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달해 Sep 24. 2016

'하얗게 불태웠어'(2)

[정달해 단편선]

*정달해 단편소설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와 '폼과 멋을 제외한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o')

.... 앞에서 이어지는 '하얗게 불태웠어' 두번째 이야기

       

          ..... 시작!  ....


정달해 단편선 

'전율의 손맛- 하얗게 불태웠어' (2)


-----------

이정국의 반사신경이 빛을 발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배우 김윤석을 닮아 무섭게 생긴 40대 남자가 다시 가격을 하기 위해 손을 치켜올린 그 순간, 이정국은 오른손으로 배우 김윤석을 닮아 꽤나 살벌해 보이는 그 남자의 왼쪽 안면을 강타했다.      


이정국의 기억에, 그 주먹은 마치 전광석화 같았다. 황비홍이나 동방불패가 휘두르는 최후의 타격 마냥 무서운 속도로 공기를 갈랐고, 70-80년대 무협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바람 가르는 소리가 정확히 이정국의 귓가를 황홀하게 자극했다. 놈의 안면에 오른쪽 주먹이 맞아떨어지던 그 순간, 이정국의 눈에는 원자탄이라도 터진 양 강렬한 섬광의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강백호의 덩크 슛이 이뤄지는 불과 1~2초에 불과한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느라 책 한권 분량에 달하는 회상 신을 집어넣기도 했다. 이정국의 머릿속이 딱 그랬다. 안경까지 날아가버린터라 제 정신이 아니긴 했지만 머릿속으로 주먹 한 번 못 날려봤던 과거 자신의 모습이 스쳐갔고,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뛰어오르던 록키의 모습과 딱 그 신에 적합하게 울려퍼지던 OST ‘Gonna Fly Now'가 들려오는 듯 했다.      


술 처먹고 시비 걸던 친구 새끼를 때리려다 허공에 주먹질을 하고 쪽팔림을 감수해야했던 지난 날이 영화 속 회상 신처럼 빠른 속도로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지워버려야할 굴육의 순간들, 억울하고 비참하고 남자답지 못했던 과거에 고한다. 아디오스~     


황홀경! 무엇보다 강렬했던 건 손맛이었다. 바짝 움켜쥔 이정국의 오른쪽 주먹 끝에서부터 시작된 전율이 혈관을 타고 순간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각성하고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된 슈퍼히어로처럼 이정국은 그 몇 초 동안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리고는 그 환희의 순간에 크게 외쳤다.       


“씨바, 이 맛이야!”     


의식이 현실로 돌아오자 눈 앞으로 등산복 차림의, 남은 두 남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술에 취해 나이값 못하는 40대 등산복 남자들은 김윤석을 닮아 자랑스러운 자신들의 친구가 맞았다는 사실에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그 중 한 명이 이정국의 팔을 휘어잡았고 또 다른 한 명은 이정국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이들의 행동은 가뜩이나 줄어드는 머리숱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정국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정국은 그들이 잡아당기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 두발의 이탈을 최소화하며 틈을 노렸다. 그리고는 잠시 머리채를 잡아당기던 놈의 악력이 느슨해질 무렵 몸을 틀며 오른손을 감아올렸다. 회전력을 이용한 스크류 펀치! 머리를 잡아당기던 남자는 놀라 뒷걸음쳤다.       

몸이 자유로워진 이정국은 자신에게 선방을 날린 김윤석 닮은 40대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남자는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이정국에게 밀려 바닥으로 쓰려졌다. 이정국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닥에 쓰러진 놈의 면상을 향해 연타를 날렸다. 쓰러진 놈은 두 팔로 얼굴을 감싸안고 피해를 최소화하려 애썼다.      


언젠가 이정국은 후배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그 때 한 방이라도 면상에 제대로 꽂혀 들어갔다면 아마도 그 새끼는 죽었을 거야. 하늘이 도왔는지 그 놈이 잘도 막아내더라고. 너희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3대 1로 싸우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야. 남자 세 명을 상대로 어디 내놔도 쪽 팔리지 않는 승부를 펼치는 것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싸움은 주민 신고로 들이닥친 경찰들로 인해 끝났다. 이정국도 폭행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상황에 이정국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처음에는 그게 등산복 차림의 40대 남자 세 명에 대한 분노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정국은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는 오히려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겼다.      


“주먹을 써볼 기회도 잡지 못한 채 30여년을 살았어요. 그런데 그들은 세 명씩이나 제 앞에 나타나 동시에 주먹을 휘두르고 내가 주먹을 쓸 수 있게 만들어줬어요. 한번도 싸워보지 못한 내가 단번에 3대 1의 자랑스러운 전적을 남길 수 있게 된거죠. 어찌됐던 세 명에 맞서 싸우면서도 나가떨어지지 않았어요. 제 인생을 바꾼 사건이었어요.”     


다음날 밤부터 이정국은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당시의 싸움을 복기했다. 기왕이면 좀 더 위협적인 표정을 지을 걸. 아니지, 그 때 내 입에서 더 폼 나는 대사가 나왔어야 했어. 첫 번째 따귀를 그대로 맞고 있을게 아니라 딱 잡아버렸다면 더 멋졌을텐데 말이지.     


무엇보다 온 몸을 떨리게 만들었던 짜릿한 손맛이 자꾸만 떠올라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정국은 바뀌었다. 그제서야 진정한 남자가 된 듯 했다.      


마침 놀러온 동생도 형의 싸움을 칭찬했다. 주먹질 한번 못 해본 형이 3대 1로 대등하게 싸워 비겼다니 이건 가족끼리 잔치라도 벌여야할 만한 일이라고 흥분했다.     


한달 후, 이정국은 복싱 도장 회원권을 끊었다. 아줌마들과 태보를 하고 6개월 동안 줄기차게 줄넘기를 하며 체력을 키웠다. 1년 여만에 첫 스파링을 하게 됐는데, 상대에게 겁도 없이 덤비다가 흠씬 두들겨 맞다 기절해 응급처치까지 받아야했다.      


그리고, 지금 이정국은 아마추어 복싱대회 출전을 앞두고 연습중이다. 물론, 복싱 도장의 모든 이들이 만류했다.      


“너... 그러다가 죽는다. 정말”      


하지만, 이정국은 고개를 저었다. 서른 중반이 훌쩍 넘도록 찾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단 한 번의 손맛에서 찾았다며. 앞으로도 당당히 남자의 길을 걸어 갈거라고 완강하게 입장을 밝혔다. 등 뒤에서는 관장의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먹 맛을 알기 전의 나는 그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방향으로 섞여다니던 ‘그들 중 일부’에 불과했죠. 하지만, 이젠 달라졌어요. 처음으로 주먹을 쓰게 된 그날, 내 주먹은 ‘신체의 일부’에서 ‘신체 중 가장 돋보이는 일부’가 됐죠. 나도 마찬가지예요. 뭐, 내가 대단한 격투기 선수가 되겠다거나 또는 히어로가 돼 밤거리를 접수하겠다는게 아니예요. 다만, 앞으로도 죽여주는 손 맛을 느끼면서 남자다운 삶을 살고 싶을 뿐인거죠.”     


서울 하늘은 미세먼지로 뒤덮여있었고 자외선 수치도 ‘나쁨’의 범위에 들어와있었다. 오존 수치까지 올라가 실외활동 자제 권고가 내려진 그 날, 이정국은 쉐도우 복싱을 하며 한강변을 뛰었다.  

    


-끝-     


작가의 이전글 '하얗게 불태웠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