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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Oct 04. 2016

박수홍, 불 붙은 상승세

[대중문화 이야기]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박수홍은 개그맨으로 시작해 아나운서의 영역까지 넘나들고 있는 방송인이다. 1991년 KBS 대학개그 콘테스트에서 수상하며 개그맨으로 데뷔했고 이후 공개 코미디쇼의 콩트, 스튜디오 공개녹화형 예능, 리얼버라이어티, 심지어 요리프로그램과 연예정보프로그램, 정보전달형 교양프로그램 MC까지 섭렵하며 전방위로 활동했다. 개그맨으로 데뷔해 버라이어티 MC로 활동영역을 넓힌 이들 중 교양 프로그램 진행까지 도맡은 예는 박수홍을 비롯해 소수에 불과하다. 그만큼 대중 호감도가 높고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와 같은 장점 때문에 장르 가릴 것 없이 다양한 프로그램의 MC로 활동할 수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행보로 인해 지상파 프라임타임에 편성된 메인 예능프로그램과 멀어지는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SBS 리얼버라이어티 ‘다시 쓰는 육아일기! 미운 우리 새끼’ 등에 얼굴을 보이며 다시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25년간 방송활동을 한 베테랑 MC의 소탈한 일상에 시청자들도 반응하고 있다. 

JTBC '연예특종' MC로 활동할 당시의 박수홍. 


‘미운 우리 새끼’에서 털털한 모습…반듯한 이미지보다 더 ‘인간적’
‘미운 우리 새끼’는 연예인 등 잘 알려진 인물의 사생활을 리얼하게 공개하고 이 VCR을 그들의 엄마가 지켜보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박수홍과 김건모 등 혼자 사는 노총각들이 초반 출연진으로 들어왔다. 엄마들은 나이 들어 혼자 사는 아들의 생활을 엿보며 그동안 몰랐던 사실까지 알아채게 된다. 집 안 냉장고에 소주를 가득 채워놓고 틈만 나면 술잔을 기울이는 김건모의 모습을 보며 경악하는 그의 엄마, 그리고 혼자서 TV를 켜놓고 낄낄거리다 슬픈 장면에서 돌연 눈물을 흘리는 박수홍의 일상 등이 은근히 몰입도를 높인다. 

SBS '미운 우리 새끼' 중 캡쳐. 홀로 클럽댄스를 연습중인 박수홍. 


특히 이 프로그램에서 박수홍은 클럽에 출입하며 술과 담배를 즐기는 등 평상시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줘 이목을 집중시킨다. 40대 중후반의 나이에 클럽을 드나들며 춤추고 소리 지르는 화면 속 박수홍은 항상 반듯했던 그의 이미지와 상반돼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어찌 보면 데뷔 후 25년에 걸쳐 만들어온 긍정적인 이미지를 뒤집어버릴 수도 있을 정도의 모험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시청자들은 오히려 털털하게 일상을 드러내는 박수홍의 모습에 호감을 표하고 있다. 어지간한 아나운서 뺨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만 보여주던 박수홍의 이면에 ‘인간적이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뒤늦게 바람난 중년의 일탈, 또 ‘천생 모범생’처럼 느껴지던 깔끔한 남자의 흐트러진 일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묘한 쾌감까지 불러일으킨다. 

비지상파 프로그램 MC로 왕성한 활동…유재석`신동엽에도 밀리지 않아

박수홍은 평균적으로 한 주에 2, 3편 이상의 프로그램을 소화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유쾌함과 진지함을 자연스레 넘나드는 진행 솜씨로 화면 안에서 안정감을 주는 MC로 불렸다. 다만 한동안 비지상파를 중심으로 고정프로그램을 확보한 탓에 지상파 간판 예능에 출연하는 MC들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박수홍이 지상파의 높은 진입장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지상파로 갔다는 말은 아니다. 그동안 박수홍은 KBS의 예능형 교양프로그램의MC로 나서기도 했고, 파일럿 프로그램에 투입돼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지상파에서 찾는 이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말이다. 다만, 정규편성이 확실시되던 프로그램이 예기치 못했던 사고로 무산되거나 ‘무한도전’ 등 인기 예능의 특집편 멤버 자리를 제안받고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포기하는 등 기회가 가시적 성과로 전환되지 못하는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박수홍으로서도 이미 남 부러울 것 없이 많은 프로그램의 메인 MC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터라 굳이 지상파 메인 예능 출연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MBN '속풀이쇼 동치미' 현장. (출처) 박수홍 블로그 

