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는 인간 경험을 다섯 갈래로 설명하는 오온(五蘊)이라는 개념이 있다.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이 다섯 가지가 모여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의 마음을 만든다.
가장 널리 알려진 말은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외적조건(색色)은 실체가 없고, 변하며, 붙잡을 수 없는 것(공空)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색즉시공보다는 오온 가운데 마지막인 식(識)이 바로 실체가 없고 변하는 것이라는 사실(식즉시공識卽是空)이 개인의 삶에 더 와닿는다고 생각한다.
식(識)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경험을 통해 얻어내는 인식과 결과를 말한다.
한 번 상처를 받으면, 우리는 바로 규칙을 만든다.
예를 들면, 여자에게 차였던 사람은 이렇게 결론짓기 쉽다.
“여자는 위험하다. 언제든 나를 떠나고, 상처 주고,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식이다.
이 해석은 한 인간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아주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문제는, 이 결론이 너무 쉽게 ‘진리’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마치 세계의 법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식은 진리가 아니다.
그저 주어진 순간, 주어진 조건에서 임시로 만들어진 해석일 뿐이다. 어떤 한 사건으로 식이 형성되지만, 그 식은 환경, 관계, 나의 성장, 시간이 흐르며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식은 재구성된다. 좋은 관계를 경험하면 식은 스스로 균열이 난다. 관점은 부드러워진다. 상처가 치유되면 세계가 다시 열린다.
그러니 식은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식즉시공(識卽是空)이다.
한 번의 상처를 ‘세계의 법칙’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삶이 급격히 좁아진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면 안 된다.”
“사람은 결국 배신한다.”
식이 굳어지지면 회피하게 되고, 회피는 가능성을 앗아간다. 좋은 관계, 성장, 기쁨, 연결이 모두 식의 감옥 안에서 막힌다.
식을 벗어나고 회피를 멈출 수 있다면 어떨까?
그때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식은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낸 한 가지 버전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