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이야기]
무려 4천200억원대 시장, 향후 8천억원대로 성장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웹툰. 수많은 웹툰이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지고 웹툰 작가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10대부터 4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를 아우르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콘텐츠다. 이처럼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즐기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웹툰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지면으로 인쇄된 만화에 익숙한 기성세대들과 업무 외적으로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데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지면 만화에 비해 단순해진 캐릭터와 컷, 그리고 빠른 전개에 적응하지 못해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글에서는 웹툰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이 매체의 특징과 즐기는 방법을 알려준다. 아울러 포털사이트를 위주로 웹툰의 매력을 느껴볼 만한 작품들도 추천한다.
웹툰의 역사
지면에 인쇄돼 출판물로 만들어지던 만화가 인터넷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후반부터다. 대표적인 예는 1997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광수생각’이다. 신문 연재 후 인터넷을 통해 유저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서비스해 큰 호응을 얻었다. 1998년 등장한 ‘스노우캣’은 한층 진보된 형식을 제시했다. ‘광수생각’이 컷 중심의 편집을 유지하는 등 기존 지면 만화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면, ‘스노우캣’은 기존의 사고방식을 화끈하게 뒤집어버리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1999년 말에는 디지털 조선일보가 만화 전문 웹진을 오픈하며 자사 계열 매체에 연재 중인 만화를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에 접어들어 포털사이트가 이 사업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인 인터넷 만화 시대가 열렸다.
초기 인터넷 만화 사업에 뛰어든 포털사이트는 라이코스다. 2000년 6월에 온라인을 통한 무료 만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같은 해 8월부터 천리안도 웹툰 서비스를 내놓으며 유저들의 관심을 끌었다. 천리안이 사실상 처음으로 ‘웹툰’이란 단어를 사용한 셈이다. 이듬해인 2001년 일간스포츠가 양영순의 ‘아색기가’를 연재하며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해 반향을 일으켰다. 이 시기를 전후해 웹툰 형식의 만화뿐 아니라 플래시 애니메이션 등이 만들어져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2002년에 야후 코리아가, 2003년에 다음이, 2004년에 네이버가 같은 서비스를 시작하며 인터넷 만화시장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후 포털사이트 업계 1위를 차지한 네이버가 만화 서비스 오픈과 동시에 ‘웹툰’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 만화가 웹툰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웹툰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웹에 최적화된 제작 방식
연필로 대략의 윤곽을 잡은 후 만년필이나 붓에 잉크나 물감을 찍어 그림을 완성하는 게 과거 지면 만화의 제작 방식이다. 지면에 그려진 출판 만화의 경우 서사 구조에 중점을 두며 그림체도 작가의 개성에 따라 제각각이다. 코믹한 소재를 다루는 ‘명랑만화’가 비교적 단순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대개의 지면 만화는 그림에 선을 많이 사용하고 묘사가 디테일한 경우가 많다. 이현세, 장태산 등 과거 인기 만화가들의 작품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반면에 웹툰은 단순하고 간결한 그림체, 또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명쾌하게 컷을 구성하는 등 인터넷에 최적화된 형태를 보여준다. 종종 과거 지면 만화를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한 후 디지털화하는 작가도 있지만, 대부분 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와 프로그램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낸다. 아래로 스크롤을 내리면서 즐기는 방식이 대부분이며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가 대중화되면서 개별 컷이 화면에 가득 차 유저들이 보기 편하도록 작업하는 ‘컷툰’도 생산되고 있다. 지면 만화와 달리 컬러를 입히는 작품이 주를 이루고 사운드와 무빙 기술을 도입해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생생함을 전달하기도 한다. 대체로 주간 단위로 한 편씩 업데이트하는 방식으로 연재하고 있다.
