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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Aug 09. 2016

사랑해, 귀신아! 왕조현부터 김소현까지

[대중문화 이야기]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귀신이 항상 공포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간혹 아름다운 귀신과의 로맨스가 그려져 어지간한 멜로 뺨칠 정도로 보는 이들을 설레게 하곤 한다. 예쁘고 귀여운 귀신과의 로맨스가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에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있을 수 없는 일’에 대한 판타지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꽤 폭넓은 연령대를 매혹시킨다. 물론, 황당한 이야기인 만큼 관객을 설득시킬 수 있는 ‘그럴듯한 설정’과 소위 ‘심쿵사’를 유발할 정도의 매력적인 멜로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을 맞아 귀신과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 몇 편을 살펴봤다. 


'싸우자 귀신아'의 김소현


‘싸우자 귀신아’ 소녀 귀신 김소현 눈길 

최근 tvN은 지난해 빅히트작 ‘오, 나의 귀신님’의 바통을 이어받아 또 한 편의 ‘귀신 로맨스’를 내놨다. 현재 월요일과 화요일 오후 11시대에 방송되고 있는 ‘싸우자 귀신아’다. 아이돌그룹 2PM 멤버 옥택연과 10대 청춘스타 김소현이 남녀 주인공을 연기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귀신을 보는 능력을 타고난 대학생,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소녀 귀신의 로맨스를 그린다. 일단, 설정은 재미있다. 귀신을 보고 만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박봉팔(옥택연 분)은 큰 키에 탄탄한 체격과 외모를 가지고 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인물이다. 

그런데 귀신이 보이는 영안 때문에 풀리는 일이 없고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 능력을 버리기 위해 필요한 돈을 구하고자 퇴마사 노릇을 하고 다닌다. 

이 과정에서 만난 소녀 귀신 김현지(김소현 분)는 생전 기억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존재다. 주변 귀신들이 제사상 찾아가 포식하고 오는 것과 달리 이 소녀 귀신은 입고 있는 교복과 명찰 속 이름 외 자신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다른 귀신처럼 초월적인 능력도 없고 물에 빠지면 답답해하고 애를 먹는다. 


'싸우자 귀신아' 중 


귀신을 보고 만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훈남’과 예쁘고 귀여운 소녀 귀신이란 설정 하나만으로 일단 로맨스의 기본 요소가 충족됐다. 마치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에서 그리는 것처럼 물에 빠진 여자 주인공을 남자 주인공이 구해주고, 두 사람 사이에 자연스레 스킨십이 오고 간다. 심지어 “좋아한다”며 고백을 하고 이로 인해 고민하기도 한다. 여자 주인공을 연기하고 있는 김소현이 미성년자라 과한 스킨십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가벼운 입맞춤 등을 연출해 드라마 팬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사실 ‘싸우자 귀신아’는 각본과 연출이 섬세하지 못하고 출연자들도 캐릭터를 잘 살려내지 못해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무려 10%대를 넘나들던 전작 ‘또 오해영’에 비해 아쉬운 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5%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시작해 3%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드라마화 과정에서 생긴 문제가 아쉽지만 귀신과의 로맨스, 그리고 여자 주인공인 소녀 귀신과 남자 주인공 등 각 캐릭터 설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원작인 동명웹툰 역시 누적 조회 수 7억 뷰를 훌쩍 넘기며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한 인기작이다. 


'아랑사또전'에서 귀신을 연기한 신민아 


‘오, 나의 귀신님’ ‘아랑사또전’ 러블리 귀신 빅히트

지난해 tvN에서 방영된 ‘오, 나의 귀신님’은 귀여운 처녀 귀신을 캐릭터화해 놀라운 화제성을 보였다. 악귀에 빙의된 인물의 소행에 억울하게 죽게 된 처녀 귀신(김슬기 분)이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또 다른 여성 나봉선(박보영 분) 몸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죽은 뒤에도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가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한’ 때문이라고 믿는 귀신이 인간 여성의 몸을 이용해 이승의 남자에게 마음을 주게 된다. 여러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전개되는 가운데 처녀 귀신과 이에 빙의된 박보영, 그리고 죽은 여자와 살아 있는 여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게 된 스타 셰프 강선우(조정석 분)의 알콩달콩한 멜로라인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인간 여자의 몸을 이용해 한을 풀어보려는 음탕한 처녀 귀신이란 설정으로 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귀신은 인간의 몸에 직접 손을 댈 수 없다’ ‘대신 인간의 몸에 들어가 조정할 수 있다’ 등 귀신과 인간 등 각 캐릭터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정과 탄탄한 내러티브,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으로 화제작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능청스러운 표정과 극강의 귀여움으로 귀신 들린 여자를 연기한 박보영의 매력이 압권이었다. 


