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1. 오리손 ~ 론세스바예스 (Roncesvalles)
이른 아침, 아직 어둡다.
서머타임으로 기지개가 늦는다.
오늘 넘어야 할 산은 어제보다 더 높고 멀다.
누구도 이른 아침부터 서두르지 않는다.
아침 식사 시간은 정해져 있기에!
대부분 전날 샤워를 하고 입은 옷이 오늘의 옷이다. 일어나자마자 침대를 정리하고, 세수를 하고, 식당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부스스 일어나 새집을 짓고 식당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예 짐을 정리 안 하고 밥부터 찾는 나 같은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일찍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먹고 떠날 차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제의 용사들은 오늘 다시 뭉칠 수 없었다. 나처럼 느린 분들이었다. 고되고 험한 산행, 든든히 먹어둬야지!
일반적인 아침 식사는 빵과 버터, 잼, 커피와 주스였다. 치즈와 살라미 정도가 더해지기도 하고, 콘푸레이크를 타 먹을 수 있게 하는 곳도 있다. 이런 아침이 주로 3~5유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서양식 아침에 있는 베이컨과 달걀 프라이는 없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식사였다.
이제 커피와 주스를 마시고 일어서야지 싶을 때 로만손 일행이 P선생님과 어슬렁 거리며 들어온다. P선생님은 나에게 짐을 챙겨서 오라고 했다. 나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그냥 가시라고 하면서도 나는 서둘러 숙소로 뛰어갔다.
숙소에는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서둘러 배낭을 정리하고 있었다. 작은 배낭에 챙길 짐도 별로 없다 싶은데, 이래저래 바쁘다. 맨발에 바셀린을 바르고, 테이핑을 하고, 발가락 양말을 신고, 등산화를 신고, 끈도 조절했다. 나만 발에 신경 쓰는 게 아니다. 모두 그렇다. 짐을 꾸리고 나서 발에 공들이는 시간을 갖는다. 바셀린을 바르고, 테이핑을 하고, 신발끈을 단단히 묶는 과정! 나는 발가락 양말까지 신으니, 발을 더 애지중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발은 중요하다. 특히 순례길에서는 발이 다다. 발이 아프면 걸을 수 없다. 발 때문에 순례를 중단하고 가는 일이 거의다. 조심해야 했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이고, 조마조마했다.
다시 산장으로 갔을 때, 로만손 일행은 벌써 떠나고 없었다. 느리게 걷는 내가 행여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까 싶어서 얼른 떠났는지 모르겠다. P선생님만 초조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 반가운 사람인데!
분명, 안 반가운데 사람인데,
왜, 고맙지?
왜?
P선생님은 로만손 일행을 따라가고 싶었을 것이다.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안달 난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를 두고 그들과 함께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컷을 것이다. 그들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은 먼저 가겠노라고, 당신은 수를 기다렸다가 오라고 했을지 모른다.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P선생님은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행여 그들과 맺은 연을 놓치게 될까 봐 초조했을 것이다. 차마 나를 두고 그들을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모른다.
다음 코스는 론세스바예스! 다른 코스는 공립 외에 여러 숙소가 있지만, 이곳은 순례자의 대부분이 한꺼번에 다 묵을 수 있는 규모이고, 다른 숙소는 거의 없다시피 한 유일한 곳이었다. 기약을 하지 않아도 날짜만 맞으면 다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P선생님은 그런 마음이 오롯이 느껴졌다. 미안했다. 나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잠재운 것 아닌가.
유난스레 나를 붙잡았던 로만손 일행이 이토록 쿨하게 떠날 줄이야! 어제저녁 식사 때 와인 한 잔이라도 함께 하며 왁자지껄 떠들었으면 이보다 더 친해졌겠지! P선생님과 거리를 두는 나를 느꼈다면 애써 나를 합류해서 갈 것도 아니란 생각을 했을까?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빛났다.
초록의 기운을 담은 하늘과
드넓게 펼쳐진 목장 지대,
순례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피레네 구간!
어쩌면 이 풍광을 보기 위해
나는 먼 길을 왔는지 모르겠다.
