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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Sep 26. 2016

사전제작 드라마=완성도? 정답은 NO!

[대중문화 이야기]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보보경심 려'의 스틸사진


최근 방송계에 사전에 제작을 마치고 방영되는 드라마들이 늘고 있다. KBS2 TV ‘태양의 후예’나 현재 방송되고 있는 SBS 월화극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그리고 KBS 2TV 수목극 ‘함부로 애틋하게’, tvN 금토극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도 사전제작 드라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급하게 몇 개의 신만 작성해 내보낸 ‘쪽 대본’을 들고 밤샘 촬영을 불사하며 방송 시기를 맞추던 게 국내 드라마계의 현실이다. 인기를 얻으면 얻을수록 대중의 반응을 체크한답시고 작업이 늦어져 심지어 잡다한 방송사고까지 내곤 했다. 스태프와 배우들은 쪽 대본에 밤샘 작업 때문에 체력이 떨어져 쓰러지는 일도 잦았다. 극한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한국 드라마의 제작 현실을 두고 해외에서도 혀를 내두르는 일이 흔했다.

그렇다면 사전제작 드라마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은 전 회차 탈고를 마친 대본을 들고 차분히 준비를 해 완성도를 높이고 있을까. 그래서 더 좋은 결과를 얻고 있을까. 그보다 사전제작 드라마가 많아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사전제작 드라마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살펴봤다.



중국 판매 위해 ‘사전 제작’ 불가피

한국 드라마계에 사전제작 붐이 형성된 이유는 원활한 해외 판매를 위해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 수출을 위해서다. 중국이 자국 내로 유입되는 해외 드라마, 특히 한국 드라마에 대한 사전심의제를 강화한 상태라 이를 피해 현지로 수출하려면 미리 제작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방송 당국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올해 1월부터 TV에 방송되던 해외 드라마에만 적용하던 사전심의를 온라인까지 확대했다.


앞서 ‘별에서 온 그대’와 ‘상속자들’ 등 중국 내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한국 드라마들은 아이치이 등 중국의 유력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국내 방영 시기와 같은 기간에 현지에 공개됐다. 심의 등 절차가 복잡한 중국 TV를 굳이 공략하지 않아도 온라인을 통해 수출이 가능했으며 판매가 역시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온라인에 방영되는 드라마까지 심의를 확대 적용하고 있는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 드라마를 중국으로 수출하려면 현지 방송 시작 6개월 전부터 관련 계획 등을 내놓고 접수를 마쳐야 하고 3개월 전에는 심의를 거쳐야만 한다. 이제 중국 진출을 위해서는 사전제작이 불가피하다.


굳이 사전제작을 하지 않고 기존 방식으로 제작해도 관계없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국내 방영을 마친 뒤 시간 차를 두고 심의를 거쳐 중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중국 내에서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한국 드라마 파일을 공유하는 케이스가 워낙 많아 문제가 된다. 심의 기간을 거쳐 현지에 방영하기도 전에 드라마 파일이 중국 내에 퍼져버려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다는 말이다. 김수현이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프로듀사’가 유사한 피해를 입었던 대표적인 예다.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중.. 


사드 이슈로 중국 유통 문제 발생

치솟는 드라마 제작비를 충당하고 이득을 보기 위해서는 수출이 정답이다. 특히 중국 시장에 한국 드라마에 대한 수요층이 탄탄히 형성돼 있으니 현지 공략에 열을 올리는 게 당연한다.


현재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화랑 더 비기닝’도 역시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드라마다. ‘태양의 후예’로 중국 공략을 염두에 두고 만든 사전제작 드라마 성공의 첫 사례를 남긴 KBS가 제작 중이다. tvN도 신민아와 이제훈을 내세운 드라마 ‘내일 그대와’를 사전제작 형태로 만들 예정이다. JTBC 역시 ‘태양의 후예’를 집필한 김원석 작가, 그리고 ‘치즈 인 더 트랩’ 이후 주연급으로 떠오른 박해진과 손잡고 사전제작 드라마 ‘맨투맨’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측의 심의 기준에 부합한다고 해서 현지 유통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건 아니다. 최근 들어 우리 정부의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상황. 당연히 한국 드라마의 중국 진출 과정에 리스크 발생 확률이 높아졌다. 이영애와 송승헌이 주연으로 나선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도 제작을 마친 상태에서 중국 내 심의가 완료되는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 현지 방영 일정만 확정되면 이 시기에 맞춰 국내에 편성해 동시 방영을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드 관련 이슈가 부각되면서 중국 내 심의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아 결국 편성 시기를 미뤄야 할 수도 있는 처지가 됐다. 워낙 예민한 문제라 ‘사임당’ 측에서도 정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지만,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사드 이슈로 인해 발생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심의에 영향을 줬을 거란 말이 나오고 있다. 그 외, 현재 중국시장을 노리고 사전제작 중인 드라마의 관계자들도 현지에 형성된 ‘반한 정서’ 때문에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함부로 애틋하게' 포스터


극중 계절 설정·트렌드 이슈도 문제

이렇듯 중국시장을 겨냥해 사전제작을 마쳤다가 방영 시기가 늦어질 경우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한다. 수지와 김우빈 등 한류스타들을 내세운 KBS2 TV 멜로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경우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이 드라마는 겨울에 촬영을 마친 관계로 극 중 인물들이 코트와 패딩 등으로 온몸을 감싸고 등장한다. 가뜩이나 폭염으로 힘들었던 올 여름철에 방영일정이 잡혀 보는 이들의 마음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기와 극 중 계절이 극단적으로 어긋나 몰입도를 떨어지게 만들었다. 기존 방식대로 약 4, 5회 분량 정도를 미리 완성시킨 상태에서 방송을 시작하고 실시간으로 촬영을 이어나갔다면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부분을 후반부에서 어느 정도 개선시킬 수도 있었을 터. 하지만 이미 제작이 완료된 상황이라 혹평을 들으면서도 손을 쓸 수 없었다.


쪽 대본을 들고 밤샘촬영을 하며 극한상황이 이어지던 기존의 제작 패턴은 한국 드라마계의 고질적인 병폐였다.


그런데 위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전제작=완성도 UP’이란 공식은 성립되지 않고 있다. 제작 환경이 크게 나아진 것도 아니다. 물론, 사전제작의 경우 대체로 대본이 미리 준비되고 촬영 역시 좀 더 체계적으로 이뤄지긴 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촬영장처럼 스태프와 배우가 온전히 몰입하면서 촬영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건 아니다. 제작비를 아껴야 하고 배우들의 스케줄을 조절해야 하는 건 어차피 마찬가지. 그러니 현장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야 한다.


단, 방송 시간 직전까지 촬영을 진행하다 녹화된 테이프를 들고 오토바이에 헬기까지 동원하며 송출 가능한 장소까지 질주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더 이상 발생하진 않을 테니 그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다 엉뚱한 전개를 택해 질타받는 일도 없으니 그것도 다행이다. 어차피 사전제작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을 부각시키고,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명민한 전략을 구사하는 게 관건이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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