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상하이

2. 어설프기 짝이 없는

by 제리에이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상하이

상하이로 첫 여행을 떠난 2016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계가 스마트하면 무얼하나, 정작 사용하는 사람은 스마트하지 못했는데.


지금 떠올려 보면 왜 그랬나 싶지만 과거의 나는 그게 최선이었겠거니, 생각하는게 마음 편하다.




우물 안 개구리


사실 중국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11살이었나, 12살이었나. 초등학생 때 학교를 통해 간 것이 내 인생의 첫 해외여행이자, 중국여행이었다.

대도시도 아니었고 도시 이름을 기억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어디를 갔는지도, 뭘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으니 지금은 거의 잊혀진 기억이고 이는 실패한 여행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 그 잊혀진 기억 속에서 남은 몇 가지 잔상들이 있었다.


더운 여름, 길거리에서 윗옷을 벗고 돌아다니던 아저씨들.

낙후된 길거리, 비위생적인 화장실.


음, 아무리 봐도 긍정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그 이후로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고 상하이는 워낙 대도시이니 옛날의 그 도시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푸동 공항에 내려서 놀란 나 자신을 보면서 깨달았다. 생각보다 더 많이 발전했구나.

푸동공항은 크고, 넓고, 깨끗했다. 다른 나라 공항은 가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다들 인천공항이 세계에서 제일 좋다길래 그렇게 알고 살았는데, 푸동공항이 인천공항보다 좋다고는 못해도, 대강 보기에는 인천공항만큼 좋았던 것도 같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깨달았다. 세계는 넓고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되는 일이 없네


지도를 보면 상하이는 위도 상으로 제주도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다.

내가 여행을 떠난 시기는 2016년 3월.

서울의 공기는 아직 차가웠기에, 제주도보다 따뜻한 도시로 가는 것이면 옷을 조금 더 얇게 입어도 되겠거니 생각했다.


지도를 볼 생각은 했으면서 왜 날씨를 찾아볼 생각은 안했던 것일까.


중국에 도착해서 얼어 죽는 줄 알았다. 중국에도 꽃샘추위를 일컫는 표현이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여행을 떠날 그 시기에 한국은 꽃샘추위였고, 중국도 그와 비슷하게 기온이 떨어졌다. 내가 한국을 떠날 때쯤의 서울보다 더 추웠던 것 같다.

한국에서 이 날은 이렇게 입고, 이 때는 이렇게 입고... 계획했던 패션들도 다 필요 없어졌다. 여행 내내 가져온 옷들을 있는 대로 다 껴입고 다녔다. 긴팔에 가디건을 입고 그 위에 트랙탑을 입고 그 위에 코트를 입는, 생각만 해도 우스꽝스러운 패션을 하고 길거리를 활보했다. 그래, 어차피 아무도 나를 모르는데 무슨 소용이냐. 옷이 이상하다고 뭐라고 한들 중국어이니 내가 알아 듣겠냐. 일단 살고 봐야지.


게다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상하이 지하철에서 티켓이 인식되지 않는 바람에 한참 동안 직원과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는 소동을 벌였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가 너무 춥고 배고파서 아무 곳이나 들어간 가게에서는 돈받고도 안먹을 음식을 맛보기까지 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세상 한복판에 뚝 떨어지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없었다. 일이 한 번 꼬이기 시작하니 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처음부터 날씨를 잘 확인했으면 추울 일도 없었을 것이고, 맛집을 잘 알아뒀으면 이상한 음식을 먹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내가 자초한 일은 맞는데, 그래도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첫날부터 이럴 수가 있는걸까?




구글과 바이두, 그리고 종이 지도


여행을 가기 전에 검색했을 때 그런 글을 봤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구글의 사용이 제한되기 때문에 지도 어플과 지하철 어플 모두 중국 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 바이두맵을 다운 받았다. 대강 어떻게 하는지 집에서 연습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이 바보가 된 것인지, 뭔지. 중국에 도착하니까 쓰는 방법을 모르겠더라.


목적지까지 가는 경로는 찾을 줄 몰라도, 다행히 어플만 키면 GPS로 내 현재 위치는 파악이 가능했다. 그렇게 GPS에 의존해 어찌저찌 호텔까지 찾아오니 이미 시간은 저녁이었다. 그런데 바이두맵을 쓸 줄 모르니, 어떻게 나가서 뭘 먹는단 말인가.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여행에 들고 온 상하이 여행 책을 집어들었다. 숙소가 대강 어느 위치에 있는지는 알고 있으니, 멀리만 나가지 않으면 종이 지도를 보면서 숙소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터넷으로 어떻게 쓰는지 검색이라도 해볼 일을 나는 왜 사서 고생을 했던 것일까.


아무튼, 그렇게 책 한 권만 들고 나와서 핸드폰으로는 내 현재 위치를, 종이로는 근처의 랜드마크를 확인해가며 저녁도 먹고, 숙소 앞의 번화가도 한 바퀴 돌고 무사히 돌아왔다. 날은 추웠고, 음식은 맛이 없었다. 바람이 부는 와중에 종이 지도를 쳐다보고 있자니 손도 시렸고, 길 찾는 속도는 핸드폰을 보는 것보다 훨씬 느렸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경험이 나쁘지 않았다. 재미있는 경험인 것도 같고, 생각보다 할만한데?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정말 못해먹겠다면 어떻게든지 방법을 찾아봤을 것 같은데, 그 때의 나는 미련 없이 핸드폰으로 길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핸드폰으로는 지하철과 GPS 확인을 위해서만 이용했고, 나머지는 모두 종이 지도를 보며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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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래서 길을 잃기도 하고 5분이면 갈 거리를 한참을 헤매서 돌아서 가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덕분에 남들은 가지 않는 길을 갔다. 어느 명소로 향하는 길이 아닌 상하이의 평범한 어느 길거리를 돌아다녔고, 그렇게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그 나라를 내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제는 구글맵을 사용할 수 있는 나라들로 여행을 다니는 지금. 가끔씩 그냥 길을 걷고 싶은 날이면 구글맵을 키지 않고 무작정 길거리를 걸어보기도 한다.


처음이 중요한 이유는, 첫 번째 경험이 앞으로의 나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첫 여행에서 우연히 발견한 재미는, 나를 겁없이 발닿는 대로 걷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유명한 장소에서 인생샷을 찍는 것도 좋지만, 바쁜 일정에 굳이 발 들일 일 없는 평범한 길거리를 걸으며 정말 이방인이 된 기분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


첫 번째 여행 만큼은 '나를 찾아가는'보다는, '나를 만들어가는'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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