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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Mar 25. 2016

[대중문화 이야기]

갑을 소재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드라마 '욱씨남정기' 포스터 


최근 JTBC 새 금토드라마 ‘욱씨남정기’가 셀러리맨들의 갑을관계를 전면에 내세워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18일 첫 방송된 이 작품은 대기업과 하청업체 관계자들의 물고 물리는 사건을 다룬다. 능력 있고 성질 사나운 대기업 팀장 이요원(옥다정 역)이 하청업체로 들어가 갑을관계를 뒤집는 과정을 보여줄 예정. 그 사이에 만년 ‘을’로 지내던 하청업체 과장 윤상현(남정기 역)의 절절한 사연이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 지난해 SBS ‘풍문으로 들었소’와 영화 ‘베테랑’ 등을 통해 대중문화 콘텐츠의 주요 소재로 부각된 갑을관계를 다시 한 번 다뤄 이목을 집중시킨다.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스틸사진 


재벌가 알력다툼도 갑을관계로 부각

갑을관계를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가 주로 양산돼 화제가 된 건 지난해, 2015년이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SBS ‘풍문으로 들었소’였고, 이 드라마의 영향으로 ‘상류사회’니 ‘가면’ 등의 드라마 역시 ‘갑을 소재 드라마’로 부각됐다. 사실 ‘상류사회’나 ‘가면’이 재벌가를 둘러싸고 그 구성원들이 벌이는 다툼을 그린 드라마라는 점에서 비슷한 소재의 여느 작품과 크게 다를 바 없다.그런데도 이들 드라마가 ‘갑을 소재 드라마’로 불린 건 ‘풍문으로 들었소’가 나오게 된 배경과 이 드라마가 그려낸 재치있는 갑을관계에 대한 풍자 및 이 소재에 열광한 수요층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풍문으로 들었소’가 첫 전파를 탄 게 2015년 2월이고, 마침 2014년 12월 대한항공 오너 일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난동을 부려 이륙 준비 중이던 비행기를 회항시킨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한 직후였다. 재벌가의 소위 ‘갑질’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갑과 을’의 관계를 다루는 콘텐츠의 제작이 활발해졌고 해당 내용을 경쾌한 톤으로 잘 살려내 호평받았던 드라마가 ‘풍문으로 들었소’였다.일단의 이슈가 ‘갑을’로 집중되다 보니 이후 방영된 드라마들도, 그 드라마가 흔해빠진 재벌가의 알력 다툼을 그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갑을관계를 다뤘다는 이유로 주목받게 됐다.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재벌가 악질 후계자를 연기한 남궁민


‘을의 뒤집기’ 시청자들 흥미

이제껏 국내 상당수의 드라마에서 재벌이 등장했고 재벌가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그리거나 재벌가에 들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의 모습을 보여준 게 사실이다. 그러니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지 이미 국내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갑을관계를 소재로 다루고 있었다.그럼에도 ‘풍문으로 들었소’가 방영된 2015년에는 ‘땅콩 회항’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의 ‘갑질’을 다룬 작품이 유독 많았던 게 사실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영화 ‘베테랑’이다. 재벌가의 망나니 아들과 그에게 호되게 당한 피해자, 또 이 상황을 뒤집어엎는 형사들의 한판 승부를 그렸다. 같은 해 방송된 tvN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호구의 사랑’도 남녀 간의 관계를 ‘갑과 을’로 풀어 눈길을 끌었다.유사 소재의 콘텐츠 제작은 이후로도 꾸준히 이어졌다. 지난달 인기리에 종영한 SBS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도 재벌의 횡포에 맞서는 ‘을’의 모습을 보여줬다. 살인까지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살아가는 악당과 그의 죄를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법조인들의 맞대결을 다뤄 호평을 끌어냈다. 악역 남규만을 연기한 남궁민은 이 드라마로 데뷔 후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현재 방영 중인 MBC 수목극 ‘돌아와요 아저씨’에서도 유사 코드를 찾아볼 수 있다. 극 중 정지훈과 이민정의 일터인 백화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그렇다. 재벌가의 망나니 아들(최원영)이 횡포를 부리고 정지훈은 이에 맞선다. 향후 둘의 관계는 전복될 테고 이 과정을 묘사하는 제작진의 디테일에 따라 시청자들의 대리만족지수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욱씨남정기' 스틸사진


