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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Apr 12. 2016

송중기는 되고 배트맨은 안 되고...

[대중문화 이야기] 

*이 글은 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KBS 2TV '태양의 후예'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송중기


송중기는 되고 배트맨과 슈퍼맨은 안 된다. 판타지를 내세운 대중문화 콘텐츠 두 편의 흥행 성과를 두고 하는 말이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KBS2 TV 수목극 ‘태양의 후예’는 송중기가 연기하고 있는 유시진이란 캐릭터에 여성들의 환상을 집약시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지극히 현실에 입각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사실 리얼리티가 극히 떨어진다. 그런데도 송중기 자체가 드라마의 비현실적 요소에 대한 비판을 상쇄하며 인기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판타지에 기반을 두고 제작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기대 이하의 반응을 얻고 있다. 개봉 전 세계 팬들이 내놓은 예상대로라면 이미 400만~500만 명을 모았어야 할 대작이다. 하지만 개봉 3주차에 200만 명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박스오피스 순위도 5위까지 떨어졌다. 사실상 국내 흥행에 실패한 셈이다.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영화인데도 사건의 개연성 부족이 문제점 중 하나로 꼽혔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태양의 후예' 포스터 



칭찬 듣던 ‘태양의 후예’, 단점 속속 드러나

‘태양의 후예’가 3, 4회까지 방영됐을 때 이 드라마의 장점을 끄집어내 나열해본 적이 있다.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을 풀어낸 김원석 작가와 로맨틱 코미디의 대모 김은숙 작가의 컬래버레이션, 그리고 KBS와 영화투자배급사 NEW의 협력, 송중기와 송혜교 등 배우들의 조합 등. 필력과 자본 및 제작 스킬, 그리고 이미지 등 각자가 가진 장점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이뤄낸 성과로 분명 칭찬할 구석이 많은 드라마였다.

그런데 5회를 넘어서면서 이 드라마의 문제점도 시원하게 드러났다. 대부분 현실성 떨어지는 전개 등이 지적 사항이 됐다. 툭하면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주인공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둬 ‘너무 하는 게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절벽 위에서 차와 함께 떨어진 송중기가 같이 물에 빠진 송혜교를 심폐소생술로 살려내는 과정이라든가 지뢰밭을 마치 소풍 즐기듯 편안하게 빠져나오는 장면 등이다. 송중기가 오토바이에 탄 채 달아나는 소매치기를 장난감 총으로 잡거나 혼자서 적의 소굴로 뛰어드는 장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15회에서는 총에 맞아 심장이 멎은 송중기가 제세동기까지 가동해 가까스로 살아나는 상황이 묘사됐다. 심정지 상태까지 갔다면 총격으로 인한 출혈도 심했을 텐데 송중기는 눈을 뜨자마자 또렷하게 말을 하고 심지어 문제적 상황을 해결하겠다며 종횡무진해 시청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인물들이 서울로 돌아온 뒤의 상황을 보여주면서 과도한 PPL이 드러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제네시스를 몰고 가던 진구가 자율주행 장치를 켜놓고는 조수석의 김지원과 키스에 몰두하는 등 ‘대놓고 광고’라고 할 만한 장면이 이어져 몰입을 방해했다. 


'태양의 후예'에 출연중인 송중기와  진구 및 동료 배우들.  송중기는 특전사 정예부대 유시진 대위를 연기하고 있다. 


완성도 떨어지는 설정, ‘송중기 판타지’와 로맨스로 대체

긴 호흡의 드라마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중심이 되는 사건 외에도 회차별 에피소드가 들어가야 하고 이 각각의 이야기를 하나의 큰 줄기로 보이게 만드는 기술도 필요하다. 이때 흐름이 끊어진다고 느껴지거나 굳이 필요없는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선 안 된다. ‘태양의 후예’는 이 부분에 있어 사실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제작발표회에서 송중기가 장난스럽게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하기 위해 지진도 나고 전쟁도 나는 드라마”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그저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를 보여주기 위해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사건을 굳이 꺼내 짜 맞추기를 시도한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인물들의 표정에서 진지함이 엿보이지 않아 몰입도가 떨어지지만, 제작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곳곳에 배치한 멜로를 부각시키는 데에만 분주하다.

