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이야기]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요즘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 웹툰이다. 2000년대 중후반께 네이버와 다음 등 유력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상승세를 타더니 최근 들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해외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웹툰 작가들도 연예인급 인기를 누리며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모바일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만큼 기존 책자 형태의 만화에 비해 서사 구조가 약하거나 그림체가 단순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업계에 뛰어드는 젊고 능력 있는 작가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완성도 높은 작품이 그만큼 늘고 있다. 트렌드를 반영한 로맨틱코미디나 장르물, 그리고 역사물과 판타지, 또 일상의 이야기를 그린 일상툰 등 소재의 범위도 광범위하다. 최근 들어 웹툰에 투자해 스토리의 기본을 완성시킨 후 드라마나 영화로 2차 가공하는 식의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 사업도 활발해지고 있다.
웹툰 작가 팬덤 형성, 오프라인에서도 인기
시즌2까지 방송되고 있는 MBC ‘웹툰히어로 툰드라쇼’는 인기 웹툰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드라마화하고 직접 출연까지 해 눈길을 끌고 있다. 네이버에서 ‘패션왕’ ‘복학왕’ 등의 히트 웹툰을 그린 작가 ‘기안84’, 그리고 ‘조선왕조실톡’의 ‘무적핑크’, ‘알게 뭐야’를 연재한 작가 김재한 등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기성 연기자들이 드라마에 출연하지만 사실상 웹툰과 웹툰 작가들이 주축이 된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웹툰이 방송 콘텐츠로 제작될 정도의 화제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반영된 결과다.
그 외에도 네이버 인기 웹툰 ‘마음의 소리’를 연재하고 있는 스타 작가 조석이 SBS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하고, ‘이말년 시리즈’ 등으로 파격적인 그림체를 선보여 마니아층을 형성한 이말년 작가가 tvN’‘SNL 코리아’ 등에 모습을 보이는 등 웹툰 작가들의 방송 나들이가 서서히 늘기 시작했다. 최근에도 KBS 2TV ‘해피투게더3’에 ‘외모지상주의’의 작가 박태준이 출연해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화제가 됐다.
화제성 면에서 주목도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무한도전’까지 웹툰을 내세운 기획 ‘릴레이툰’을 내놨다.
‘미생’ ‘이끼’ 등을 그린 베테랑 윤태호와 기안84, 이말년, 무적핑크를 비롯해 ‘선천적 얼간이들’의 ‘가스파드’, ‘신과 함께’를 그린 주호민 등 인기 웹툰 작가들이 ‘무한도전’ 멤버들과 콤비를 이뤄 단편 웹툰을 선보이는 프로젝트다. 바야흐로 웹툰 전성시대다.
한국만화, 1990년대 이후 극심한 보릿고개
1980년대는 만화 작가들의 전성시대였다. ‘독고탁’ 시리즈의 이상무, ‘공포의 외인구단’ 등 까치 캐릭터로 당대 만화계를 휩쓴 이현세, 순정만화의 대모 황미나, ‘식객’ 등으로 지금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작가 허영만 등이 빅히트작을 차례로 내놓으며 1970년대부터 이어진 한국 만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소년잡지와 보물섬, 아이큐점프 등 만화 전문지가 호황을 누렸고, ‘만화방’이라 불렸던 대본소에서는 단행본 형태의 만화책이 대중과 소통했다. 하니, 둘리 등 당대 인기 캐릭터들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고, 인기 작가들은 인기와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만화가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 가는 길이 순탄하진 못했다. 만화를 즐겨 보던 어린이가 사고를 당할 때면 여지없이 만화 제작 관계자들에 대한 탄압이 이어졌다. 심지어 어린이날에 ‘만화 화형식’이 진행될 정도로 당시 문화 수준은 미개했다. 그러다 1997년에는 정부가 ‘유해 매체로부터의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청소년보호법을 시행해 만화계에 몽둥이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현세와 강철수 등 인기 만화가들을 구속하며 겁을 줬고 만화를 ‘유해 매체’로 규정하고 각종 잣대를 들이대 생산과 발전을 막아버렸다.