어쨌든 아쉬울 것 없이 잘 포장된 도로를 제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던 셈인데, 요즘 박수홍이 가는 길이 가속도까지 낼 수 있는 고속도로로 바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지상파 예능 ‘미운 우리 새끼’의 성과에만 주목해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니다. 지난 추석에 파일럿 형식으로 방송된 MBC ‘톡쏘는 사이’도 반응이 좋아 정규편성 가능성이 높다. ‘톡쏘는 사이’에서 박수홍은 데뷔 동기 남희석, 김수용과 함께 깨알 같은 재미를 자아내며 프로그램의 인기 견인차로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MBC 라디오의 간판 프로그램 ‘라디오 시대’의 진행자 자리도 꿰찼다. 앞서 조영남이 앉아있던 자리에 투입돼 최유라와 함께 매일 두 시간씩 청취자들과 만나고 있다. 

그 외에도 TV조선 ‘깨알정보쇼 알맹이’와 MBN ‘속풀이쇼 동치미’ 등 박수홍의 기존 프로그램도 비지상파로선 만만찮은 시청률로 순항 중이다. 꾸준히 상승세를 타면 그가 가장 주목받던 1990년대, 또 2000년대 초반의 인기까지 되찾을 수 있을 정도다. 물론 박수홍 자신이 그걸 원하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이 쏟아지는 스타의 자리보다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방송인의 삶을 원할지도 모른다.  


JTBC '연예특종' MC로 활동했던 박수홍.


데뷔 초 ‘미남 개그맨’에서 요리·교육·교양 프로그램 진행자로 영역 넓혀
박수홍의 데뷔 무대는 KBS의 대학개그 콘테스트였다. 비공개 형식으로 공채 개그맨을 선발했던 KBS가 MBC의 대학가요제처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개 오디션을 진행한 케이스로 당시 크게 화제가 됐다. 이 기회를 통해 데뷔한 이들이 유재석, 남희석, 김용만, 김수용 등이다. 이들은 데뷔 무대 이후 ‘한바탕 웃음으로’ 등 인기리에 방영되던 공개 코미디쇼로 들어가 콩트를 선보였다. 

박수홍을 비롯한 대학개그 콘테스트 멤버들은 참신한 대학생 개그맨이란 이유로 젊은 시청자층을 사로잡았다. 그중 박수홍은 180㎝가 훌쩍 넘는 큰 키에 수려한 외모로 어지간한 가수나 배우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유재석이 KBSTV ‘해피투게더’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박수홍의 등장에 여성들의 함성이 너무 커 오디오 녹음이 이뤄지지 못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당시 해당 코너는 결국 오디오에 문제가 생겨 전파를 타지 못했다. 

방송계에 리얼버라이어티와 토크쇼 형식의 예능이 자리를 잡게 될 무렵 박수홍도 MC 자리를 차지하고 메인 스트림에 합류했다. 지상파의 주말 간판 예능프로그램의 중심축으로 활동하는 등 1990년대뿐 아니라 2000년대에 들어선 후에도 ‘가장 잘 나가는 MC’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2007년께 SBS의 인기 예능 ‘야심만만’의 MC 자리를 스스로 털고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 시기에 가장 '잘 나가던' 프로그램에서 제 발로 떠난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졌다. 마침 그 때 박수홍이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이 시점을 계기로 박수홍은 지상파 예능프로그램 외에도 타 영역으로 활동반경을 넓히기 시작했다.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EBS 교육용 프로그램의MC로 나서는 등 동급의 방송인들이 움직이지 않던 미지를 개척해 눈길을 끌었다. 덕분에 세대별로 큰 편차 없이 호감도를 얻고 가장 넓은 활동영역을 확보한 MC가 될 수 있었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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