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일면을 배우다
오늘도 나는 가족 모두가 잠든 시각에.
거실에 앉아 한자 반 수초 어항을 우두거니 쳐다보며 있다.
컴컴한 거실에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는 초록색 어항 안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바닥에는 쿠바펄이라는 전경 수초가 빽빽이 채워져 있고, 뒤쪽에는 암브리아라는 후경 수초가 10촉 정도, 로탈라 5촉 정도가 하늘하늘 거리며 어항 중간까지 자라고 있다.
어항 가운데 몇 개의 유목들에는 작은 음성 수초가 붙어 있고, 유목과 수초 사이사이에는 체리새우들이 숨어서 다리로 장구질을 하고 있다.그리고 담백한 색깔의 러미로즈 테트라와 알록달록한 네온, 커디널 테트라 20마리가 그룹을 지어 군무하듯 헤엄쳐 다닌다.
거실에 이 초록색의 평화로움을 만들어내기까지 족히 한 달은 넘게 걸린 것 같다.
집에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기르자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엄마 아빠가 맞벌이라서 동물을 돌봐줄 수 있는 여력이 안되니 일단 어항에 물고기라도 길러보자라고 했던 게, 그래서 휴일에 갑자기 어항과 물고기를 사러 나간 게, 이 사단의 시작이었다.
애초에는 한 개의 어항을 사서 물고기 몇 마리만 넣어 오려고 했었는데,
수족관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작은 어항 한 개씩을 고르고 그 어항에 물고기들도 각자 골라 가져 가겠다고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45센티짜리 큰 어항 1개와 작은 어항 2개 모두 3개의 어항을 집에 사 오게 됐다.
열대어와 각종 수족관 물품을 다 구매하니 반나절만에 적지 않은 돈을 쓰게 된 것이다.
문제는,
큰 어항을 들고 오다가 엘리베이터 문에 부딪혀 어항 끝이 깨지게 되었고, 물을 채울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만 것이다. 시험 삼아 물을 넣었다가 그 안에 세팅해 놓은 유목들이 여기저기 떠다니고 깨진 틈으로 물이 셀까 봐 물을 넣다가 다시 빼야 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사온 열대어들은 어항에 넣지도 못하고 새벽까지 물을 넣다 뺏다 하면서 고생하다가,
저 큰 어항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 고민 끝에,
그 안에 수초를 넣어 키우는 수초어항을 만들기로 다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흙을 주문하고, 흙 아래에 까는 영양 토양도 사고 그것들을 어항 아래에 겹겹이 깔았다.
흙을 깔아주고 유목과 돌을 흙에 세팅을 하고, 다시 물을 약간 부어서 다져주는 작업을 며칠 동안 하고,
그 위에 씨앗을 뿌려 매일매일 붐무기로 촉촉이 물을 주었다.
그리고 5일이 지나자 작은 씨앗 수초들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에는 파릇파릇한 쿠바펄들이 촉촉한 흙을 덮어서 어항 아래쪽을 가득 채웠다.
그 사이 실리콘을 사서 깨진 어항에 발라주고,
후에 물을 약간 채워 핀셋으로 수초들을 꽂아서 심는 작업도 하게 됐다.
그리고 감격스럽게도 드디어 어항에 물을 가득 채우게 됐다.
어항에 물을 채우고 열대어들이 살 수 있을 정도로 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며칠 동안 여과기로 물을 정화시켰다.
이후에 생이새우 1마리를 넣어 살 수 있는지를 확인한 후에, 체리새우와 열대어를 몇 마리씩 몇 마리씩 계속 넣어주게 되었다.
말이 한 달이지,
퇴근 후 계속해서 집에 와서 수족관을 봐줘야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사무실에서는 짬짬이 여러 사이트를 검색하며 수초어항 만들기, 수초어항에 열대어 키우기 등을 검색해야 했고, 어떻게 생물들이 그 어항에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어항을 어떻게 아름답게 꾸밀지 매일매일의 노력을 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집에는 택배 상자가 계속해서 쌓이게 됐다.
물론 아침에 세운 계획을 바꿔서 저녁에는 다른 방향으로 어항을 세팅하기도 했다.
그리고 거의 한 달이 되었을 무렵, 나는 거실에 평온함과 고요함 속에서 수족관의 초록색과 알록달록의 열대어들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찾기 시작했다.
거실에 어항을 꾸미게 되면서, 어쩌면 이런 과정들이 우리 인생과 비슷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 어항을 사러 갈 때처럼 우리도 막연한 기대로 어떤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과 그 기대가 맞지 않는다는 걸 머지않아 깨닫게 된다.
때때로 그 일을 접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이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항에 물을 채우고 바로 물고기를 넣을 수 없듯, 씨앗을 뿌리면 바로 싹을 틔우지 않듯,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처음 직장을 갖게 되었을 때도, 결혼을 하게 될 때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어찌어찌 시작했지만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가.
첫 직장에 대한 대단한 기대가 깨진 어항처럼 부서져 나를 얼마나 큰 실망으로 빠뜨렸던가.
결혼생활은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수족관처럼 정말 아무 노력 없이 평화로웠던가.
정말 직장 동료들은 드라마에서처럼 가족 같고 살가왔을까.
정말로 내 배우자는 이상향의 모습으로 완벽하고 온전한 나를 잘 받아주고 있었던가.
정말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노력과 정성을 다하고, 천천히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어쩌면 우리가 어렵게 체득하지만 가장 쉽게 잊고 사는 게 아닐까.
모든 아름다운 것에는 그만한 노력과 기다림이 필요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