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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Jun 23. 2021

김치를 버리지 못한다

어머니의 김치

김치를 버리는 것을 질색한다. 

특히 다른 것보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김치를 버리는 것이 마음이 좋지 않다. 

김치를 남에게 주기도 싫어하고, 버리는 것을 더 싫어하는 인색한 마음을 나는 종종 아내에게 풀곤 한다. 

왜 그렇게 김치를 안 먹었냐고, 왜 김치를 버리게 두냐며, 내일이면 김장을 위해 김치통을 씻어 준비해 가야 하는데 남은 김치를 어쩔 거냐며.(물론 그럴 때마다 뾰족하게 무언가가 다시 되돌아와서 더 난감했지만)

그렇게 결혼 후 몇 년 동안 우리 가족의 연간 김치 소비량이 잘 예측이 되지 않을 때까지 나는 김장 전에 어머니의 남은 김치를 손수 버려야 했다.


아버지가 퇴직하시고 부모님은 시골 선산 근처에 텃밭을 가꾸셨다. 말이 텃밭이지 부모님은 500평이 넘는 공간에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노동을 쏟아 생업처럼 밭을 일궈 다양한 작물을 키우셨다. 봄이 오면 밭 한쪽에 여러 가지 나물을 심어 식구들과 이웃들에게 나누었다. 봄부터 들깨와 참깨를 심으셨고, 여름이 지나면 그것들을 수확해서 들기름과 참기름을 만드셨다. 또 고추를 심고 재배해서 여름에는 빨간 고추를 말려 놓으셨다. 초여름에는 열무를 심었고, 가을 무렵에는 무와 배추를 심고, 김장할 무렵에는 배추와 무를 수확했다.


부모님이 가꾸시는 밭의 작물들은 연중 온갖 김치의 보고였다. 오이소박이, 가지 절임, 상추 겉절이, 깻잎 절임, 열무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그리고 김장김치까지 부모님의 김치는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런 밭농사의 최종 마무리는 단연코 김장이었다.

김장을 하기 전부터 한동안 어머니는 온갖 신경을 쓰셨다. 여름부터 미리미리 젓갈을 사서 준비하셨고, 고추밭에서 가꾼 고추를 미리 말려 고춧가루도 미리 준비해두셨다.

밭에서 무와 배추를 길러 손질하고, 손수 배추를 절이고 씻고 하는 거의 모든 과정을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이서 도맡아 하셨다. 어머니는 너무 피곤하신 나머지 영양제 주사를 간간히 맞으면서도, 자식들에게 일 년 동안의 일용할 양식을 준비시켜주기 위해 김장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고되지만 어머니는 그게 낙이라 하셨다.

그리고 초겨울, 김장하는 날에 나와 형의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절인 배추를 양념에 버무리는 단순한 임무만을 하게끔 해주기 위해, 어머니는 사전 거의 모든 작업을 미리 해두셨다. 외지에서 내려오는 자식들을 위한 어머니의 배려였던 것이다. 

이제 너무 고생하시지 마시고, 김치도 조금만 담자는 만류에도, 어머니는 자식들이 먹는 것에는 아까운 것이 없다는 말로 대신하셨다. 


이렇게 수고스럽게 탄생한 김치의 과정을 알기에 나는 담아온 김치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고, 심지어 버리는 것은 더 아까워하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김치로 내가 요리를 하는 빈도와 그 가짓수가 늘었다. 김치찌개도 때에 따라 여러 종류가 가능했다. 달달한 어묵 국물이 생각날 때는 어묵을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했다. 얼큰한 국물에 돼지고기 식감이 생각날 때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했다. 그것도 질릴 쯤에는 돼지 등갈비를 넣고 푹푹 끓여 등갈비 김치찌개를 만들기도 했다.


내가 만든 김치찌개는 내가 살고 있는 서울식도, 내 고향인 충청도 식도 아닌, 전라도 식 레시피에 가깝다. 충청도가 고향인 서울 사람이 전라도식 김치찌개를 끓을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대학시절 하숙집 아주머니 덕분이다. 돼지고기도 듬성듬성 크게, 국물은 적당히 졸여져 참기름 향이 나고, 끓여서 졸인 김치도 맛있었던 아주머니의 김치찌개가 저녁 메뉴로 나올 때에는 나는 과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김치찌개가 너무 맛있어요, 어떻게 끊이는지 좀 알려주세요.”

그렇게 묻게 되어 기억하던 레시피를 내가 직접 손에 익을 때까지 해보게 될지는 그때는 생각지 못했다.

그때 말씀하시던 마지막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

“그래도 김치찌개가 맛있으려면, 김치가 맛있어야 돼.”

어머니의 김치로 예전의 그 김치찌개의 맛이 재현되는 것을 보니, 어머니의 김치 맛도 꽤 괜찮은 편이라는 말과 다름없을 것이다. 


김치 이외에도 어머니는 된장과 간장, 농사를 지은 무, 대파, 호박 등을 주셨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해야 하는) 요리의 가짓수도 늘었다. 어머니가 주신 식재료를 먹기 위해 내가 팔을 걷어붙일 때에야 점점 식재료들이 요리가 되어 소진되었다. 물론 반복할수록 요리의 맛은 더 좋아졌다. 

눈대중으로 뒤에서 보아왔던 어머니의 레시피도 대충 흉내는 내는 경우도 있었다. 

김치볶음밥, 된장찌개, 미역국, 소고기 뭇국, 배추 된장국을 번갈아 끊이고, 라면도 열무김치를 넣어 시원한 열무김치 라면도 끓이게 되었다. 때때로 꼭 어머니가 보내주신 음식이 주재료가 아니더라도 그것들을 보조로 활용하여 카레나 갈비찜을 하기도 했다. 


냉장고에는 아직 버리지 못한 파김치가 한 구석에 놓여있다.

지난봄에 해주신 파김치를 몇 번 먹고 냉장고에 두었는데, 그대로 아직 냉장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쉬어 빠진 파김치를 활용해서 할만한 요리가 없을까 생각하며 한숨을 쉬다가 다시 냉장고 문을 닫았다. 


안부전화를 드릴 때의 끝에는 어머니는 항상 물어보신다.

“열무김치 안 떨어졌냐? 담았는데 좀 부쳐줄까.”

보내주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천천히 보내주셔도 된다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내 김치냉장고 안에 아직 반통이나 남아있는 열무김치가 스쳐 지나갔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의 새로운 열무김치가 택배로 도착해 있었다.

그래. 오늘부터는 당분간 열무김치만 먹어야겠다.


무슨 요리를 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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