그럼에도 ‘송중기 판타지’, 또 그 외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멜로 라인에 중독된 시청자들은 ‘태양의 후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완벽한 남자 송중기의 매력에 빠져 단점 따위는 잊어버리게 된다. 시청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을 최대로 끌어낸 제작진의 역량 또한 상당하다. 그만큼 드라마에 있어 캐릭터의 매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이 또한 능력이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홍보용 스틸사진  


‘배트맨 대 슈퍼맨’, 공감대 형성 아쉬워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의 상황은 ‘태양의 후예’와 정반대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처음부터 판타지에 기반한 영화인데도 관객으로 하여금 리얼리티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공개된 후 미국 내 평론가들의 혹평 세례를 받았는데 이 역시 따지고 보면 ‘배트맨과 슈퍼맨이 왜 싸우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이유 때문이다. 개연성과 현실성에 대한 지적을 받은 셈이다.

극 중에서 배트맨은 슈퍼맨이 적과 싸우는 동안 본의 아니게 망가트린 도시를 바라보며 “제지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슈퍼맨이 인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라는 이유로 살의를 품는다. “슈퍼맨은 적이 아니다”라고 충고하는 이도 있지만 듣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싸움을 건다. 그리고는 신나는 한판 승부 후 슈퍼맨을 키워준 지구인 어머니가 위험에 빠지게 되자 돌연 힘을 합쳐 또 다른 적에 맞서게 된다. 여기서 배트맨이 마음을 돌려 슈퍼맨의 손을 잡게 된 계기는 둘의 어머니 이름이 같다는 이유 하나다. 강도에게 부모를 잃은 후 트라우마를 안고 살던 배트맨의 어머니 이름이 마사. 그리고 슈퍼맨의 지구인 어머니 이름도 마사다. “마사를 구해야 돼”라는 슈퍼맨의 말에 배트맨도 자신이 구하지 못한 어머니를 구하러 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 수 있다. 

어쨌든 이런 배경은 배트맨이란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고, 일단 이번 영화에서는 배트맨의 심경 변화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그러니 죽일 듯 싸우던 둘의 화해가 어이없어 보일 수밖에.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슈퍼맨 캐릭터는 매력을 살려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실수

다시 살펴보면, 이 영화의 문제점이라고 하는 것들이 ‘태양의 후예’가 지닌 단점들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개연성 없는 사건과 초인에 가까운 송중기를 보여주며 ‘원래 이런 드라마’라고 이해를 구하는 것과 두 슈퍼히어로의 ‘유아틱한 싸움’이 뭐 대단한 차이가 있을까.

그런데도 대중은 ‘배트맨 대 슈퍼맨’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태양의 후예’를 볼 때는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바짝 집중한다. 현실적인 드라마의 비현실적인 설정은 받아들이면서 태생부터 비현실적인 영화에 과장된 설정이 좀 들어갔을 뿐인데 거기엔 ‘별로’라며 반기를 든다. ‘안방에서 편히 시청할 수 있는 드라마’와 ‘극장을 찾아가 봐야 하는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도 이유가 되겠지만, 두 작품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달라지는 건 결국 기대감의 정도와 설득력의 차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태양의 후예’는 로맨스를 주력 무기로 내세우고 최소한 이 부분에 있어서만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엉성한 전개로 집중력을 떨어뜨릴 때도 송중기의 캐릭터 유시진의 매력으로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한편 ‘배트맨 대 슈퍼맨’은 제목이 가진 강렬한 어감이 무색할 정도로 두 히어로의 대결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저 시리즈의 다음 편을 고려해 ‘판’을 깔아놓는 데 집중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돼버렸다. 캐릭터의 매력이라도 살렸어야 하는데 슈퍼맨은 지질하고 배트맨은 고집불통처럼 보인다. 두 히어로에 집중하고 싶어 극장을 찾은 관객이 눈 둘 데를 찾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배트맨 대 슈퍼맨'의 스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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