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평균 위에 올려진 나

평균이라는 것.

by jeromeNa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들었다. 숫자들이 빼곡하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간 수치. 각 항목 옆에 '정상 '에 체크되거나 빨간색으로 뭔가 쓰여 있다.


다행히 대부분 정상이다. 의사는 "평균 범위 안에 있으니 괜찮습니다. 체중만 조절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한다. 안심이 된다. 평균 안에 있다는 것, 정상이라는 것. 그 말이 주는 안도감이 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평균이란 무엇일까. 수천, 수만 명의 데이터를 모아서 가운데 값을 구한 것. 그 가운데에 있으면 정상이고, 벗어나면 비정상이 된다. 나는 그 '가운데'에 맞춰서 괜찮고 아니고를 판정받은 것이다.


물론 건강검진에서 이 방식은 합리적이다. 기준이 없으면 판단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평균이라는 잣대가 건강 너머로 확장될 때, 무언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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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사러 간다. S, M, L, XL. 사이즈가 나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중 하나에 맞는 옷을 찾을 수 있다. 맞지 않으면? 수선을 하거나, 다른 브랜드를 찾거나, 불편함을 감수하고 입는다.


기성복은 평균적인 신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평균적인 팔 길이, 평균적인 어깨너비, 평균적인 허리둘레. 그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평균에서 먼 사람들은 선택지가 줄어든다. 옷이 몸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몸이 옷에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사소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조는 곳곳에 있다. 표준 책상 높이, 표준 의자 크기, 표준 문 손잡이 위치. 세상은 평균적인 인간을 상정하고 설계된다. 평균에 가까울수록 세상이 편하고, 평균에서 멀수록 세상이 불편하다.




평균적인 인간은 실제로 존재할까.


1950년경 미국 공군에서 흥미로운 연구가 있었다. 조종석을 설계하기 위해 4,000명이 넘는 조종사의 신체 치수를 측정했다. 키, 가슴둘레, 팔 길이, 다리 길이, 가랑이 높이 등 여러 항목을 측정했고, 그중 조종석 설계와 관련 깊다고 본 10개 항목을 골라 평균을 구했다. 그리고 그 평균에 맞는 '평균적인 조종사'를 위해 조종석을 만들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연구자들이 실제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열 가지 항목 모두에서 평균 범위 안에 드는 조종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평균적인 조종사를 위해 설계된 조종석에 맞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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