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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Aug 06. 2020

얼음의 태양이 온화해 지기까지

나를 더 나답게 하는 길

‘얼음의 태양’ 정확히는 ‘얼음 속의 태양’이라고 했다.

몇 해 전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퇴근길에 찾아간 곳에서 한 역술인이 내 현재의 상황을 빗대어했던 말이다. 그 표현의 풀이가 신선하다 못해 안타깝고 충격적이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사주에 불(火)이 많아서 ‘태양’이지만 그 빛을 낼 수 있는 환경이 못되어 ‘얼음’ 속에 갇혀 있으니 답답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곳을 (그것도 아내 몰래) 갔던 것을 후회했고, 그 이후의 말들은 내 귀에서 그냥 울리기만 하고 들리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화(火)는 내 인생을 줄곧 관통해온 주제였다.

한두 번에 끝나는 이벤트 성도 아니며, 잠깐 살짝 왔다가는 것도 아니다.

주기적으로 정말 ‘불같이’ 다녀가신다.

화가 많다고 화를 달고 사는 것은 아니나, 화가 나면 정말 불같이 아니, 이글거리는 작태가 태양에 가깝다.

그 화의 내상은 크다. 나 또는 그 대상에게.

회복에는 대부분은 몇 시간 또는 며칠이 걸린다. 그러나 대상이 아내일 경우에는 후폭풍이 몇 달씩 이어지거나 아내의 심기가 불편해질 때마다 반복되니 기간은 현재 진행형 또는 평생이다. 

그러나 이번 건은 내상으로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 회식 그 이후


회식이 문제였다.

발단은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부서 회식을 너무 오랜만에 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다들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여 조심조심 먹고 일찍 귀가하자라고 시작한 자리가.. 술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기분에 취해 술이 술을 부르고 다들 너무 취하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급기야 팀장의 주사까지 이어졌다.  

그분은 무엇에 심사가 틀리셨는지 발음도 잘 되지도 않는 말로, 잘 뜨이지도 않는 눈으로, 계속 나에게 따지듯. 한 질문만을 열 번 이상하셨다. 주사를 잘 참지 못하는 나의 주사도 거기에 한몫했다.

참다못해 내뱉은 작심 발언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분의 두 팔이 내 멱살을 부여잡고 밀고 있었고, 나는 밀리기 싫어 뿌리치려 애쓰고 있었다. 

나도 운동을 좋아하는 야무진 몸이지만, 체급의 한계는 어쩔 수 없게 했다. 게다가 갑작스레 들이대는 선빵에 어찌할 수 없는 시추에이션이 되었다. 

결국은 내가 넘어졌고, 주변의 만류로 자리를 파하고 집에 오긴 했지만, 그다음 날부터 뒷머리의 통증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저녁때 심해지는 두통으로, 저녁을 먹을 때 입부터 뒷목까지 움직이며 전해지는 통증으로 인해 눈물을 콧물처럼 훌쩍거리며 밥을 먹게 되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아내에게 들을 꾸중이 불 보듯 뻔해서, 아프다고 말도 못 하고 꾹 참고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눈물의 저녁을 한동안 흘려보내야 했다.


씁쓸한 교훈


그날 작심 발언이 문제였는지, 물리적인 멱살이 문제였는지는 지금에 와서 잘잘못을 가릴 생각은 별로 없다. 지인들은 회사의 인사팀이든, 인권센터든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라고 하지만, 그 사건이 승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내 변변치 않은 이력에 오점으로, 위기의식을 기진 상사분의 경력에 또 다른 허점으로 남겨지게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2주가 지난 지금 다양한 검사를 하며 세 군데의 병원을 바꾸어 다니게 되면서, 통증이 호전되고 있다. 다행히 이제는 눈물을 콧물처럼 훌쩍거리며 저녁식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부서의 선임으로, 책임감 때문에 남아 있다가 벌어진 ‘산업재해’스런 일에 대해서, 병원비는 실손보험의 혜택으로 대부분 해결이 된다 치더라도, 사과 없이 어영부영 넘어가는 것은 참기가 쉽지 않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의례 남자들끼리 술 먹다 보면 그럴 수 있지..라는 너스레 같은 예전의 ‘꼰대’ 정신이 아직 있다.

권위적인 술 문화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와 그들의 문화의 편협함들이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교육받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그릇되게 비칠 수 있다.

물론 나조차도 그것에 예외일 순 없다. 

그런데 이런 교훈의 대가라 치기엔 너무 씁쓸하게 뒷목이 뻐근해온다.

뻐근해오는 뒷목을 잡으며 파스 한 장을 뜯어본다.


18년 차 직장인. 

술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지만, 많고 많은 술에 연관된 사건 중 이런 사건은 또 처음이었다.

“먹고 사느라 네가 고생이 많다”(토닥토닥)

손아귀에 힘을 주고 뒷목을 조물조물해본다.


이렇듯 내 마음에 풍파가 일어 화를 내를 때는 어김없이 그 결과가 후회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나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들어가서 깨어날 때쯤이면, 내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은 심정이었고, 후회가 항상 몰려왔다.

시간을 1시간만, 30분만, 돌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줄기차게 따라다녔다.


글쓰기에 빠지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에 글을 보내게 되면서 오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도 방송에 한번 사연을 보내볼까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시도에서 시작되었으나,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예전의 마음의 아픔을 잘 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익명으로 방송이 되던 그날 밤, 나는 사무실 책상에 혼자 앉아 조용히 울고 있었다.

사연이 읽히는 동안, 나는 알 수 없는 위안을 받게 되었고 DJ의 목소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따뜻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찾아온 이상한 마음의 평화.. 이게 바로 글의 힘이구나.라는 것이 새삼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렇게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사색하고 글로 고민할 때면, 이내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표현이 되지 못한 구절들은 오히려 한밤중에 단어들이 찾아와 내게 문장으로 풀어주었다.


마치 화염을 이기면 따뜻한 온기가 포근히 세상을 감싸 안 듯.

화에 휩싸이지 않고, 복잡한 감정들을 글로 풀어내면 내 마음이 오히려 따뜻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얼음 속의 태양이 승화하여 온화한 해가 된다면, 나와 내 주변에 상처를 주지 않고 포용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더 뜨겁게 ‘나’다워지는 길이리라.

언젠가 그 포용의 힘이 이글거리는 화염보다 더 강하게 세상을 감싸 안을 것이라 믿는다.

나의 글이 그러했으면 한다.

화염으로 발광하여 상처 주지 않고, 따뜻한 온기를 글을 통해 나누어 갖는다면

오히려 강한 불꽃보다 오래도록 살아 마음을 지필 것이다.

그러길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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