날이 좋았다.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에도 P선생님은 나보다 100여 미터 앞서 걷고 있었다. 어제 모서리에 앉았던 말 없는 아저씨가 P선생님 곁에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곁에 P선생님이 있는 것이다. 한참 동안 그에게 말을 건네던 P선생님이 속도를 내서 앞서 간다. 별다른 대꾸 없던 말 없는 아저씨! 내 느린 걸음이 따라잡는다. 보기에도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그는 묵묵히 그 언덕을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그에게 부엔 까미노 인사를 건네고 황급히 지나왔다. 그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푸른 초원, 평화의 길이 펼쳐진다. 하늘과 땅이 이어진 곳에 기도가 모인 순례길 상징들도 보인다. 반가운 소들과도 대면의 시간도 주어진다. 어린 동심으로 바라본 세상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확장된 에너지가 즐거움을 선사한다.
나보다 늦게 출발한 순례자들이 결국 나를 스쳐 지나간다. 오르막을 오르느라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순례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배낭에 주렁주렁 달린 옷과 등산 양말이 크리스마스트리 같다. 배낭에 등산양말을 걸고 걷는 사람들이 많다. 날이 흐려서 빨래가 마르지 않은 탓이다. 기능성 옷도 마를까 말까인데, 면 소재 등산양말은 말해 무엇하리!
홀로 순례길을 걷던 내 또래 여인들이 어쩌다가 함께 걷게 되었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에서 말과 함께 포즈를 잡았다. 서로 스마트폰을 건네주며 예술혼을 끌어다가 사진을 찍어준다. 하하, 호호, 어쩌다 보니, 성격도 비슷한 사람들이다. 실컷 떠들어도 이 넓은 초원에서 나무랄 사람은 없다. 헥헥 거리며 걸으면서도 연신 웃음이다. 이런 우리 앞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힘들다고 인사를 생략하지 않았다. 힘 있는 목소리로 부엔 까미노를 외쳤다.
오! 간식 차가 있다. 말로만 듣던 그 간식 차가 정말 있다. 오리손에서 론세스까지는 식당은커녕 가게조차 없다.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것이다. 구세주처럼 등장한 간식 차는 이동형 봉고였다. 비수기 때는 없다는데, 아직 10월 초에는 있네? 운 좋게 발견한 간식 차에 모두 자석처럼 끌려갔다. 각자 달걀과 빵과 바나나를 손에 들었다. 커피, 콜라, 주스도 건네 졌다. 간식 차 옆에 있는 쓰러진 통나무 위로 쪼르르 앉았다. 진작부터 앉아있던 남자가 헤벌쭉 웃는다. 배낭을 팽개치다시피 하고 오로지 먹는데 몰두! 그 모습이 웃기다며 사진으로 남긴다. 어쩌다 보니 옆에 있던 아저씨도 함께 찍었다. 통나무에 앉아서 카메라를 보는 눈이 어린아이들 같다. 함께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같다.
순례길에 두 가지 타입이 있다. 빨리 마을에 도착해서 여유를 즐기려는 자, 가는 동안 그 길을 즐기려는 자, 당연히 숙소를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좋은 침대를 택한다. 중간중간 쉬면서 낭만을 즐기려는 자는 대부분 빨리 걷지 못한다. 그래서 낭만이라도 즐기려는 것 아니겠는가! 나 역시 걷는데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작 도착한 마을에서는 충분히 즐기지 못한다. 마을에 있는 숙소와 슈퍼, 어쩌다가 성당 정도를 가보는 게 다였다. 그것도 성당 미사가 있거나 개방 시간이 맞아야 내부를 들러볼 수 있는 거고, 닫힌 성당문만 바라보다가 오는 경우도 많다. 물론 미사가 있어도 저녁밥 먹으려고 가보지 못한 경우도 있지!
<프랑스 길, 나폴레옹 길>
나폴레옹의 부대가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할 때 이용한 루트가 바로 나폴레옹 길이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으로 이어지는 길로 본격적인 스페인 길이 펼쳐진다. 순례길 대부분이 스페인인데, 프랑스에서 시작하는 이 피레네 구간 때문에 프랑스 길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날이 흐려졌다.
비를 쏟아낼 듯 안개를 머금은 길이
아슬아슬 펼쳐졌다.
물을 마시면서 잠시 쉬려는데, 한 무리의 할아버지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곁에 일찍부터 자릴 잡은 한 여인이 흡연 중이었다. 휴식할만한 공간이 여기뿐인데, 왜 이런 데서 담배를 태운데? 나는 멀찍이 떨어져 물을 마셔야지 싶었다.
