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매콤하다 못해 알싸한 (1)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취업 준비생이 있다면, 면접에서 ‘야근이 많은데 괜찮습니까?’라고 묻는 회사는 반드시 피하기를 권장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네!’라고 당차게 대답 후 입사했다가 정말 야근에 깔려 버둥대던 인턴이 있었으니 말이다.
취업이 쉽지 않은 시기, 졸업 후 빠르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나도 약간의 뿌듯함을 느꼈고 부모님은 나보다도 더 기뻐하셨다. 그런데 사회생활이 원래 이렇게 매콤한 건가? 그냥 매콤한 맛이 아니라 사람을 울리는 알싸한 맛이었다. 월화수목금금금이 아니라 월월월월월월월로 일주일을 살았다. 나는 94년생 개띠인데 정말로 개가 된 줄 알았다. 출근 첫 일주일, 퇴사 전 마지막 일주일을 빼면 거의 매일 새벽에 택시를 타고 퇴근했다. 가장 끔찍한 것은 퇴근 시간과 관계없이 출근 시간은 동일하게 지켜야 했다는 것이었다. 가끔 나를 안쓰럽게 여긴 직속 상사가 열 시, 혹은 열한 시 정도로 출근하도록 조정해 줄 때가 있었으나 그런 날이면 직속 상사가 대신 혼이 났다. 매일 아침 사당역에서 환승을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했더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냥 생각을 하지 않는 게 편한 날들이 더 많았던 것은 확실하다.
사실상 합격했을 때부터 6개월이라는 인턴 기간만 잘 넘기면 정규직 전환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래서 입사할 때부터 정했던 단 한 가지 목표는 사고 치지 않고 잘 버텨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는 것이었다. 다시 불구덩이 같은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 볼수록 자괴감만 드는 자기소개서를 몇 번이고 작성할 용기는 없었다. 그리고 '정규직을 포기하고 퇴사하겠습니다'라고 회사에 말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는 인턴이라는 내 상황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인턴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누군가 붙잡아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100일쯤부터는 퇴사일 디데이를 세면서 살았던 것 같다. 중도에 그만두면 인턴이라는 한 줄의 경력조차 남길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버텼다. 출근하는 길에는 상당히 각이 있는 경사로가 있는데 거기서 매일 차가 실수로 미끄러져서 나를 쾅 말고 콩, 쳤으면 했다. 병원에 입원하면 출근을 잠시라도 안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때는 이게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라는 것을 몰랐다. 그저 너무 힘들어서, 대한민국의 직장인이라면 모두 이런 생각은 하고 사는 줄 알았다.
인턴 생활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날이 있다. 정확한 날은 기억나지 않지만 일요일이었던 것만 기억난다. 늘 그랬듯이 출근해서 근무를 하다 보니 저녁이 되었다. 상사는 저녁을 먹고 들어오라고 했지만 조금만 더 하면 끝날 것 같아 금방 끝내고 퇴근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법칙이라도 있는 것인지, 생각보다 지지부진한 진도에 결국 저녁을 먹고 오겠다고 일어섰다. 그날은 유독 돈코츠 라멘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먹고 싶던 라멘집이 모두 문을 닫았다. 다른 것이라도 먹어야지, 하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술집, 술집, 술집... 내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결국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을 사들고 나왔다. 갑자기 처량함이 밀려왔다.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전화번호부를 아무리 쓸어봐도 내가 편하게 전화를 걸 만한 사람이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용기 내어 가끔씩 연락하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어. 무슨 일이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말도 못 하고 한참을 울었다. 그때 내 눈물 섞인 한탄을 들어주던 친구와는 지금도 종종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그 외에도 인턴이면서 2박 3일간 혼자 출장을 갔던 일(저녁 8시 전에 일이 끝났다는 점에서 굉장히 즐거웠던 추억이다), 택시 파업으로 집에 가지 못하고 근처 호텔에서 자고 출근했던 일 등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인턴 종료의 날이 몇 주 남지 않던 어느 날 부장님과 면담을 하면서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왜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냐'는 질문에 '몰라서 여쭤보시는 것은 아니죠?'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아직 <90년대생이 온다> 책이 나오지 않았을 시절이었다. 얌전하게 대답했다.
'야근이 너무 많아서 현실적으로 힘에 부칩니다.'
'야근을 일주일에 몇 번이나 했는데?'
'야근의 기준이 8시일까요? 11시일까요?'
당시 회사에서는 8시가 넘어서 퇴근하면 저녁 식대 수당이, 11시가 넘어서 퇴근하면 야근교통비 수당이 지급되었다.
'당연히 8시지.'
'그럼 일주일에 일곱 번 했습니다.'
이 말과 함께 나는 인턴을 끝으로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고, 부장님은 더 이상 나를 잡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이력서란에 쓸 수 있는 <Z사 인턴> 한 줄의 이력과 자기소개서란에 쓸 수 있는 수많은 에피소드들, 어지간한 야근으로는 끄떡도 않는 맷집과 건강을 맞바꾸고 눈물 나게 맵던 6개월의 인턴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용케 잘 버텼다 싶다. 그땐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아서 그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