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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Jan 08. 2021

뜨거운 와인, 따뜻한 추억을 기억하다

뱅쇼의 기억


뱅쇼라 불리는 뜨거운 와인을 생각하면 기억하는 장면들이 있다.  

뱅쇼(Vin Chaud)는 ‘Vin(포도주)’와 ‘chaud(따뜻한, 뜨거운)’라는 말을 합친 단어로, '따뜻한 와인'이라는 뜻이다.


뱅쇼는 영어로는 멀드 와인(Mulled Wine), 독어로는 글루바인(Gluhwein), 북유럽 국가에서는 그뤼그라고 한다. 
겨울이 매우 추운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원기 회복과 감기 예방을 위해 약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이 기원이다. 특히 축제나 벼룩시장에서 종이컵에 한 국자씩 부어서 팔면서 겨울 축제의 술로 알려지게 되었다. 겨울에 큰 냄비에 뱅쇼를 만들어 가족과 함께 두고 마시거나, 손님을 초대해 함께 나누는 음료이다. 유럽의 상점이나 카페에서 겨울철에 큰 머그잔에 담아 흔히 팔고 있다. 특히 크리스마스를 맞는 유럽의 거리에서는 길거리 음료로 판매하기도 한다. 
뱅쇼가 추위와 감기에 효과가 있는 까닭은 주원료인 레드와인에 들어 있는 탄닌, 라스베라트롤, 안토시아닌 등의 폴리페놀 성분 때문이다. 폴리페놀 성분들은 항산화 작용을 하여 젊음을 유지하고 면역력을 키우는 효과가 있다.
<다음 백과 중에서..>


오래 전의 회사 송년회가 있었던 날이었다. 그날 부서의 장은 뱅쇼를 손수 준비하고 설명을 덧붙였다.

“저와 아내가 여러분들을 위해 어제 손수 준비하였습니다. 유럽에서는 한국의 쌍화차와 비슷하게 해서 마시는 음료입니다...”


말주변이 없는 나였지만, 어째서인지 그날 행사 진행의 마이크가 내게 쥐어져 있었다. 

50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여 커다란 통에 있는 그 음료를 와인잔으로 계속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간간히 다음 순서나 소개의 진행을 해주고 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어색한 탓인지, 나는 그 음료에 계속 입이 갔고, 먹을수록 알싸한 기분에 이상한 중독을 일으켰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불빛, 진부하지만 특별했던 캐럴송, 웅성거리고 환호하는 사람들, 바알간 얼굴, 그리고 내 앞에서 건배를 하던 그의 표정.


그 이후에 내가 뱅쇼를 다시 만난 건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크리스마스에 어린이 대공원에 갔을 때였다. 아장거리는 둘째 아이를 안고, 작은 서커스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그 날 공연에 온 관객들을 위해 뱅쇼가 한 잔씩 주어줬다.


처음 맛보았던 때보다 더 요란한 분위기에서 다시 먹는 따뜻한 와인.

서커스를 위한 간이 천막에서의 입김이 불어 나오는 한기와 따뜻한 음료는 제법 어울렸다. 한참이 지난 지금 그 공연의 내용보다는 입김 서린 뱅쇼의 기억만 있는 건, 이상하게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차가운 공기와 함께 들어오는 연말의 냄새, 뜨거운 와인, 부드러운 생강향, 텁텁한 뒷맛.

은근히 데워지는 몸. 

사람들의 들뜬 표정.

큰 스피커를 통해 나오던 어릿광대의 목소리.

아이들의 신기한 표정.


그리고 한 모금 더 마셨을 때, 나는 순간이동되어 오래전 건배를 건네는 바알간 그의 얼굴 앞에 서 있다. 따뜻한 와인 한 모금으로 기억창고에 저장되었는지도 몰랐던 장면으로 내가 회오리쳐 들어가 있다. 그리고 나도 그의 잔에 내 잔을 부딪쳐준다.

팅- 하는 소리가 바로 내 심장으로 울려 크게 요동쳤다. 쿵-

공짜의 음료라고 서로 말을 하며, 아낌없이 가져다 계속 홀짝 거리며 마셨던 그때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이후에 우리는 여러 번의 ‘팅-’과 ‘쿵-’을 반복하며, 알 수 없는 사이가 되었지만, 연말이 되면 수수께끼를 풀 듯 하나하나 튀어나오는 기억들에 자꾸 그때의 나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어릿광대의 마이크 인사가 나를 아련한 기억 속에서 깨우고 있었다.

안겨 있던 아이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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