스틱을 세워두고 있을 때였다. 할아버지 그룹이 내게 사진 좀 찍어달라는 것이다. 곁에 있는 여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내게 직진 중이었다. 그들에게 휴대폰을 건네받고 찍었다. 휴대폰을 건네받은 이가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사진 멋지게 찍는데?"
나는 괜한 칭찬에 스마일 코드처럼 입꼬리를 크게 올려 웃었다. 그냥 예의상 그러는 것이겠지만 보람은 있다는 생각! 그런데 자기들끼리 웅성이더니, 다른 할아버지가 또 자기 걸로 한 번 더 찍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다시 찍어 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흡족한 표정들이 스친다. 그리고 또 다른 할아버지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왜지? 왜 사진을 공유하지 않고 이러는 거지? 나는 민망하지 않게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나는 사진 찍는 로봇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소리 내 웃어댔다.
남은 할아버지들도 각자 휴대폰을 내밀어서 그냥 원 없이 다 찍어주었다.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가 싶었다. 우리나라처럼 디지털 문화가 발달된 나라도 없다 하질 않나? 현재 디지털 세대에 젊은이만 있는 게 아니다. 노인들도 디지털을 이용하는 빈도수가 높다. 오죽하면 중독률도 높을까. 그에 비해 외국인 노인들이 아직 디지털 문화에 서툰 것이다.
물을 마시며 곁에 있던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겨 묶은 모습, 나이 때는 나와 비슷할 듯했다.
곁에서 내가 노인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봤던 터라 그런지, 한결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흡연이 어느 정도 끈나갈 때 기념으로 그녀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저 남들이 요란스레 사진 찍길래 나도 찍자 싶었다. 이곳이 롤랑의 샘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찍길 잘했다.
그녀에게도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괜찮다고 했다. 그럼 나랑 찍자 했더니 그건 또 흔쾌히 오케이를 했다
그녀도 오리 손에서 묵고, 론세스까지 간다 하는데, 어제 소개 시간에 그 많은 사람 중에 그녀가 있었다니!
그녀는 조금 더 쉬었다가 담배를 한 대 더 태우려는 듯했다. 눈치껏 먼저 가겠노라며 그녀 곁을 떠나왔다.
한국 순례자 협회에 따르면,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산속에서 급변하는 날씨, 안개와 산속 가스, 봄가을에도 만날 수 있는 눈, 추위와 강풍, 진창길을 극복해야 한다. 신중하게 본인에게 질문을 던져보란다. 정말 이 산을 걸어서 넘을 수 있는지! 실제로 이 루트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부상을 입거나 무리를 해서, 빰쁠로나에 도착하기도 전에 순례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니! 우리나라 순례자들은 특히 이 루트를 넘기 전에 충분히 쉬고, 신체리듬을 회복한 후 걷기 시작해야 한다. 이 루트에서 마실 물을 구하기 어렵고 먹을 것을 파는 곳이 없기에 반드시 출발 전에 충분한 식수와 행동식, 식사를 준비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비가 오고 난 뒤,
산에서 내려온 물이 고였는지,
땅이 질퍽했다.
길가로 사람들이 걸은 흔적이 있었지만
그곳 역시 푹푹 꺼지는 진흙 구덩이였다.
땅이 질퍽하다. 첫날부터 등산 신발을 더럽히는 코스를 만나게 될 줄이야. 내가 한숨을 내쉬며 발 디딜 곳을 대충 눈으로 훑어보는 사이, 한 여자애가 과감하게 등산화를 벗더니 진흙 길을 맨발로 걸어간다.
나는 그녀를 환호했다.
“멋진 시도군요! 조심히 걸으세요!”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걷는데 집중해야 하는 그녀에게 더는 말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녀가 걷는 길을 조심스럽게 뒤따라갔다. 물론 내 등산화는 진창이 되어갔다.
진흙 구간이 끝나자, 그녀가 마른 흙 쪽으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조금 쉬었다가 발이 마르면 등산화를 다시 신겠다는 것! 나는 그녀에게 행운을 비는 뜻에 엄지를 날리며 자리를 떴다.
