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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Apr 13. 2021

자가격리 10일째입니다.

어쩌면 다행, 멈춤에서 삶의 이면을 보다


자가격리 10일째. 이제 이 생활이 조금씩 적응이 되어간다.


내가 코로나로 인한 자가 격리자가 된 것은 같은 부서에서 확진자가 2명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옆 사무실에서 1명의 확진자가 나왔기에, 같은 층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무슨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받아야 한다니 경험상 받아보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검사를 위해서 임시 선별 진료소를 갑자기 방문해야 하는 시점에서도, 나는 사무실 책상의 쌓아두었던 서류와 업무 목록들을 세고 있었다. 

그다음 날 아침, 나의 검사 결과는 다행히도 음성이었다.

휴- 안도의 한 숨을 쉬면서 다른 사람들의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폐쇄된 사무실에 들어가 서류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사무실 필수 인원으로 지정되었기에, 사무실에 갈 수가 있었다)

부서의 아르바이트 학생 중 한 명이 양성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한 명이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으려 노력했다.

그 주의 화요일 오전에만 출근했던 그 학생은 그 날 이상하게도 나와 접촉한 적이 있었다. 평소에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일을 잘 시키지는 않지만, 그날따라 내가 그 학생에게 무슨 일인가를 부탁했고, 학생이 그것을 처리한 결과를 나에게 포스트잇으로 메모를 적어 주었다.

나는 아직도 책상에 붙여져 있던 그 메모가 적힌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잠시 후 비닐봉지에 싸서 버렸다.

좀 찝찝하긴 했지만, 나는 ‘음성’이 나왔기에, 쌓여둔 업무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역학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무실은 폐쇄되기에, 나는 그다음 날 재택근무를 위해 사무실 컴퓨터의 어떤 파일을 챙겨야 하는 고민할 즈음.

유독 결과가 늦게 나오던 사무실 직원 한 사람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양성”


종전의 메모지를 버렸던 찝찝함은 온 데 간데없고, 황당함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제까지 바로 내 옆자리에서 일을 하던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서 일을 같이 하던 직원.

어제 업무를 중단하고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나에게 ‘무서워요’라고 했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직원이 양성 판정을 받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보건소의 역학조사관들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조사관들은 양성 판정받은 그 직원의 자리와 옆자리인 내 자리의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나서, 나에게 식사는 서로 어떻게 했는지, 주요 동선이 어디인지 등의 질문을 하였다.

“식사는 배달 서비스를 이용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먹었고, 사무실에서 마스크도 항상 쓰고 있었습니다. 서로 말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 근데요. 제가 지금 일이 너무 쌓여 있습니다. 거의 접촉한 일이 없는데, 제가 음성이 나왔는데, 자가격리가 될까요?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까지 덧붙여 줬다.


심란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관할 보건소에서 전화를 받았다.

“자가 격리될 가능성이 큽니다”라는 한마디.

그 전화는 사무실의 모든 구성원들이 똑같이 받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바로 차를 몰아 다시 사무실로 갔다.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밀린 업무 생각에 나는 사무실 컴퓨터를 아예 떼어서 차에 싣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2주간의 자가격리 통보를 문자로 받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사무실의 모든 사람이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다.

내가 자가격리 통보를 받게 되자, 모든 것이 꼬이게 됐다.

일단 집단시설 종사자인 아내도 출근 중지 조치를 당했고, 재택근무를 해야 했다.

초등생인 첫째 아이도 등교중지, 어린이집을 다니는 둘째도 등원 중지 조치를 받았다.


이후의 생활은 정말 순탄치가 않았다.

이건 상식적인 수준의 격리는 아니었다.

말이 자가격리이지, 네 식구가 모두 집에 갇혀 있는 가족 격리가 좀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가족이 모두 한 집에 있으니, 방을 따로 분리한다 해도 잠만 따로 잘 뿐, 나의 ‘격리’는 큰 의미가 없다.

