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이야기]
만화 속에서 현실로 불쑥 튀어나온 남자 주인공의 손. 이 손을 붙잡고 만화 속으로 빨려들어간 미모의 여자. 그리고, 만화와 현실을 오가면서 펼쳐지는 스릴 넘치는 액션과 로맨스. 1985년 발표돼 전 세계를 강타한 노르웨이 그룹 아하(A-ha)의 곡 ‘테이크 온 미 take on me'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장면들이다. 흥겨운 비트와 신디사이저로 이뤄진 강렬한 전주, 그리고 이어지는 보컬 모튼 하켓의 감미로운 보컬이 인상적인 곡이다. 곡 자체의 완성도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접목시킨 뮤직비디오는 센세이션이란 수식어와 함께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당시로선 보기 드문 시도였을 뿐 아니라 만화 주인공과 현실 세계의 여자가 함께 액션을 펼치고 사랑을 나눈다는 설정으로 몰입도를 높였다. 그후로 뮤직비디오와 CF 등 ‘테이크 온 미’에 오마주를 바친 영상물 제작이 꾸준히 이어졌는데, 마침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MBC 수목극 ‘더블유 W'가 같은 컨셉트를 차용해 화제가 되고 있다.
‘테이크 온 미’ 80년대 강타한 메가히트곡
그룹 아하는 노르웨이에서 결성된 팝 트리오다. 보컬 모튼 하켓과 기타와 키보드를 담당하던 폴 왁타, 또 키보디스트 맥스 후르뎀 등 세 명의 멤버로 구성된 팀이다. 드럼과 기타 사운드를 위주로 하는 록밴드와 달리 키보드 중심의 팝 넘버를 주로 연주하고 불렀으며 영화배우 뺨 치는 외모로 여성팬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남성미 넘치는 마스크에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보컬 모튼 하켓의 퍼포먼스는 관객의 시선을 무대로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아하의 메가히트곡 ‘테이크 온 미’는 데뷔앨범 ‘헌팅 하이 앤드 로우’에서 싱글 커트된 노래로 발표와 동시에 놀라운 반응을 얻었다. 당시 아하와 기획사 워너브라더스가 사용한 전략이 뮤직비디오를 사전 공개하는 방식이었으며, 싱글 ‘테이크 온 미’ 발매 전에 선보인 동명 타이틀의 뮤직비디오는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테이크 온 미’ 뮤직비디오는 흑백 지면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해 실사와 교묘하게 결합시킨 형태로 주목받았다. 무려 3000장 이상의 스틸사진과 실사 영상이 쓰였다. 이처럼 로토스코핑(실사 이미지의 외형선을 한 프레임씩 베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다음 원본 이미지와 합성하는 방식) 기법을 전면에, 또 극 전반에 걸쳐 폭넓게 사용한 뮤직비디오는 ‘테이크 온 미’가 처음이었다. 생소한 기법 뿐 아니라 만화와 현실을 오가며 펼쳐지는 기발한 스토리 역시 화제였다. 내용은 카페에서 만화책을 보던 여주인공이 만화 속 남자주인공이 내민 손을 잡고 그 세계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만화 세계로 들어간 여주인공, 그리고 만화 세계에서 현실로 빠져나오는 남자 주인공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인 뮤직비디오였다. 아하의 보컬 모튼 하켓이 직접 뮤직비디오 남자 주인공을 연기했으며 밴드 멤버들의 연주 장면도 애니메이션에서 실사를 넘나드는 화려한 비주얼로 묘사돼 눈길을 끌었다.
조용필 CF 등 오마주 영상물 제작 이어져
뮤직비디오 ‘테이크 온 미’의 반향은 컸다. 세계적으로 오마주라 부를만한 영상물 제작이 이어졌으며 국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예가 1987년께 등장한 조용필의 ‘맥콜’ CF다. 당대 최고의 톱가수 조용필이 노래를 부르면서 ‘테이크 온 미’ 뮤직비디오의 장면들을 패러디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만화의 프레임을 연상시키는 틀을 앞에 두고 여주인공과 마주하는 장면 등 ‘테이크 온 미’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는 신이 등장해 대중을 열광케 했다. 이 광고는 단편이 아닌 시리즈로 제작돼 큰 인기를 얻었다. 거액의 제작비를 투입하며 로토스코핑 기법을 사용했으며, 조용필이 가진 스타성과 아하 보컬 모튼 하켓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며 광고효과를 극대화했다.