얼마 안 가서 길 끝쪽에서 멈췄다. 이제 왼쪽으로 꺾이는 숲 구간으로 가면 더는 쉴 곳이 없을 듯했다. 잠시 앉아서 간식을 먹어야 했다. 진흙길을 걸어와서 힘이 빠진 것인지, 점심 대가 되어서인지, 일단 앉기로 했다. 큰 돌이 놓여 있어서 앉기 좋았다. 그때 누군가 아는 척을 한다. 피레네를 넘을 때 신나게 사진 찍었던 친구들이다. 그녀들도 적당히 먹을 데를 찾던 중, 나를 본 것이다. 우린 가져온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대부분 샌드위치였다. 오리손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어제부터 사 먹을 데가 없었다. 진작부터 준비한 바게트에 치즈와 살라미 등을 얹어 먹는 형태였다. 사실 나는 바게트 빵이 목이 메었다. 아까 떠온 물을 마시면서 얘기를 하느라 서로 낄낄거렸다. 하필 길 막바지 위치한 곳이라 진흙길을 통과한 순례자들에게 수고했다고 응원해주게 자리가 되었다. 모두 지친 표정이면서도 한껏 웃어주고 떠났다.
걸음 속도가 다르니, 혼자 걸어야 한다.
혼자 걷는 시간에 익숙해져야 한다.
브라질에서 온 마기는 중년이었지만 미소가 젊었다. 금방이라도 고민 상담을 하고 싶을 만큼 깊은 눈을 가졌다.
“내 딸이 한국에 있었어요. 직업 군인이었지요.”
마기에게 그런 큰 딸이 있을 줄이야!
“마기, 싱글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큰 딸이 있군요?”
그녀는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브라질 사람이면 춤 잘 추죠? 나 좀 가르쳐 줘요!"
"물론 난 춤 잘 춰요! 언제든 가르쳐 줄게요!"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 아무리 외국인이라도 편한 사람은 서로 알아보기 마련이다.
보라색 후드 티를 입은 여인은 성격이 시원했다. 선글라스를 항상 머리에 쓰고 후드 모자를 꼭 조여서 써서 외계인처럼 보였다. 이름이 어려웠는데, 그냥 '발'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녀는 리더십이 강했다. 나중에 만나는 사람마다 왓츠 업으로 단체 채팅방으로 초대했다. 함께 걷는 의미로 도시마다 도착해서 식사라도 나누게끔 했다. 나는 따라가지 못해서 그저 상황만 지켜볼 뿐이었지만!
오리손에서 묵었지만, 어제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녀들을 기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내 사진 속에 그녀들이 모두 있었다. 아까 샘터에서 만난 여인까지! 언제부터 친구였는지 모를 정도로 단번에 친해진 사람들! 이런 만남들이 참 행복했다. 이 길을 함께 걸어간다면 결코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홀로 걸어야 한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안개에 취한 건가?
안개가 자욱한 피레네 언덕, 기둥 하나에 의지해 배낭을 꾸리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는 조금 있었다. 물을 꺼내는 중이겠거니! 인적 없는 곳에서 만난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배낭을 뒤적거리면서도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안개 낀 언덕이 몽환적이다. 빙 둘러서 사진을 찍었다. 안개만 떡하니!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한 말!
"사진 좀 찍어주세요!"
맛이 갔나 보다. 한참 오르막을 올라와서 그런가? 인사만 하고 그냥 가면 되는 걸, 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을까? 누가 보면 정말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줄 알겠다! 몽환에 눌려 몽롱이 왔다. 그녀가 피식 웃었다. 기꺼이 찍어주겠다고 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배경으로 사진을 찍겠다니, 좀 웃겼나 보다. 그녀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배낭을 챙기면서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그냥 갈까? 아니다. 말을 내뱉었으니 대충이라도 찍고 가자!
그녀가 힘들었는지, 한숨을 푹 내쉬며 내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찍어는 줬는데! 배경은 역시 안개뿐! 내 얼굴도 멍한 상태! 이걸 왜 찍자고 했을까! 그녀도 찍어주려고 했지만, 괜찮단다. 왜 레퍼토리가 똑같지? 대신 함께 찍는 거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같네? 그녀와 셀카도 찍는지 모르겠다. 서로 신나서 반갑게 셀카를 찍으면 모를까? 왜 모르는 여인에게 사진을 찍자고 이러는 걸까? 외국인 처음 본 사람처럼?
