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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Sep 21. 2016

'하얗게 불태웠어!' (1)

[정달해 단편선]


*정달해 단편소설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와 '폼과 멋을 제외한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o')

  

....   시작!  ....


정달해 단편선 

'전율의 손맛- 하얗게 불태웠어' 


이정국은 학창 시절 싸움 한번 해보지 않은 ‘범생’이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도, 심지어 군 생활을 할 때도 주먹질을 해본 적이 없다. ‘좋은 게 좋은 거’를 추구한데다 원체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이고 화를 내야 할 적합한 타이밍을 못 잡는 것도 문제였다. 한참 지난 뒤에야‘화를 낼 걸 그랬나’라고 되짚어보며 씩씩거리는 타입이었다.

      

단 몇 번 후배를 후려쳤던 적이 있었는데 그건 고교시절 이정국이 소속된 동아리에서 의례적으로 행하던 정기행사의 일환이었다. 동아리 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구실로 괜히 후배들 한번 때려잡고 단체로 술잔을 기울이며 “우리가 남은 아니지”를 외치는 얼빠진 의식이었다. 어쨌든 그 때 만큼은 이정국도 팔뚝에 잔뜩 힘을 주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말은 안 되지만 동아리 내에서 합법적으로 휘두르는 몽둥이였고 이를 두고 선배나 후배 누구 하나 딴지 거는 이들이 없었기에 양심의 가책 역시 느낄 필요가 없었다. 기왕 때리는 거 후끈하게 두들겨 패고 “우리가 남은 아니지”를 외치면 그만이었다. 어쨌든 그 때도 주먹이 아닌 몽둥이를 썼으니, 적어도 고교시절 이정국의 주먹은 ‘순결’했다.      


그 뒤로도 이정국이 누군가를 때릴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술 한잔 걸칠 때마다 마주 앉은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더러운 주사를 가진 친구를 만났다. 이정국은 매번 이 녀석 때문에 골치가 아팠고 그럴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사 심한 친구 놈 때문에 이정국이 제대로 마음 먹고 주먹을 날리는 일이 생겼다.      


“오늘 저 새끼 얼굴을 가격하고 ‘상남자’ 인생의 서막을 열어젖히리라.”      


그런데, 단 한번도 사람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맞혀보지 못한 사람이 첫 주먹에 사람 얼굴을 명중시켜 얻어맞는 사람을 날려버린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정국만 그걸 몰랐다는 게 함정이다. 


이날 이정국은 허공에다 주먹을 휘두르고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리고는 쓰러져서 한참을 멱살잡이하던 친구들의 어이없는 표정을 지켜봐야했다. 쓰러진 이정국은 그 날의 투명인간이었다.      


“그땐 내가 참 한심해보였어요.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못 맞힌 게 다행이었죠. 온 힘을 다 실어 주먹을 날린 덕분에 바람 가르는 소리가 비행기 엔진소리 마냥 강렬했거든요. 그때 그 주먹이 제대로 꽂혀 들어갔다면, 아마도 저는 지금까지 교도소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겠죠. 그 새끼 대가리가 목에서 떨어져나가 하늘로 날아갔을테니까요. 그런데, 그 정도로 강한 주먹 힘을 보여줬다면 교도소에 가서도 못 지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어차피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힘 센 놈이 장땡이잖아요.”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정국은 친구들 앞에서 이런 미친 소리를 지껄이곤 했는데, 그때마다 “병신새끼”라는 강렬한 욕설을 들어야했다.      


이후로도 이정국은 당최 싸울 일이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정국이 평화주의자였던건 아니다. 나름대로 주먹 힘을 과시할만한 계기를 만들어보려 노력했는데 항상 그렇듯 화를 낼 타이밍을 못 잡았던 것이고 그러니 주먹을 쓸 기회가 마련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기회가 온 건 꽤나 마음이 비단결같다는 평가를 들으며 서른 중반까지 훌쩍 달려온 어느 날이었다.      


그날 이정국은 술 한잔을 걸치고 집으로 들어가던 길이었다. 평소 오뎅 마니아였던 이정국은 집 앞 노점상에서 후끈하게 올라오는 오뎅 국물의 뜨거운 김을 얼굴에 쏘이며 스팀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아울러 큼지막한 오뎅 살덩이를 씹고 육수의 진한 기운을 느끼며 “이 맛이야”를 외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로 앞에서 오뎅을 먹던 등산복 차림의 40대 중반 남자들 중 쭈꾸미를 닮은 한 명이 이정국의 신발 위로 뜨거운 오뎅국물을 쏟아버렸던거다.       


국물이 꽤나 맛깔나게 끓어오른 상태였기에 이정국의 발 역시 뜨끈뜨끈하게 달아올랐다. 얇은 천으로 만들어진 컨버스화를 신은 탓에 뜨거운 국물은 고스란히 살갗을 자극하며 신경을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 컨버스화는 액체 흡수에 있어 발군의 능력을 가진 신발이다. 컨버스화를 신고 비 좀 맞아본 사람은 다 안다. 어쨌든 이정국은 뜬금없이 치고 들어온 놀라운 크기의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끄~악!”      


이정국의 비명 소리는 꽤나 청명하게 밤 하늘에 울려퍼졌다. 그런데도 국물을 흘린 40대 중반의 쭈꾸미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빙긋 웃으며 “아이고, 미안하네”라고 반말까지 내뱉으며 이정국을 자극했다. ‘별 것도 아닌데, 그냥 넘어가자’는 뉘앙스였다.       


이정국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이야말로 ‘남성미 넘치는 내 성격을 드러내 보일 때’라는 판단이 들었을 즈음 이정국의 입이 열렸다.      


“아, 씨발 진짜로”     


그 때였다. 국물을 이정국의 발에 흘린 40대 남자와 동행했던, 영화배우 김윤석을 닮은 또 다른 40대 남자가 이정국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짜악! 경쾌한 소리가 오뎅이 익고 있는 심야 길거리에 울려퍼졌다. 남성미를 과시하고자했던 이정국의 결심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린 놈 새끼가 말 버릇하고는”     


이정국의 뇌가 한층 더 활성화됐다. 지금 참고 넘어가면 피해자가 돼 ‘깽값’이나 챙기고 병원에 누워있을 수 있는 건가. 그래도 이렇게 처 맞고 넘어가는건 개억울한데. 그런데,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된 거 날아오는 주먹을 잡어버리기만 해도 자칫 쌍방과실이 인정되는 거 아닌가.      


여기까지 계산이 이어졌을 때 영화배우 김윤석을 닮아 살기가 느껴지는 40대 남자가 또 한차례 손을 치켜들었다. 분명 한 대가 더 날아올 듯한 분위기였다.      


위.기.일.발!  



(2부에서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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