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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Dec 09. 2020

내가 공덕을 쌓는 이유

취객과 아버지

“저기요,, 괜찮으세요..?
“제가 댁에 전화해드릴까요..?


버스 정류장 앞에 멀쩡하게 생긴 아저씨 한분이 술에 취해 누워계신다.

나는 아저씨의 휴대폰을 꺼내어 집에 전화를 드리고, 112에 신고도 했다.

잠시 후, 경찰관들이 와서 아저씨의 상태를 봤고, 아내로 보이는 분이 오셔서 그분을 모셔가셨다.


그렇게 취해서 누워계신 분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몇 해전의 일이다.

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머리를 다치셨다고 하셨지만, 다행히도 크게 다치신 것 같지는 않았다.


다치시던 날 아버지는 전 직장동료분의 문병을 가셨다.

그분은 말기 암으로 입원하고 계셨었는데, 그걸 보신 아버지와 같이 가신 친구분들이 속이 많이 상하셨던 모양이다. 

문병 후, 타는 속을 달래려 술을 아주 많이 드셨다고 했다.

휘청휘청 지하철로 걸어오시다가 그만 지하철 계단에서 넘어지셨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주무시는 아버지를 지하철 역무실에서 어머니와 형이 모셔오셨다. 

그 후부터 아버지는 두통이 있으셨다. 이틀간을 진통제를 드셔도 차도가 없자, 병원으로 가셨는데 검사 후 바로 입원하시게 됐다.

머리를 바닥에 부딪칠 때의 충격으로 머리에 약간의 피가 고여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간 입원하시다 아버지는 퇴원하셨지만, 그 뒤부터 나는 길에 술에 취해 누워계신 분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오늘도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중랑천을 걷고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넘어지셔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괜찮으세요? 구급차 불러드릴까요..?”

괜찮으시다고 부축만 해달라고 하신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었는데, 무언가를 줍다가 불편하신 다리가 갑자기 말을 안 들으신 모양이다.


'이렇게 공덕을 쌓으면, 우리 아버지도 무탈하시겠지?', 생각하며 전화기를 꺼내어 익숙한 번호를 눌러본다.


“아버지, 건강하시죠?”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다.

어머니께서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서울에 오시는 날이었다.

그런데 병원에 오신 어머니보다 아버지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힘이 없는 걸음걸이, 어딘지 모르게 수척해진 얼굴, 앉고 일어설 때마다 힘겨운 소리를 내는 모습은 불과 몇 개월 전의 아버지의 모습과 분명 달랐다.

“에고고..” “어이쿠...”

앉거나 일어설 때 나오는 아버지의 탄성이었다.

아버지는 무릎 아래로 시려오는 증상과 통증으로 제대로 잠도 못 주무신 지가 꽤 되셨다고 했다.

여러 병원을 다녀보셨지만, 제대로 된 통증의 원인을 잘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본인의 몸상태를 뒤로 하고, 서울의 병원에 홀로 오시게 될 어머니의 걱정으로 아픈 다리로 오신 아버지의 모습이 왠지 애잔하게 느껴졌다.

정작 병원에 오신 어머니께서는 이제 내원하지 않을 만큼 호전되었지만, 이제 어머니조차도 아버지 걱정이셨다.


부모님이 고향에 내려가신 후에도 나는 예전과 다른 아버지의 모습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고향에 내려 가신 다음날 아버지는 이런저런 검사를 위해 다시 고향의 병원을 찾으셨다.

병의 원인을 찾지 못해 이런저런 고민만 하던 나와는 달리, 형은 아예 병원 예약을 잡아드린 것이다.

‘그래, 형은 역시 형이다.’


그랬던 까닭에, 술을 드시고 쓰러져 길가에 계신 분이나 길에 넘어지신 분들이 보일 때면, 시골에 계신 아버지 생각에 간간히 도움을 드려왔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왠지 아버지가 더 건강해지실 것 같아서...


‘내가 쌓은 공덕이 부족해진 것은 아닐까’하며 괜스레 심란한 생각이 출렁거렸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고향집에 내려가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밤늦게까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시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기력 없는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자꾸 떠올라 북받쳐 오르는 감정이 잘 추스러지지 않았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은 늙고 쇠약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그 거대한 이치를 거슬러 그러지 않으셨으면 한다.

오래오래.


며칠 뒤면 찾아올 내 생일에는 고향에 잠깐 들러 부모님께 따뜻한 밥 한번 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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