창피했다. 나 자신이 왜 이리 창피한지! 그녀가 힘겹게 배낭을 정리하는데 한가롭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그게 아니라면 오랫동안 나를 세워두고 자기 일부터 보는 게 무안했나? 주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였지만, 사실 둘 다 마음에 걸렸다. 나라면 얼른 사진부터 찍어서 갈 길 가게 했을 텐데! 근데 왜 눈치 없이 이 와중에 사진 찍어달라고 했어? 이게 내 숨은 마음들인 것이다. 눈치 더럽게 없는 나, 정의의 이름으로 줄행랑!
오르막 길을 한참 오를 때였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다가오는 소리! 한국말이다. 한쪽으로 비켜서서 눈인사 건네야지 싶을 때였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 앗! 그 친구였다. 파리에서 봤던! 한국에서 같은 시기에 떠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 카톡, 같은 날짜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파리에서 잠깐 얼굴을 보자고 했던! 제법 아저씨 같은 글투에 내 또래까지 생각했는데, 군대 갓 제대한 친구였다. 군대 문화가 아저씨 스멜을 준 것인지도! 우리 조카들도 군대 갔다 온 동안 아저씨들 같았으니! 다르게 말하면 윗사람에게 조금 더 예의를 갖추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는 내게 인셉션 배경이 된 곳에서 에펠탑을 보게 해 줬다. 싱글거리고 웃는 모습이 어린애였다. 군대 선임에서 이제 사회 애송이로 시작되는 때겠지!
루브르 박물관까지 구경하고, 나는 몽마르트르를 후딱 갔다 와야지 싶어서 그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사실 감기 기운이 있다는데, 따뜻한 커피도 제대로 대접 못했다. 굳이 내가 살 타이밍도 아니었으니 그냥 말았다. 루브르 쪽 공원에서 크로와상과 커피도 각자 시켜서 마셨다. 한가로운 공원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하루아침에 낯선 사람과 파리 루브라니? 이상했다.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한가로운 공원, 맑은 하늘, 지적인 사람들과 즐기는 오후! 그런데 누구세요? 웬 꼰대세요? 분명 그 친구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귀를 닫고 싶군!
그를 피레네에서 만나서 반가웠다. 새로 만난 일행들인지, 급하게 쫒아가느라 나와 긴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는 친구가 절실해 보였다. 아직 사회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정보도 조금 둔한 편이었다. 젊은 친구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반가움이라기보다는 조금 놀란 눈이었다. 아니 당신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그런 눈빛이었다. 내가 생장에서 출발해서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는 날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 시간에 내가 피레네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한 것이다. 오리손에서 묵는 건 예정에 없었으니까.
"배낭을 동키로 보냈네요?"
"네. 그거 들었으면 죽었을 거예요. 지금도 힘들어요!"
그가 급하게 샀다며 물병에 비옷을 넣었다는 주머니 가방! 가는 끈이 그의 등에 매달려 있었다. 초등학생 같았다. 또래와 어울리는 그 친구가 어쩐지 신나 보였다.
반가운 마음을 손인사로 건네며 어서 따라가라고 손짓했다. 그는 나에게 더 뭔가를 말하려다가 꾸벅 인사를 하고 급히 일행들을 쫒아갔다. 어디서든 보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 컸다. 결국 보게 됐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론세스바예스! 그곳에 가면 다 만난다고 하질 않았던가?
갈림길
이상한 구조물이 보였다. 비상 전화기 같은 인터폰도 있고, 지도가 있는 나무 의자도 있었다. 이 지점에서 산 아래쪽 길로 내려가야 했다. 나는 어찌 가야 할지 몰라서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몇몇 사람들이 아는 길처럼 고민 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나도 따라갔다. 잔돌이 굴러다니는 가파른 돌 길이 나왔다. 100여 미터 더 내려가자 표지판이 보인다. 왼쪽 길로 가면 가파른 돌산! 우회를 해야 했다. 비도 오는데 미끄러지거나 다리라도 삐면 끝이다. 많은 경고들이 있던 이 구간, 나는 무리 없이 가기 위해 우회로를 택했다. 사람들이 이 지점에서 우왕좌왕했다. 오른쪽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따라가려다가 좀 더 살피고 가야 할 것 같았다. 100여 미터 아래로 내려갔다. 눈 앞에 좁은 길이 보였다. 가파른 내리막 길! 잔 돌이 있는 깊고 좁게 패인 급경사 길! 여기가 위험한 구간이구나!
