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장. 기록은 기억과 다르다

기억으로 살고, 기록으로 안다.

by jeromeNa

몇 년 전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려웠지만 버텼고, 결국 넘어갔다.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기도 하다. 지나고 나면 다 의미 있어 보인다.


그런데 그때 써둔 메모를 읽으면 달라진다.


힘들다고 적혀 있다. 이게 맞는 방향인지 모르겠다고. 이 사람과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금의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흔들려 있었다. 메모를 읽는 동안 그때의 감각이 잠깐 돌아왔다. 기억은 괜찮았다고 하는데, 기록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둘 중 어느 것이 맞을까.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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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편집된다.


의도적으로 편집하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일어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옅어지고, 고통스러웠던 것이 무뎌지고, 복잡했던 것이 단순해진다. 그 과정에서 기억은 지금의 내가 받아들이기 좋은 형태로 정리된다.


잘 됐을 때는 더 잘 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힘들었을 때는 지금 보면 별것 아닌 것으로 기억된다. 관계가 끝났을 때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기억은 현재의 감정이 과거를 다시 쓰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만으로는 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기록은 그 편집 이전의 것을 붙든다.


쓴 순간의 온도가 남는다. 흔들렸던 것, 확신하지 못했던 것, 두려웠던 것.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쓰지 않을 것들이 그대로 있다. 그것이 기록의 정직함이다.


정직함이 불편할 때가 있다. 예전에 쓴 것을 읽다가 눈을 돌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너무 솔직하게 적혀 있어서.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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