이때부터 국내 만화시장은 위축됐고 일본 만화가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 국내시장에 깔리기 시작했다. 한국 만화의 자존감이 꺾이면서 일본 만화의 그림체를 흉내 내는 신인 만화가들이 속출했다. 국내 만화는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만화방’까지 서서히 없어지고 ‘도서 대여점’을 통해 그나마 단행본이 유지됐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생존력을 보여준 작가들이 일부 있었던 반면, 대부분은 업계를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포털사이트가 웹툰이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기 전까지 한국 만화는 극심한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웹툰으로 한국만화 새로운 전성기
2000년대 초반, 홍대 인근에 작은 술집들이 몇 있었다. 그 술집들의 주인은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전직 만화가들이었다. 그들이 한숨과 함께 내뱉던 일관된 푸념이 있었다. “데뷔하고 나면 만화로 먹고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력과 무관하게 자신의 만화를 보여줄 플랫폼 자체가 없어 작가 생활을 영위하기가 힘들었다는 설명이다. 당시 한국 만화계는 황무지였다.
‘싸우자 귀신아’ ‘운빨로맨스’ ‘동네변호사 조들호’ ‘치즈 인 더 트랩’ ‘송곳’ ‘밤을 걷는 선비’ ‘오렌지 마말레이드’ 등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쏟아지고 웹툰 자체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지금, 불과 10여 년 전을 떠올려보면 감회가 새롭다.
웹툰 시장 형성에 지대한 공을 세운 건 인터넷과 포털사이트, 그리고 모바일이다.
최초의 웹툰시장은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확장됐다. 고정 방문객 확보에 유리한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그중 유력 포털 네이버와 다음의 웹툰이 인기를 얻으며 시장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레진엔터테인먼트와 봄코믹스 등 중소 규모 만화 전문 사이트의 가세로 시장의 규모는 한층 커졌다. 카카오페이지와 피키캐스트 등 탄탄한 자본과 영향력을 과시하는 회사에서도 여지없이 웹툰을 주요 사업 중 하나로 밀고 있다.
세계 스마트폰 보급률이 70%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 우리나라는 무려 90%를 돌파해 세계 1위 수준을 과시한다.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만화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게 웹툰인데, 모바일의 보급과 함께 시장이 커졌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 어느 곳에서든 스마트폰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데다 비용 부담도 덜하니 현시대 가장 멋진 오락거리라고 할 만하다. 모바일을 통해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은 웹툰을 내수용이 아닌 해외 수출용 상품으로 부각시켰다.
작년 국내 웹툰시장 4,200억원…일본·프랑스 등 수출 활발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웹툰시장의 규모는 무려 4천200억원대까지 성장했다고 한다. 2018년에 이르면 8천805억원대까지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온라인 만화전문사이트 레진코믹스는 IMM프라이빗에쿼티로부터 5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해 눈길을 끌었다. 2012년 설립된 회사로 지난해 매출만 318억원에 달했다. 2013년에만 해도 매출액이 10억원에 못 미쳤는데, 불과 3년 만에 30배에 달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2014년에 출발한 탑코믹스는 2년여 만에 누적매출 3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부터 일본과 대만 등 해외 공략에 나섰으며 올해 초 프랑스에도 안착했다. 해외 매출 성과가 지난해 총 매출의 10% 수준에 달했다는 전언이다. 국내 웹툰의 수출이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해외 인기 웹툰을 수입해 연재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봄코믹스의 경우 아예 ‘여성 전문 웹툰’이란 전략을 내세워 중국의 인기 웹툰을 번역해 연재하며 방문자 수 1천만 명을 넘겼다. 다 죽어가던 한국 만화가 IT와 결합해 대중문화를 이끄는 주력 콘텐츠가 됐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