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현빈-박신양, 김은숙 작가가 띄운 매력남들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걸리면 뜬다! 드라마 작가 김은숙이 만들어낸 매력적인 남자 캐릭터들과 이를 연기한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동안 ‘파리의 연인’ ‘온 에어’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 등의 히트작에서 남자 주연배우들에게 ‘역대급 캐릭터’를 안겨준 이가 김은숙 작가. 이 작품들을 통해 박신양-이범수-현빈-김우빈 등을 톱스타 반열에 올린 인물이다. 이번에도 KBS2 TV 수목극 ‘태양의 후예’로 주연 송중기에게 데뷔 후 최고의 호평을 안겨주고 있다. 10여 년에 걸쳐 로맨스를 다뤘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법도 한데 남자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어내는 솜씨는 변함이 없다. ‘태양의 후예’에 대한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어 식상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지금 시점에서는 관련 소재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태양의 후예’에서 열연 중인 송중기를 비롯해 김은숙 작가의 뛰어난 ‘남자 캐릭터 연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잠재력 있는 배우 찾아 캐릭터 창출
남자 주인공 캐릭터는 멜로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내러티브나 연출, 여자 주인공 등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길 게 없지만, 여자 시청자들의 충성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장르인 만큼 남자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어내야만 흥행 가도에 오를 수 있다.기본적인 공식이지만 구현하는 게 쉽지는 않다.
우선적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들어야 하고 무엇보다 글로 만들어진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배우와 궁합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완성도를 높이려면 선구안을 가지고 잠재력 있는 배우 캐스팅에 집중해야 하고 그가 작가와 감독이 의도한 대로 연기할 수 있게 유도하는 작업도 겸해야 한다. 아무리 김은숙 작가가 공력을 쏟고 현장에서 감독이 기를 북돋워준다고 해도 배우 본인이 살려내지 못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대개 김은숙 작가는 주`조연급 남자 캐릭터를 만들 때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매력 심기’에 공을 들인다. 물론, 그래도 종종 기대에 못 미치고 아쉬움을 남긴 예가 있긴 하다. 지금까지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가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기대에 못 미쳤던 남자 캐릭터가 있었다면 결국 배우의 역량을 탓해야 한다. 이 ‘역량’이란 단어 속에는 연기력뿐 아니라 타 배우 및 스태프들과의 호흡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된다.
송중기, 데뷔이후 최고의 찬사
그런 의미에서 지금 ‘태양의 후예’에서 최대 관전 포인트로 떠오른 송중기의 활약은 캐스팅으로 따졌을 때 ‘신의 한 수’라 할 만하다. 송중기라는 배우의 ‘역량’ 역시 최상급이다.
칭찬해줘야 할 부분은 역시 캐릭터를 소화하는 능력이다. 배우 송중기의 장점 중 하나인데 어떤 인물을 연기하든 보는 이들이 부담없이 빠져들 수 있는 톤을 찾아내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에 적절한 높낮이 조절로 감정과 대사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발성이 나쁘거나 발음이 명확하지 않은 배우들은 보는 이들을 답답하게 만들어 감정선을 망가트리기도 한다. 반면, 송중기는 타고난 보이스를 효과적으로 조율해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인다. 남자의 목소리에 민감한 여심을 흔들기엔, 딱 좋은 무기다.
