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돌과 연못
비와 함께한 첫날 문경을 뒤로하고 부산으로 향했다. 첫날의 경험으로 비구름이 따라오지 않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 먹구름은 보이지 않았다. 화창한 여름의 하늘이었다.
오후 때 즈음 부산 태종대 감지해변에 도착했다. 자갈마당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돌을 좋아하는 와이프는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해가 강렬했지만, 선선한 해풍이 불어 더움을 느끼지 못했다.
자갈마당에는 모래사장이 없다. 이름 그대로 자갈로 만들어진 해변이다. 파도가 밀려오고 내려가면서 자갈들도 같이 굴러가는 소리가 청명하다. 오늘은 바람도 강하고, 파도도 약간 높아서 자갈 굴러가는 소리가 더욱 잘 들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파도 소리에 묻혀 파도가 내려가는 순간에 잠깐잠깐 들렸다.
파도소리와 돌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잠깐 멍 때리고 나서 근처 조개 구이촌으로 향했다. 조개 구이촌에 들어서자마자 손님을 부르는 사장님들의 손짓이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호객행위를 싫어한다. 아니 호객행위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일부러라도 호객행위가 심한 집은 거르는 편이다. 손짓을 제치면서 조개 구이촌 끝자락에 도착하니 또 다른 절경이 펼쳐졌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감상했다. 비가 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해는 늬엇늬엇 지고 있어서 한낮 태양처럼 강렬하지도 않다. 부산은 폭염경보인데 여기는 딴 세상 같았다.
슬슬 배가 출출하여 조개 구이촌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손짓을 무시하며 조금 넓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들어갔다. 이른 오후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자리를 잡고 조개구이와 새우구이를 주문했다. 여기 조개구이는 대부분 가리비만 나온다. 강화도 동막해수욕장에는 조개만 두둑하니 나오지만, 여긴 가리비가 두둑하니 나온다.
조개구이는 중, 새우구이는 소라서 모자라면 해물라면이나 볶음밥을 시킬 예정이었지만, 4명이서 먹고도 남을 정도의 양이었다.
다 구울 때 즈음 치즈를 얹여서 먹었다. 달콤하면서 짭짜름한 바다 맛이 느껴진다.
부산 바다를 뒤로하고 경주로 향했다. 경주 숙소에 도착하니 사장님이 경주 야경은 다 둘러보고 오는 거냐고 물어봤다. 시간은 오후 8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부산에서 부랴부랴 오느라 못 봤다고 했다. 사장님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 안압지(지금은 동궁과 월지로 부른다.)와 월정교는 보고 오라고 재촉했다. 짐을 내려놓고 동궁과 월지로 향했다. 저녁 9시가 지나고 있었다. 들어가도 몇 분 못 보고 나오는데 굳이 가야 되는지 몰랐다. 거의 다 왔을 때 차까지 막혔다. 한적한 곳인데 왜 차가 막히는지 몰랐다. 사고라도 났나 생각에 동궁과 월지 옆길로 빠져서 다른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를 하고 나서 매표소로 걸음을 옮겼다. 막히는 차량은 대부분 동궁과 월지 진입 차량들이었다. 빠져나가는 차량들이 아닌 진입 차량이었다. 매표소에는 9시 30분까지 매표를 한다고 되어 있고, 10시에는 모든 조명을 소등한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9시에 들어가도 1시간만 있다 오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매표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야경이 예쁘다고는 들었지만, 살짝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날도 무더웠고, 사람은 많고, 입구에 들어서서 정전으로 향하는 길도 일반 공원과 다름이 없었다. 가족들은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다들 이해를 못하는 표정이었다. 정전을 지나 제1건물로 들어서면서 야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각과 벽, 월지 연못 위의 작은 섬, 조명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입구 첫 촬영지인데도 사진을 찍는데 시간을 다소 소비했다. 이제 1시간여 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다른 곳도 바삐 둘러봐야 했다. 벽을 따라 이동하면서 곳곳의 사진을 찍었다. 찍는 족족히 작품이 되는 것 같았다.
연못을 한 바퀴 빙 돌고 나니 10시가 되어 있었다. 딱 1시간이면 충분히 볼 수 있는 곳이다.
어제는 문경에서 비로 샤워를 했지만, 오늘은 땀으로 샤워를 했다. 또다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갔다. 와이프가 부산 자갈마당에서 주워 온 돌들을 나열했다. 와이프는 크기별로 잘 골랐다고 흐뭇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