'욱씨남정기', 서민들 애환 섞어 공감대 형성

JTBC의 새 드라마 ‘욱씨남정기’는 홍보 과정에서 ‘꼴갑(甲)저격 사이다 드라마’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최근 ‘답답한 상황이나 인물’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고 있는 ‘고구마’와 속을 뻥 뚫어준다는 의미로 쓰이는 ‘사이다’를 활용해 고구마 스토리 라인의 중심에 있는 윤상현, 그리고 사이다 라인의 핵심인물 이요원을 대비시키며 시선 끌기 작업을 했다. 첫 방송 이후 반응을 보면 향후 행보도 긍정적이다. 그동안 JTBC가 동시간대 tvN의 킬러콘텐츠 ‘응답하라 1988’과 ‘시그널’에 밀려 ‘죽’을 쒔는데 ‘욱씨남정기’가 나오면서 시청자들의 주목도가 높아진 듯한 인상을 준다. 본방송 시청률은 1%대에 턱걸이하는 수준이었지만, 재방송 시청률이 2%대를 넘어서면서 ‘드라마 자체에 대한 반응이 괜찮은 편’이란 사실이 입증됐다. 이 정도면 지속적인 상승 가능성도 열린 셈이다.공개된 1, 2회는 자체 개발한 화장품 유통라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청업체 직원들의 시련기를 보여줬다. 동시에 이를 거저먹으려는 대기업 임원의 모습을 묘사해 양측의 뚜렷한 온도 차를 부각시켰다. 이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에는 코미디와 신파가 적절하게 곁들여져 재미를 줬다. 특히 내내 고구마처럼 답답한 인생을 살아가는 하청업체 직원 윤상현과 속 시원하게 할 말은 하고 살아가는 능력 있는 대기업 팀장 이요원의 상반되는 캐릭터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2회에서 이요원이 하청업체 팀장으로 들어오는 과정까지 신속하게 묘사돼 ‘속도감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유쾌한 톤을 유지하며 웃음을 주는가 하면 힘들게 삶을 영위하는 서민들의 애환이 잘 드러나 공감대를 형성한다.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실제 재벌가 갑질 행태 모티브 삼기도

갑을관계를 그린 드라마나 영화가 대중의 호응을 얻는 건 결국 작품 속 ‘갑’의 횡포가 현실에서 심심찮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욱씨남정기’에서 그리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비즈니스는 실제 사회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에피소드로 이뤄져 ‘을’의 입장에 있는 대다수 서민들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베테랑’이나 ‘리멤버’에서 화제가 됐던 재벌가의 망나니 아들 캐릭터도 실제로 찾아볼 수 있는 사례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실례를 살펴보자. 대한항공의 조현아가 실제로 유사한 행동을 해 물의를 빚었고, 2010년에는 SK그룹 창업주 고 최종현 회장의 조카인 최철원 M&M 대표가 인수합병 과정에서 고용승계를 원하며 1인 시위하던 탱크로리 기사를 폭행해 논란을 부추겼다. 당시 최 대표는 탱크로리 기사 김 씨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로 10여 차례 폭행했으며 그 자리에서 1천만원짜리 수표 2장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베테랑’의 유아인 캐릭터를 만들 때 모티프가 됐던 사건이다. 분노조절 장애를 가진 재벌가 자제들의 일화나 그들이 약에 취해 일으킨 사고 역시 일일이 나열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로 흔하다. 최근에는 대림산업 이해욱 부사장의 한 운전기사가 그의 ‘갑질’을 폭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폭언에 폭행을 일삼고 워낙에 까다로운 운전패턴을 제시하는 통에 운전기사들이 1, 2주 안에 바뀐다는 내용이다. 대림의 주가가 떨어지는 등 문제가 되고 있지만 어차피 다들 알고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다시 체력을 회복하고 제자리에서 그들이 하던 ‘짓’을 반복하게 될 거라는 것을. 그러니 ‘을’들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악한 ‘갑’의 몰락을 지켜보며 대리만족할 수밖에.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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