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is perfect as it is.
우리는 흔히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는다. 무엇을 먹을지, 어떤 말을 할지, 누구를 사랑할지, 어떤 길을 걸을지.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선택’이라는 것이 정말 내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아침 출근길, 공복 상태로 서둘러 집을 나서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책상 위에는 물 한 잔과 초코우유 한 잔이 놓여 있다. 당신은 잠시 고민하더니 초코우유를 집어 들었다. 아침을 굶었기 때문에 달콤함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고, 어쩐지 혈당을 보충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유로운 선택일까? 아닐 것이다. 명백히 당신의 몸 상태와 욕구가 선택을 이끌었다.
반대로 물을 집어 들었다고 해보자. 전날 친구에게 살이 쪘다는 말을 들었고, 당신은 수치심을 견디기 어려운 성향을 지녔다. 그래서 초코우유를 일부러 외면하고 물을 선택했다. 이것은 자유의지일까? 이 또한 아니다. 그 선택 역시 감정과 성격이라는 내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 결과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선택은 백 번을 반복해도 거의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초코우유를 선택하는 사람은 같은 조건에서는 늘 초코우유를, 물을 선택하는 사람은 같은 조건에서는 늘 물을 집어 들 것 같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그 순간의 신체 상태, 감정, 기억, 성격, 과거 경험, 환경적 조건이 서로 얽혀 만들어낸 하나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마치 공을 포물선으로 던지면, 언제나 물리법칙에 따라 같은 자리에 떨어지는 것처럼.
만약 우리의 몸과 세계가 근본적으로 입자들의 운동으로 이루어진 세계라면 어떨까? 입자의 운동들은 물리법칙으로 예측된다. 시간을 1년 전으로 되돌려 다시 1년을 살게 하더라도, 어쩌면 우리의 삶은 거의 똑같이 반복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겪은 일들, 우리가 내린 결정들, 우리가 했던 말과 실수들조차 처음부터 이미 예정된 흐름 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는 그 모든 원인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과거에 대한 후회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지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리가 흔히 붙잡는 이 질문들은, 사실은 실체 없는 그림자를 붙잡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순간의 조건들이 만들어낸 결과는 하나뿐이었고, 당신은 그 유일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다른 선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후회란, 일어나지 않았을 다른 세계를 상상하며 현재의 나를 의미없이 고문하는 일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생각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관점은 묘한 해방감을 준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조건들의 산물이며, 나는 그 조건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은 본래 그런 흐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흐름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을 뿐.
어쩌면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과거는 고칠 수 없지만, 과거를 후회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때의 나는 그 순간 가능한 유일한 선택을 했을 뿐이고, 지금의 나는 또 다른 조건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 뿐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선택이라는 환상은 사라지지만, 대신 지나온 시간을 향한 불필요한 죄책감과 집착도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조용한 수용,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빚어갈 수 있다는 담담한 용기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