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아니라 묘연
무엇에 홀린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도 모를 만큼 머릿속이 하얗게 된 기분이었다.
“우리 얘 데러 가자.”
순간, 모두가 깜짝 놀랐다.
구경하던 두 아들이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평소에 무엇을 사거나 기르는 것에 반대만 하던 내가 먼저 꺼낸 그 말에, 아내는 눈을 크고 동그랗게 떠서 “정말?”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까불지도 활발하지도 않았지만 조심조심 장난기를 담아 행동하는 것이 우리 집과 잘 어울린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밤 신기하고 생경한 마음을 재우려 침대에 누웠을 때 그 아이는 내 곁으로 와 누웠다.
꾸르륵꾸르륵 골골-
배에서 나는 진동소리*1)는 고요한 방의 어색함을 깨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기분에 잠이 들어 새벽에 깨어났을 때, 나는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두 아이도 아직 버거운데 신중할 겨를도 없이 덜컥 새로운 생명을 집에 들이다니.
아이는 그것도 모른 채 내 배위로 올라와 몸을 동그랗게 말아 머리를 내 가슴팍에 대고 자고 있었다.
내 심장소리를 들려줘야 할 대상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에 신기하고 무거운 생각에 사로잡혀 눈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꾸르륵꾸르륵 골골-
잠이 깬 아이는 가슴팍에서 기어와 내 겉 자란 턱의 수염을 핥고 있다. 할짝할짝.
고마움의 뜻인지 위로의 표현인지 격려의 몸짓인지 알 수 없었다.
아침부터 아내와 난 심각하게 서로를 응시했다.
우리 어쩔까. 다시 데려다줄까.
고민하는 사이 나는 오래전 첫아이가 태어나던 분말실의 기억을 떠올렸다.
건강히 태어나 준 것만으로 기뻐하던 마음과 동시에 내가 이제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짓누르던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던 그곳. 이제 그 무거운 공기를 다시 들이마시는 듯한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먼치킨 이란 종에 대해서는 듣지도 알지도 못했던 나는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본 후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먼치킨(Munckin) : 자연 발생한 돌연변이종이다. 1983년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음악교사인 산드라 호첸델(Hockenedel)이 길거리에서 짧은 다리의 임신한 암컷 고양이를 발견한 것이 시초이다. 이 암컷 고양이가 낳은 수컷 고양이는 먼치킨의 시조가 되었고, 이 고양이가 일반 고양이와 교배하면서 현재의 먼치킨이 탄생하였다. 한편 국제 고양이 애호가 협회(CFA)에서는 유전질환을 우려하며 먼치킨을 공식 품종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에서.
'자연발생적 돌연변이로 유전병 확률이 있을 수 있다니.'*2)
우리 다시 데려다 주자
그 사이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방의 이곳저곳을 장난기로 적응하고 있었다.
우리가 새 생명을 들이는 그릇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아내와 나는 아이를 데려왔던 작은 상자에 처음처럼 다시 넣어 차에 실었다.
집을 나가는 길에 방문에 붙여 놨던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한글도 모르는 둘째 아이의 삐뚤빼뚤 종이에 ‘사랑해’라고 써놓은 글씨를 보면서 회한이 밀려왔다.
작은 박스 안에 담긴 아이는 그곳으로 다시 가는 동안, 분홍색 코를 종이박스의 작은 창문 구멍에 넣어 마구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슬픔을 몸으로 표현하는 듯 애처로웠다.
처음 입양한 곳에 도착한 우리는 꽤 심각하게 오랜 시간 상담을 했다.
우리가 이 아이를 잘 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한참의 면담 후 우리의 불안감은 점차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대충 훑어보던 아이의 몸도 세심히 살펴보았다.
안도감이 불안함을 넘어설 즈음 우리는 아이를 다시 박스에 넣어 차에 태웠다.
올 때는 그렇게 울던 아이가 이상하게도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장님이 해 주신 말씀이 뇌리에 박혔다.
“이 아이와 헤어지게 된다면 아이와의 묘연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인연(因緣)이 아니라 묘연(猫然).
묘연이란 말이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의 폭풍은 이미 잔잔해져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던 내 불안의 마음도 묘연(杳然)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이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조용한 설렘이 작은 소용돌이로 일기 시작했다. 십 년 전 첫째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처럼.
...
언젠가는 이 말을 하리라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또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때가 올 것이라고.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 보면 갑자기 녹음이 짙어지는 곳이 나타난다. 처음 가보는 곳이지만, 그래 여기서 내리자 여기서 내려 살아가자, 그랬던 어떤 순간이 있었다. 그때처럼 갑자기 어떤 결심이 서는 순간, 그때 하리라.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어떤 순간이 올지 어떨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꼭 한번은 말하고 싶었다. 그 시간표 위로 지나간 전철들을 도저히 다 셀 수는 없다. 이제 와서 그것들, 그 말들, 그런데 어느 날은 그 이야기 꺼내지도 못하고 그냥 죽을 것만 같다. 그런데 난 왜 이러는 것일까, 얘기를 들어줄 사람은 들을 생각도 없는데.
<그 시간표 위로> 중에서 / 최정례
*각주 1) 골골송(cat purr) : 고양이가 낮게 반복적으로 ‘그르렁’ 또는 ‘가르릉’ 내는 소리를 골골송이라고 합니다. 고양이는 기분이 좋고 편안할 때 노곤한 표정으로 골골송을 부릅니다. 반려인과 스킨십을 할 때 골골거린다면 반려인을 좋아하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각주 2) 개인적인 의견으로 오해의 여지가 있어서, 다른 글들도 하단에 명시합니다.
유전병이 심한 품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까지 나온 연구결과로 밝혀진 바는 의외로 건강한 편이다. 다리가 짧은 견종들에 비해 관절염 위험은 의외로 적지만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짧은 체형으로 인해 척추전만증에 대한 위험도가 높다. 타 품종과 교배가 많이 이루어지는 만큼 다른 품종이 갖는 유전병을 경계해야 한다. 페르시안과 교배한 미뉴엣의 경우 눌린 두상에 의한 문제와 hcm을, 스코티쉬 폴드와 교배한 킬트의 경우 골연골 이형성증을 조심해야 하는 식. 먼치킨의 짧은 체형이 같은 유전병에 걸렸을 때 다른 품종이 걸렸을 때보다 피해가 크다는 견해들이 있으므로 키우기 전 부모 묘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나무위키 중에서>
다리가 짧은 종이지만 먼치킨 고양이에게 걱정할만 한 유전병은 특별히 없다. 전문가들은 오랜 시간 먼치킨 고양이를 연구했지만 건강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먼치킨 고양이는 다리가 짧을 뿐이지, 이것이 유전적인 질명 때문인 것은 아니다. 먼치킨 고양이는 보통 고양이들만큼 건강하다. <https://brunch.co.kr/@famtimes/232>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