만두고, 피아노는 손가락이 같이 놀아 그만두고, 오카리나는 숨이 힘들어 그만두고, 탭댄스는 발목과 뒤꿈치가 나가는 줄 알고 그만뒀다. 숙달은 둘째치고, 익히기전에 그만둔 것이 많았다. 그나마 그림과 관련된 것들은 오래 지속됐지만 그리다가 지루함에 못이겨 완성된 그림이 거의 없었다. 당구도 2게임 넘어가면 지루하고 허리가 아파 오래는 힘들었다. 낚시는 아직까지 해보지는 않았지만, 지루함의 끝판왕이라는 생각에 엄두도 못냈다.




‘남자가 왜 축구를 싫어해?’ 또는 ‘남자가 왜 야구를 싫어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항상 대답은 ‘그냥 싫다'였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었다. 내 몸둥아리가 이러하니 내가 하지 못할 망정 대리만족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없고, 스포츠는 그냥 관심 밖이었다. 레포츠도 마찬가지다. 간혹 그래도 해보기는 할까라는 생각에 겨울에는 스키장을, 여름에는 수상레포츠를 해보았지만, 여전히 힘들기만 할뿐 아무런 재미도 없고, 벤치에 앉아만 있었다. 익숙해지면 재미가 붙고, 재미가 붙으면 숙달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익숙해지면 재미가 자동으로 따라올까.. 취미와 도구는 다르지만,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등 컴퓨터 툴에는 익숙하지만 재미는 없다. 개발자로서 개발에는 익숙하지만 재미는 없다. 또한 웹 기획자로서 기획에는 익숙하지만 재미는 없다. 이런 것들은 업무, 일과 관련된거라서 취미보다는 돈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재미와는 거리가 먼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취미와 일은 돈이 목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구분된다고 한다.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이 일이냐, 취미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피아노를 배울때 일을 목적으로 배우는 것과 취미를 목적으로 배우는 것이 다른 것이다. 일로서 배울때는 돈을 벌기 위해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익숙하고 숙달되기 위해 배운다. 재미라는 요소는 뒷전이다. 하지만 취미는 돈보다는 나를 위해 배우는 것이기에 힘들거나 지루하면 바로 놔버린다. 돈 보다는 목적이 추상적이고 희미하기 때문이다.




스태미나가 낮았다. 체력적인 스태미나가 낮아 정신적인 스태미나까지 떨어진 듯 하다. 쉽게 지치고, 지루하고 힘드니 뭔가 확실한 목적이 있지 않은 한 지속적으로 오래 버티기는 힘들다. ‘취미'가 재미를 떠나 체력, 정신력과의 싸움이 된지 오래됐다. 언제나 지는 싸움이다. 승부욕마저도 없으니 언제나 졌다. 사회에서 돈을 벌기위해서는 남과의 경쟁에서는 대부분 이기는 쪽에 있었다. 프로젝트에는 대부분 핵심과 주도를 했고, 인정을 받았지만, 내 자신에게는 인정 받은 적이 없다.


돈이 아닌 재미가 목적인 ‘취미'를 숙달하는 순간이
나에게 인정 받은 시점일 것이다.


나는 아직 나를 모른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하나의 ‘취미'를 얻었을 때 내가 나로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함'의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