2010년에는 ‘테이크 온 미’를 전격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스마트폰 ‘테이크’ 론칭에 따른 일종의 프로모션이었다. 가수 서인국이 ‘테이크 온 미’를 한국 가사로 불렀으며, 톱스타 소지섭과 정소민이 ‘테이크 온 미’를 재현한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흑백 지면만화가 모바일로 보는 웹툰으로 바뀌었고, 남자주인공의 손을 잡고 만화 속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이 모바일 화면을 터치하는 방식으로 대체됐다. 이처럼 몇 건의 설정을 제외하고는 프레임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남녀주인공, 또 추격신, 만화 속에서 현실로 빠져나오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까지 그대로 살려내 향수를 자극했다.
‘W', '테이크 온 미’에서 힌트 얻어 드라마화
드라마 ‘W’는 만화 세계와 현실을 오가며 펼쳐지는 남녀주인공의 로맨스와 액션을 보여준다. 트렌드를 반영해 지면 만화가 아닌 웹툰으로 설정했다. 웹툰이 자체적으로 생명력을 가지게 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작품을 끝마칠 수 없게 된 웹툰 작가, 그리고 만화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과 사랑을 나누게 된 작가의 딸 한효주, 자아를 가지고 웹툰과 현실을 넘나드는 남자주인공 이종석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테이크 온 미’의 뮤직비디오를 기억하는 세대라면 단번에 이 드라마의 모티프가 어디서 나온건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W'의 작가 송재정도 “과거 아하의 팬이었다”며 “만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설정을 만들 때 당연히 ‘테이크 온 미’ 뮤직비디오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인터뷰 등을 통해 밝혔다.
실제로 드라마 ‘W’의 곳곳에서 ‘테이크 온 미’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종석이 연기하는 극중 만화의 주인공 강철은 죽음의 순간에 눈 앞에 펼쳐진 정체모를 사각 프레임 속으로 손을 뻗어 현실 세계의 누군가를 끌어들인다. 지면 만화의 프레임을 뚫고 손을 뻗치던 ‘테이크 온 미’의 설정을 가져온 셈이다.
만화 속으로 들어온 여주인공 오연주가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는 스토리, 그리고 남자주인공 이종석과 함께 역경을 헤쳐나간다는 내용 역시 ‘테이크 온 미’와 흡사하다. 다만, ‘W'는 ‘테이크 온 미’ 뮤직비디오의 단순한 스토리를 디테일하게 세분화해 멜로와 코미디, 스릴러가 공존하는 탄탄한 드라마로 발전시키며 호평을 끌어내고 있다.
‘W’ 이전에도 유사 컨셉트를 차용한 작품은 있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의 영화 ‘라스트 액션 히어로’(1993)는 어린 소년이 동경하던 액션영화 속 주인공과 함께 펼치는 액션을 보여줬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 액션히어로와 만난 소년, 그리고 이들이 영화와 현실을 오가며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을 재치있게 그렸다. ‘테이크 온 미’ 뮤직비디오를 또 다른 방식으로 비틀어 만들어낸 영화다. 드라마 ‘W'는 이미지상으로 ‘테이크 온 미’를, 스토리상으로 ‘라스트 액션 히어로’를 떠올리게 만든다.
절묘하게 만화와 현실의 교차지점을 완성시킨 작품으로 이시영이 주연을 맡은 스릴러 영화 ‘더 웹툰:예고살인’(2013)도 있다. 인기 웹툰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만화 속 살인장면이 현실에서 그대로 일어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미하엘 엔데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네버엔딩 스토리’(1984)는 판타지 소설 속으로 들어가 모험을 펼치는 소년의 이야기로 반향을 일으켰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이 1979년에 발표됐으니, ‘테이크 온 미’의 뮤직비디오가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