송중기라고 하면 단연 ‘꽃 같은 얼굴’인데 왜 ‘목소리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극 중 유시진이란 인물을 연기하는 데 있어 송중기의 외모는 장점이 될 수 없다. 유시진은 특전사의 엘리트 장교로 대테러 진압에 나서는 등 사지에서 살아가는 데다 행동 패턴 역시 저돌적인 ‘상남자’다. 근육질에 터프한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 들어와야 어울릴 법한 캐릭터다. 이 인물을 표현하기에 뽀송뽀송한 피부의 앳된 마스크와 호리호리한 체형을 가진 송중기는 비주얼상으로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예쁜 외모가 리스크 요소가 된 셈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송중기는 연기력으로 단점을 털어낸다. 총을 겨누거나 몸싸움까지 가미되는 액션 연기를 할 때도 표정이나 몸동작에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송혜교와 멜로 신을 찍을 때는 오히려 여유롭게 상대를 리드한다. 앞서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과 연기한 김수현이 그랬듯 송중기 역시 상대 여배우와의 나이 차를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능숙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김은숙 작가가 적시적소에 꽂아둔 촌철살인 대사가 어우러져 ‘송중기의 유시진’을 현존하는 최고의 남자로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현빈-박신양, 김은숙 작품으로 신드롬 형성
‘태양의 후예’로 가열된 송중기 신드롬은 김은숙 작가의 ‘파리의 연인’과 ‘시크릿 가든’ 등이 히트하던 당시를 떠올리게 만든다. ‘파리의 연인’이 뜨거운 열풍을 몰고 왔던 2004년 여름, 최고의 스타는 이 드라마의 주연배우 박신양이었다. 이미 그전에 영화 ‘약속’과 ‘편지’ 등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던 배우였고, ‘내 마음을 뺏어봐’ 등의 드라마로 연기력과 흥행파워를 인정받으며 안방극장에 안착했던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신양의 이미지가 ‘여심을 뒤흔드는 스타’는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적당한 스타성을 지닌 연기파 배우로 인식되던 박신양을 톱스타의 자리에 올려둔 작품이 ‘파리의 연인’이 됐다. 박신양은 깐깐하고 모난 성격의 재벌 2세 한기주 역을 맡아 “애기야 가자” 등의 유행어를 퍼트리며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생소했던 재벌 캐릭터를 만났는데도 인물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극찬받았다.
현빈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김은숙 작가의 2010년 작 ‘시크릿가든’에 캐스팅돼 데뷔 후 최대 전성기를 누렸다. 현빈이 연기한 캐릭터는 건방지고 오만한 재벌 2세 김주원이다. 설정만 보면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맡은 한기주와 비슷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김은숙 작가는 이 캐릭터에 유머와 상처를 가미해 보는 재미를 살렸고, 마침 현빈이 능청스럽게도 김은숙 작가의 의도에 맞게 인물을 표현해 시너지 효과를 냈다.
당시 현빈은 ‘내 이름은 김삼순’의 빅히트 이후 5년여 동안 이를 넘어설 만한 작품을 만나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었다. ‘톱스타’라는 타이틀을 내려놔야 할 상황이었지만 김은숙 작가와 ‘시크릿가든’을 만나면서 기존의 인지도를 훌쩍 뛰어넘는 인기를 얻었다. 애초 이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 예정이었던 장혁의 캐스팅이 무산되면서 현빈이 투입됐다는 사실까지도 화제였다.
2008년작 ‘온에어’에 출연했던 이범수와 고 박용하도 김은숙 작가의 덕을 톡톡히 봤다. 이때 이범수는 첫 주연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를 성공적으로 마쳤던 시기였다. ‘버럭범수’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영화계를 넘어 안방극장으로 발을 넓혔는데 바로 뒤를 이어 ‘온에어’까지 히트 치면서 주가를 높일 수 있었다. ‘온에어’에서는 김하늘의 뒤를 받쳐주는 듬직한 소속사 대표로 등장해 ‘멋진 남자’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박용하는 ‘겨울연가’로 얻은 인지도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면서도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놓지 못했는데 ‘온에어’에서 시크한 드라마 감독 이경민 역을 맡은 이후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원톱 주연감’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신사의 품격' 4인방 고루 부각, '상속자들' 캐릭터들도 돋보여
2013년 전파를 탄 ‘상속자들’의 남자 캐릭터들도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김우빈이 최영도 캐릭터로 스타의 자리까지 올라갔고, 이민호 역시 주인공 캐릭터 김탄을 연기하며 아시아권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이 작품에서 이민호는 김우빈과 분량이 비슷했던 중반 이후까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후반에 이르러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캐릭터 소화력의 문제였지만 다행히 김은숙 작가가 끝까지 김탄 캐릭터에 힘을 실어준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다.
비슷한 상황은 2012년 작 ‘신사의 품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은숙 작가는 이 드라마에 장동건-김수로-김민종-이종혁 등 네 명의 남자배우를 전면배치했다. 가장 중심에서 반짝거려야 할 주인공 김도진 캐릭터 역의 장동건이 기대만큼 떠오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 와중에도 4인 캐릭터를 고루 부각시킨 김은숙 작가의 재능은 빛났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