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의 증발
예전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발행시 키워드는 누가 정하는걸까? 정작 있어야 할 키워드는 없고, 없어도 되는 키워드들만 잔뜩있는 것 같다.
몇 해 전 미국의 SNS가 한 편의 영상으로 발칵 뒤집혔다.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의 매니저가 식사를 하러 온 흑인 청년들에게 "음식값을 낼 수 있는지 증명하지 않으면 주문을 받지 않겠다"며 거절하는 장면이었다. 영상 속 매니저는 단호했고, 청년들은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억울해했다. "인종차별 식당"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비난이 폭주했고, 본사는 즉각 해당 매니저를 해고했다.
며칠 뒤 반전이 담긴 후속 보도가 나왔다. 해고된 매니저는 과거에도 그 청년들이 수차례 음식을 주문한 뒤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갔던(Eat-and-dash)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인종이 아니라, 상습적인 무임승차로부터 매장을 지키기 위해 결제 능력을 확인하려 했던 것이었다. 청년들이 이전에 올렸던 SNS 게시물에는 식당에서 돈을 내지 않고 도망치는 것을 자랑하는 영상들이 가득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은 50초였다. 그 50초 안에 매니저가 겪었던 수차례의 무임승차 피해는 없었고, 매장을 책임져야 했던 그녀의 고충도 없었으며, 계획적으로 카메라를 켠 청년들의 의도도 없었다. 남은 것은 "인종차별을 하는 매니저"와 "피해를 입은 청년들",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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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판단한다. 사람을 만나고, 상황을 보고, 옳고 그름을 가린다. 판단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세상은 선택을 요구하고, 선택에는 판단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판단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SNS에서 스크롤을 내리는 속도로 우리는 판단한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사람. 이 행동은 옳고, 저 행동은 틀리다. 짧은 영상, 캡처된 문장, 한 장의 사진. 그것만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다음 게시물로 넘어간다.
그 속도 안에서 맥락은 증발한다.
맥락이란 무엇일까.
어떤 말이나 행동이 놓인 배경이다.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어떤 상황에서 일어났는지, 앞뒤로 무엇이 있었는지. 맥락을 알면 같은 행동도 다르게 보인다. 맥락을 모르면 행동만 덩그러니 남는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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