'오 나의 귀신님'에서 귀신에 빙의된 캐릭터를 맡아 맛깔나는 연기를 보여준 박보영


박보영에 앞서 신민아도 MBC 드라마 ‘아랑사또전’(2012)에서 ‘귀여운 귀신’의 정석을 보여줬다. 이 드라마에서 신민아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 왜 죽었는지를 몰라 이를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귀신 아랑을 연기했다. 궁금증을 풀고 싶어 고을의 사또를 찾아갔다가 부임하는 이들마다 비명횡사하게 만든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 속 원귀 신민아는 무섭다기보다 귀엽고 해맑은 모습이었다. ‘아랑사또전’에 앞서 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에서 보여준 사랑스러운 구미호와 마찬가지로 남성들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보여줘 시청자들로 하여금 귀신과의 로맨스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끔 하였다. 

박신혜도 KBS 단막극 ‘걱정 마세요, 귀신입니다’(2012)에서 사랑스러운 귀신을 연기해 주목받았다. 최근 ‘닥터스’에서 여성미를 뽐내며 주목받고 있는 박신혜가 이 당시에는 앳된 모습으로 소녀 감성이 느껴지는 귀여운 매력을 드러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드라마는 단막극인데도 화제성이 남달랐으며 이후 동명 뮤지컬로 재생산되기도 했다.


'천녀유혼'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왕조현


‘천녀유혼’ 왕조현 등 여배우 매력이 관건

박보영과 신민아의 예처럼 귀신과의 로맨스를 그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여자 주인공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의 연기력과 매력이다. 귀신과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 자체가 황당해 몰입도를 끌어올리려면 캐릭터의 매력과 내러티브의 설득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만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장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여자 귀신 캐릭터 설정에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오! 나의 귀신님’이나 ‘걱정 마세요, 귀신입니다’ 역시 잘 다듬어둔 캐릭터에 딱 들어맞는 배우를 캐스팅해 효과를 본 케이스다. 

귀신과의 로맨스, 그리고 극 중 귀신의 매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예를 찾아보라면 홍콩영화 ‘천녀유혼’(1987)을 빼놓을 수 없다.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천녀유혼’이야말로 귀신과의 로맨스를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일명 ‘고스트 로맨스’ 물의 최고봉으로 끌어올린 건 귀신 섭소천을 연기한 배우 왕조현의 매력이다. 상대역 장국영 역시 빼놓을 수 없지만 누가 뭐라 해도 ‘천녀유혼’성공 요인의 8할 이상은 왕조현의 공이었다. 


'천녀유혼의 두 주연배우 장국영과 왕조현 


긴 생머리를 나부끼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비한 매력의 여성, 간간이 발목과 목선을 드러내며 유혹적인 포즈를 취하고 한없이 아련한 눈빛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악귀의 통제하에 남성을 유혹해 희생시키는 비운의 귀신 역할. 시종일관 섹시하고 매혹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다가 연민을 자아내는 표정으로 남자 관객을 들었다 놓곤 했다. 


'천녀유혼' 리메이크 버전에서 왕조현의 바통을 이어받은 유역비 


사실 왕조현의 연기력을 최상급이라고 평가하긴 어려운데, ‘천녀유혼’에서는 어떤 여배우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매력을 과시했다. 이후로 왕조현은 ‘천녀유혼’ 시리즈를 비롯해 매혹적인 귀신이 등장하는 홍콩영화의 주연을 도맡았다. 

무려 24년 만에 발표된 동명 리메이크작 ‘천녀유혼’(2011)에서 단아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미녀 배우 유역비가 왕조현을 대신했지만 상당한 미모에도 불구하고 선배의 아성을 뛰어넘진 못했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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