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가 지우는 것.
서점에 간다.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때 분류가 도움이 된다. 문학, 인문, 경제경영, 자기계발. 표지판을 따라가면 원하는 구역에 도달한다. 분류가 없다면 수만 권의 책 사이에서 헤맬 것이다.
마트도 마찬가지다. 과일, 채소, 정육, 유제품. 구역이 나뉘어 있으니 장보기가 수월하다. 병원에 가면 내과, 외과, 피부과, 정신건강의학과. 증상에 맞는 곳을 찾아갈 수 있다.
분류는 세상을 정돈한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들고, 흩어진 것을 묶어준다. 분류 덕분에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원하는 곳에 도달한다.
그런데 분류의 대상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일 때,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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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을 떠올려본다.
성적에 따라 반이 나뉘었다. 우열반이라고 불렀다. 상위권 학생들은 한 반에, 나머지는 다른 반에. 학교는 이것이 효율적인 교육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준에 맞는 수업을 해야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분류 안에서 학생들은 스스로를 '상위권'과 '그 외'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칸이 정해지면 그 칸에 맞는 정체성이 생긴다. "나는 어차피 이 반이니까." 그 문장이 가능성을 닫는 경우도 있었다.
분류는 효율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분류된 사람에게는 의미가 된다.
의료 현장에서도 분류는 필수적이다.
환자가 병원에 오면, 증상을 듣고 검사를 하고 진단명을 붙인다. 당뇨, 고혈압, 우울증. 진단명이 붙어야 치료 방향이 정해지고, 보험이 적용되고, 약이 처방된다. 분류 없이는 의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진단명을 가진 환자들이 모두 같지는 않다. 우울증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사람들의 사연은 제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상실 때문에, 누군가는 관계 때문에, 누군가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그 자리에 왔다. 같은 약이 누구에게는 효과가 있고 누구에게는 없다. 진단명은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니다.
문제는 시스템이 바쁠 때 생긴다. 환자가 많고 시간이 부족하면, 진단명이 그 사람 전체를 대신하기 쉽다. "우울증 환자"가 되면 그 사람의 다른 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분류가 사람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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