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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Nov 09. 2020

어머니께서 영정사진을 찍으셨다

어제와 다른 오늘

“당장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보셔야 합니다.”


지방의 두 군데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어머니께서 들었던 말이었다. 

서울의 그 큰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고, 시골에서 어머니가 진료를 위해 오시는 날, 나는 휴가를 내어 기차역으로 모시러 나갔다. 

그 전날,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걸어, ‘내가 반찬 좀 만들어갈까’ 물어보셨지만, 나는 진찰받으러 오시면서 무슨 반찬을 만들어 오시냐며 극구 사양하였다. 아무것도 안 가져오실 줄 알았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가져오신 가방 안에는 참기름 한 병과 내가 입을 니트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평소와는 달리 많이 긴장하신 모습이셨다.

사전 진료실에서 혈압을 재셨을 때, 최고혈압은 150이 넘으셨다. 평소 저혈압이셨던 어머니에게는 정말 비정상적인 혈압의 수치였던 만큼 많이 긴장을 하셨던 것이다. 

1년 전 건강검진을 받으셨을 때, 폐의 한쪽에 작은 무엇인가가 보였었는데, 올해 받은 검진에서는 그것이 더 커져있었고 그 주위에 퍼져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의사들이 좀 심각하게 이야기를 했고, 어머니께서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그런 어머니의 복잡한 마음이 평소에 보지 못한 표정으로 대신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 표정을 보니 나도 더불어 초조해졌다. 


10시 반. 이런저런 절차를 마치고, 어머니와 아버지, 나는 담당교수의 앞에 앉았다. 

담당교수는 가져온 CT촬영 영상을 잠시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잠시였지만, 어머니의 표정이 많이 굳으신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잠깐의 정적과 침묵.

내 숨소리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심각한 건 아닌 것 같고요, 감기 후유증으로 올 수 있는 염증들이 퍼진 것 같습니다. 한 달 정도 약 처방해드릴 테니, 드시고 그때 오셔서, 엑스레이 찍으시면 될 거 같습니다.”


어머니가 담당의사에게 정성스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셨다. 의사는 아무 치료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안도감을 주신, 그분에 대한 예의와 감사의 표시였다. 

진료실을 나오면서 어머니께서는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이네”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옆에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별 것도 아닌데, 네 엄마는 어제 영정사진도 찍으셨다며, 껄껄 웃으셨다. 


본인의 영정사진을 찍고 오실만큼 어머니는 나도 모를 준비를 하셨던 것이다. 

그것도 그런 것이, 고향의 두 군데 병원에서 워낙 겁을 많이 주신 모양이고, 어머니는 암 또는 그 이상의 무엇이라고 예상하셨던 것이다. 정말 이제 모든 것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어떤 기분으로 그 사진을 찍으셨을지 생각하니 내 마음 또한 먹먹해졌다. 

어제 고향에 있는 5학년이 된 큰 손녀가, 전화를 걸어 ‘할머니, 괜찮으실 거예요’라고 했다며,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눈은 이미 젖어있었다. 

진료실을 나오며, 나는 고향에 있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르긴 몰라도, 어머니만큼 걱정을 많이 했을 형에게 나는 안도할 수 있도록 소식을 전해주었다. 

올해 일흔셋이 되신 어머니가 그렇게 약해지셨다는 게 참 슬프게 느껴졌다.

삶의 석양에 앉아 계신 어머니는 작은 바람에도 큰 파도가 일어 삶 전체에 절망의 그늘이 드리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계셨다. 


병원 근처에서 두 분께 식사를 대접해드리고, 다시 기차역으로 모셔다 드렸다.

가시는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어제는 길에 다니면서 사람들이 웃는데, 그게 너무 부럽고 행복해 보이더라” 하는 말씀에,

“에이, 지금부터 웃으면서 사시면 되죠” 라며 나는 대답했지만, 어머니의 그 말씀이 참 애잔하게 느껴졌다. 


“이제 눈 주름살 수술 예약해도 될 거 같네”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말에는, 생의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교차해 지나갔다. 

동시에, 죽음이라는 단어에 마음으로 가까이 계신 그분께,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 많은 투정을 부렸던 장면이 문득 떠올라 몹시 부끄러워졌다.

누군가의 시구절처럼, ‘내가 감기 들면 몸살을 앓으시는 어머니.’  

이제 그분의 알지 못하는 병에, 불현듯 밀려오는 불효의 기억들로 내 마음이 저며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와 다른 오늘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 하루였다.


집에 와서 어머니가 사주신 니트를 입어보니 색감과 재질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다음 날 출근하면서 바로 입었다. 출근 후, 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다.


“김치 떨어졌다면서? 이따 고속버스 택배로 부쳐 줄테니 찾거라”


어머니가 사주신 니트를 입고 출근한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김치와 반찬을 찾으러 퇴근 후 가게 되었다. 택배를 찾고 박스를 열어본 후 나는 간간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총각김치 한 통, 오이소박이 한 통, 장조림, 돼지주물럭, 돼지등뼈 시래깃국, 농사지으신 호박 두 개, 대파 묶음.

정말 이틀 만에 준비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노동이 묻어나는 대단한 조합이었다.

그 반찬들을 통해 어머니는 병원에서 신경 써줘서 고마웠다고 말씀하고 계셨다. 


언제까지 어머니께 정성스러운 노고를 받아먹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 일상에 어머니의 무탈한 흔적들이 아주 오래도록 남아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긴장하고 초조했던 어제와 다른, 평온해진 소소한 오늘이 무릇 감사해진다. 


「....
  밥상 앞에서
  먹고 사는 일처럼 
  끊을 수 있는 인연이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감기 들면 몸살을 앓으시는 어머니

  아! 한가하면 딴생각 드는 법
  또 석 달 가량 나는 自由다, 라고 외치자꾸나, 내 젊음에 후회는 없다, 라고 
  그런데 냉장고에 양념된 돼지 불고기가 있어서 그만
  엄마, 소리만 새어나왔다. 」

  - 김중식, <엄마는 출장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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