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1) 상하이

1. 시작이 반이라던데

by 제리에이치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넘어가는 새해,

스물세 살의 나는 휴학을 결심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나는 늘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므로, 대학생이 되었다면 대학생만의 권리인 휴학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뿐이었다.

떨떠름해하시던 부모님에게 어찌어찌 허락을 받아낸 뒤 학교에 1년의 휴학계를 제출한 기쁨도 잠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뜰 때 잠들고, 해 질 때 일어나는 지구 반대편의 생활 리듬으로 살았다간 '그러려고 휴학했냐'로 시작하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따라올 것이 분명했다. 나는 부모님의 품을 떠나 자취를 해본 적 없는 캥거루였으므로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는 부모님께 어떠한 퍼포먼스라도 보여야만 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해외여행이었다.


즉흥적으로 정해진 해외 여행. 수중에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생각했을 때 앞으로 두어 달 더 모은다고 해도 멀리 떠나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혼자 떠나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익숙한 문화권인 일본이나 중국으로 가는게 좋을 것 같았다. 일본이냐, 중국이냐를 두고 고민은 길지 않았다. 중국인이 포함되어 있는 아이돌 그룹도 좋아하겠다, 어렸을 때 한자도 배웠겠다, 취미로 중국어도 잠깐 배웠겠다. 패키지가 아닌 첫 번째 해외여행은 중국의 상하이로 정해졌다. 앞으로의 고난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Who am I?




다행히 상하이 여행에 대한 정보를 얻을 곳은 넘쳐났다. 블로그를 찾아가며 여권도 발급받았고, 항공권과 숙소도 무리 없이 예약했다. 서울역 부근에 직접 찾아가 비자도 신청했다. 작성해야 할 내용은 어찌나 많고, 준비할 서류도 어찌나 많은지.

중국 관광 비자를 신청할 때는 여행 기간 동안 어떤 루트로 돌아다닐 것인지 여행 계획을 적어 내야 했다. 사실 그때는 정말 지킬 계획을 생각했다기 보다는, 그저 선량한 관광객이라는 것을 어필할 만한 유명 관광지들을 생각하는 것에 그쳤었다.

다행히 비자는 반려 없이 한 번에 통과되었다. 이 때만 해도 앞으로의 여행이 순탄할 줄 알았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혼자 여행을 가 본 적이 있어야 알지. 진짜로 내가 실천할 계획을 짜보자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블로그라는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어봤자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A블로그에서는 여기가 좋다는데 B블로그에서는 기대 이하였다고 하고, C블로그에서는 한 번 정도는 가볼 만한 곳이라고 한다. 아~ 어쩌란 말이냐.

그냥 사람들이 공유해 주는 일정을 따라가면 가장 편할 일인데, 그건 또 내키지 않았다. 오만가지에 의미를 많이 두는 사람인지라 '내 첫 자유여행'을 남의 일정으로 따라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후기에 왜 이렇게 휘둘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때의 나는 그러고 싶었나 보지.

그냥 다 포기할까 싶다가도 '다음에 또 언제 갈지 모르는데'라는 생각이 자꾸 본전을 찾게 만들었다. 지금의 나 자신도 잘 모르는 주제에 미래의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이도저도 못하고 갈등하기를 일주일. 종국에는 그냥 내 자아를 꺼내다 앞에 앉혀 놓고 묻고 싶었다. 그래서 너는 누구니?






시작이 반이라던데


블로그만 쳐다보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아, 결국 아날로그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한 토크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얘기했었다. 여행을 갈 때 책이 좋은 이유는 처음과 끝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때의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한 권만 보면 상하이 여행의 모든 것을 정리해 준다니 책이란 얼마나 효율적인 수단인가.

상하이라는 도시를 처음 안 사람처럼 꼼꼼히 책을 읽고 가고 싶은 목적지에 하나씩 동그라미를 쳤다. 블로그에서 얘기한 평가들은 모두 잊고, 내 직감만 믿기로 했다. 그렇게 동그라미 친 장소들을 모아보니 대략적으로 구역이 생겼다. 구역에서 벗어난 목적지는 과감히 낙오시켰다. 숙소에서 가까운 대로 1일 차, 2일 차, 3일 차, 4일 차를 나눠보니 대강 일정표가 완성되었다.

이 일정을 짜는 데만 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린 건지. 시작이 반이라던데 정작 여행은 가기도 전에 잔뜩 지쳐버렸다. 직접 여행 일정을 완성시키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여행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열심히 짜간 일정표에서 계획을 지킨 일정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MBTI에서 내가 극단의 'P'성향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은 몇 년 뒤의 이야기였다.




처음은 늘 어렵다.


준비부터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여권을 만들 때도 내가 스펠링을 제대로 쓴 게 맞나 잔뜩 긴장을 했고, 항공권과 숙소는 종이로도 뽑고, 핸드폰에도 저장하고, 사진까지 찍어두고도 불안해했다. 비자며 일정은 말할 것도 없었다. 출국 전 날에는 위탁수화물로 보낼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몇 번씩 읽었던 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틈은 넘쳐났고, 전래동화 <콩쥐팥쥐>의 두꺼비도 막을 수 없는 누수가 여행 내내 발생했다. (크고 작은 오만가지 사고들에 대해서는 추후에 천천히 적어볼 예정이다.)


처음은 늘 어렵다. 어쩌면 당연하다. 그것이 처음이니까.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이기 때문에 용감해지는 순간이 온다. 어설프게라도 안다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도 처음이기에 겁이 없어서, 그게 안되는 줄 몰라서, 임기응변이 부족해서 그저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한다면 절대 하지 못할 미친 짓들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몇 년째 술자리 안주로 쏠쏠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있으니 좋은 게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래, 내 첫 여행은 용감했다. 어쩌면 당연하다. 그것이 처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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