웹툰의 경우 서사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전개가 느린 작품은 인기를 얻기가 쉽지 않다. 경쟁작이 동시에 업데이트되면서 시청률 경쟁과 유사한 독자 유치 전쟁을 벌여야만 한다. 포털사이트에서는 인기 작품을 상단에, 그렇지 않은 작품을 하단에 배치해 경쟁을 부추긴다. 드라마처럼 매력적인 캐릭터와 인상적인 컷으로 단번에 유저의 시선을 잡아끌어야만 한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초기 웹툰 시장에서는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일상툰’이 인기를 얻었다. 그러다 강풀이 ‘순정만화’ 등으로 웹툰에 최적화된 서사 구조를 선보였고 이후부터 차츰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될 정도의 스토리를 가진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시장이 커지면서 더욱 다양한 소재, 그리고 개성 뚜렷한 웹툰이 양산되고 있다.
이 작품을 주목하라
네이버는 주로 젊은 층에 어필하는 작품을 배치하고 있다. 무려 10년간 정상의 위치를 고수하며 연재되고 있는 코믹 웹툰 ‘마음의 소리’를 비롯해 세포를 의인화해 연애하는 여성의 감정을 보여주는 ‘유미의 세포들’ 등 단순하고 재치 있는 작품이 많다. 최근 방송에 자주 모습을 보이며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 기안84의 ‘복학왕’도 인기리에 연재 중이다. 전작 ‘패션왕’의 주인공 캐릭터 우기명이 3류 대학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기상천외한 설정 속에 현실을 반영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과거 ‘드래곤볼’에 열광했다면 ‘노블레스’에 눈길을 줘도 좋을 것 같다. ‘귀족’으로 불리는 뱀파이어와 ‘웨어울프’로 칭하는 늑대인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인간들이 서로 갈등하고 싸우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드래곤볼’처럼 매회 더 강력한 적이 등장하고 그에 맞서는 과정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액션물이다. 히트작가 김규삼의 ‘하이브’도 주목해야 한다. 비정상적으로 커진 벌레들에게 습격당한 도시를 배경으로, 살아남은 인간들끼리 벌이는 생존경쟁을 다룬다. 탄탄한 내러티브 안에서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갈등하고 화끈한 액션이 묘사돼 보는 재미를 높인다.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만한 작품이다. SF 장르를 좋아한다면 ‘나노리스트’를 추천하고 싶다. 순정만화에 등장할 것처럼 예쁘장한 안드로이드들이 블록버스터급 액션을 펼치며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 야한 그림에 배꼽 빠지는 웃음까지 얻어가고 싶다면 19금 웹툰 ‘스퍼맨’을 보면 된다.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꽉 짜인 서사 구조의 진지한 작품이 많다. 최근 연재를 시작한 ‘바토리의 아들’은 1560년대 루마니아의 엘리자베스 바토리 괴담을 소재로 한 웹툰이다. 인육 섭취 등 자극적인 내용과 장면 때문에 ‘19금’ 웹툰이 됐지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성 들여 구현한 컷과 탄탄한 내러티브로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여심을 설레게 만드는 순정만화 ‘좋아하면 울리는’ 역시 봐둘 만한 작품이다.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며 찡한 감동을 얻어가고 싶다면 ‘쌍갑포차’를 보면 된다. 죽음에 이르거나 죽음을 결심한 사람 앞에 나타난 포장마차, 마지막으로 즐기는 소주 한잔과 함께 털어놓는 캐릭터의 인생사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묘진전’은 연재 당시 수작이라 불리며 상당수 마니아를 불러모은 웹툰이다. 마치 수묵채색화를 보는 듯한 그림체에 여백미를 강조한 컷 구성, 그리고 감각적인 판타지가 어우러져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웹툰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개성 강한 그림체와 스토리로 이목을 집중시킨 작품이다. 네이트로 들어가면 윤태호 작가의 ‘인천상륙작전’도 무료감상할 수 있다. 해방 이후 6`25 전쟁을 치르고 휴전하기까지 가슴 아픈 근대사를 다룬 웹툰이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