서로의 도움으로 가사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격리는 현실적으로 될 수 없다. 주변의 도움 없이 두 아이들을 키우는 맞벌이 부부가 생활해오던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솔직히 단시간에 패턴을 바꿀 수 없다)

육아와 가사의 부담이 오롯이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한 사람한테 가야 한다는 것은 고문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생활패턴도 바꾸기 어려웠다. 화장실도 따로 써야 하지만, 아이들은 놀다가 습관적으로 아무 화장실에나 가서 볼 일을 봤다.

아직 장난기가 많은 둘째는 수시 때때로 내가 격리된 방에 들어와 보드게임을 하자고 조르고, 내가 아이들의 끼니를 챙겨줘야 하는 경우도 자주 생겼다. 


마스크를 쓰고 집에서 업무도 하고 가사를 돌봤지만,

이 상황에서 사무실의 두 명의 확진자 중 한 명이 내 옆자리 직원이라는 말을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이미 출근 중지로 예민해진 아내의 예민함을 더 날카롭게 할 뿐이었고, 이 상황을 해결할 다른 돌파구도 또한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내가 마스크를 집에서도 잘 쓰고, 자가격리 통보를 받자마자 사놓았던 소독액으로 소독을 자주 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잠복기를 감안하여 내가 코로나 검사를 여러 번 받고자 하는 수고를 각오하고 있었다. 


오전에는 주로 아내가 업무를 보았고, 오후에는 주로 내가 업무를 하는 체제로 며칠을 보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서로 싸우기도 하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휴대폰 게임을 시켜달라며 떼를 부리다가 혼나기도 했다.

서로의 예민함에 부딪혀 우리 부부는 종종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아내는 내가 이미 격리가 잘 안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아내는 격리를 엄격하게 지키려고 노력해서 오히려, 서로를 너무 불편하게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 그렇지, 서로 맞는 게 없다)


자가 격리자에게 부여되는 국가의 통제 기제는 생각보다 잘 작동했다. 자가 격리자로 지정되자마자 설치해야 되는 애플리케이션이 휴대폰에 깔리게 되면, 위치가 추적이 되어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또 어플을 끄게 되면, 바로 구청 담당자한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어플을 끄시면 안 됩니다, 정 위치에 계신지 제가 확인이 안 됩니다”

한 번은 구청에서 집으로 ‘불시점검’이 와서 집에 내가 있는지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가격리의 불시점검입니다. 신분증 가지고 확인하겠습니다.”

“.....”


격리기간이더라도 아이들과 같이 있으니, 항상 걱정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처음 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와서 안심이 됐지만, 그러나 음성 통보가 나올 때까지 조마조마하던 순간이 있었다. 


삶에서 항상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과한 욕심일 것이다. 

그러나 거창한 행복을 바란다기보다는, 다가온 불행 안에서도 소소한 다행을 바라는 마음이 좀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만큼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의미를 지난 며칠 사이의 경험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다행’이 바로 한자어로 많은 좋은 운이라는 뜻의 ‘多幸’ 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뜻하지 않은 이 상황에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며칠간은 스트레스로 술이 없이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최악의 상황까지는 아직 내가 가지는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만약 사무실 전체가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았더라면, 소위 무증상의 전파자들에게 감염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상상도 하기 싫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업무들로 버거워질 때쯤 찾아온 이 격리로 인해 바로바로 해야 하는 시급하고 중요한 일들과 그렇지 못한 일들을 잘 정리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중요하지 않은 업무들이 바로바로 가지치기가 되어버렸다.

주어진 업무를 즉시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은 되지 않지만, 사무실의 환경과 가장 유사한 여건을 가질 수 있도록 내 사무실 자리의 컴퓨터를 떼어온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이런저런 노트북의 환경에 적응할 필요도 없고, 메일을 확인하고 파일을 열 때마다 구동되는 응용프로그램을 매번 깔아야 하는 수고로움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가격리 10일 차, 지금 밤 11시.

오늘 하루도 불행과 다행스러운 사이를 수십 번을 왔다 갔다 하고 겨우 책상에 앉았다.


나에게는 아직 4일간의 격리기간이 더 남아있다는 것에 다시 불안과 안도의 양가적인 감정들이 잠시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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