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죽을 각오로 출근했습니다

8. 마지막 이야기

by 제리에이치

퇴사한 지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 실질적으로 회사를 나가지 않은 지는 네 달, 서류상으로 진정한 백수가 된 지는 세 달. 나는 지금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호스텔 로비에서 이 이야기의 마지막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퇴사를 하는 직장인들이 대개 그렇듯, 나 역시 퇴사를 염두한 순간부터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어딘가로 떠나는 일이었다. 그 '어딘가'는 회사에서 멀수록 좋았고, 한국에서 멀수록 좋았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인 포르투갈로 떠나왔다.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이 여행은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로 지나갈수록 점점 한국에 가까워지고, 7월의 첫날 아침에는 인천공항에 도착함으로써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다.


유럽으로 떠나온 것이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 번아웃을 해결해주지도 못하고, 아직도 매일 밤마다 먹는 약을 끊게 해주지도 못한다. 한국에 돌아갈 때쯤이면 내가 180도 바뀌어 전화 소통도, 문자 소통도 척척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처음에야 그랬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이 거듭될수록 '나의 자아를 찾겠다', '진정한 나를 찾겠다'같은 거창한 의미도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이 시간이 필요했다.


이곳에서는 하루가 지날수록 단순해지고 있다. 눈이 떠질 때 눈을 뜨고, 나가서 발길이 닿는 대로 걸음을 내딛는다. 다리가 아프면 쉬었다가, 발이 안 아프면 걷는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숙소에 들어가 낮잠을 잔다. 혼자가 외로울 때면 동행을 만나 어울렸고, 귀찮다면 혼자서 어디든 다녔다.


길거리를 돌아다닐 때 전 세계의 행인들이 제각기 떠드는 다양한 언어들은 머릿속에서 해석되지 못하고 일종의 백색소음이 되어 한쪽 귀에서 다른 쪽 귀로 빠져나간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해봤자 소용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다. 내가 내딛을 또 다른 한 걸음과 나의 상태만 신경 쓰면 될 일이다. 본능에 가까운 단순한 움직임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다.


반년 전이었다. 죽기 위해서 출근하던 때가 있었다. 회사 옥상에서 발을 내딛는 상상을 해야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모순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매일 죽을 각오로 출근하면서도 정말로 죽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누구보다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정신과에 갔고, 매일 밤 약을 먹었고, 퇴사를 했다.


그리고 다행히 지금은 많은 것들이 좋아졌다. 더 이상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매일같이 앉아서 받아먹던 배달음식으로 부풀어 올랐던 배도 점점 꺼지고 있고, 복잡했던 머릿속은 더욱 단순해지고 있다. 아직은 매일 밤마다 약이 함께 하고 있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직장인으로 돌아가면 어떤 내가 될지 모르겠지만,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나는 더 좋아질 것이다.


더 이상 죽을 각오로 출근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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