오른쪽 길을 봤다. 사람들이 이미 사라졌다. 표지석도, 노란 화살표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확신으로 저리로 갔을까? 나는 그저 망설이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오면 물어볼까 싶었다. 내려가면 금방일 것 같아서 마음이 요동쳤다. 조금 고생해서 내려가면 빠르게 갈 수 있을 것 같은 유혹! 노란 화살표가 친절하게 가리키는 길!
위쪽에서 내려오는 노인이 보였다. 작은 체구였지만, 운동을 많이 한 듯 단단한 몸이었다. 은빛 커트머리가 건강해 보였다. 그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여긴 급경사예요. 한참 동안!"
그녀는 이곳을 잘 아는 눈치였다.
"위험해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숨도 안 쉬고 대답했다.
"위험해요. 당신은 오른쪽으로 가는 게 좋아요. ”
그녀는 나를 스쳐 그 길로 들어섰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에는 정말 미끄러워요. 당신은 우회로로 가세요.”
“당신도 위험하잖아요.”
그가 돌아보며 웃었다. 신선 같은 미소!
"나는 이 길을 많이 와 봤어요."
나는 그녀의 제안대로 우회로를 택했다.
커다란 나무를 기점으로 계속 이어지는 길,
안개가 짙은 날, 비까지 심하게 내렸다.
20미터 정도 보이는 길, 모두 안개였다. 그 길에 펼쳐졌을 아름다운 풍경을 이 안개 녀석이 잡아먹어 버렸다. 안개로 범벅된 아스팔트 길, 10여 미터 앞만 보일 뿐, 화살표도, 표지석도 보이지 않았다. 은빛 노인이 알려준 길이 맞는데,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앞 뒤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길을 선택했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라도 들리면 좋은데, 빗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걸었지만 뒤에서 오는 사람은 없었다. 비가 세차게 내렸다. 비옷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고어텍스에 의존했다. 비가 많이 쏟아져도 배낭에서 비옷을 꺼낼 수 없었다.
얼마간 걷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자가용 하나가 다가왔다. 안갯속에서 나타난 차였다. 나는 일단 차를 세웠다. 행여 내가 태워 달라고 할까 싶어서 난감한 표정이었다. 반대 차선이었으니! 젊은 남녀였다. 둘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태울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얼른 본론을 꺼냈다.
“이 길로 쭉 가면 론세스로 갈 수 있나요?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네, 맞아요. 이 길로 계속 가세요.”
“표지석이랑 노란 화살표가 안 보여요!”
“나무에 노란 표시가 되어 있어요. 그걸 보고 쭉 가세요. 행운을 빌어요!”
“고맙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무 막대들이 길 군데군데 세워져 있었다. 일정한 구간마다 노란색이 칠해져 있었다. 이게 바로 노란 화살표 노릇을 하는 것인데, 폭이 좁아서 화살표 양쪽 머리는 못 그리고 몸통만 노랗게 칠해진 거다. 화살표 몸통들만 열일 중이었구먼!
달리다시피 걸었다. 저 멀리, 사람들이 보였다. 개도 데리고 있었다. 순례자라기보다는 가까운 구간을 여행 온 사람들 같았다. 비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다. 하필이면 가파른 내리막 길이었다. 미끄러운 풀 사이 좁은 흙길로 오다가 혼자 미끄러졌다. 벌러덩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휘청였다. 오른쪽 발목을 삐끗했다. 아, 신발 끈을 단단히 묶었어야 했나? 그나마 발목 등산화를 신어서 다행이었지만, 발목이 그새 시큰했다. 더 심하게 다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지만, 무리하면 염증이 퍼질 것 같아서 긴장했다. 이대로 순례길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운 나쁜 얘기를 내 얘기로 만들 수 없었다. 이곳에서 발이 삐어서 순례를 그만둔 사람들이 많다 질 않은가! 아무 일 없다고 여기자. 아무 일 없다. 내 발목은 잘 견딜 것이고, 염증약을 먹으면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잊는 거다. 난 다친 적 없다. 내 뇌가 인식하지 못하길! 걷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비와 안개로 보이는 건 없었지만, 언덕 위 시원한 바람이 내 피부 세포, 내 숨결 하나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대자연과 조우! 어제 생장에서 한 번에 바로 왔다면 길바닥에서 어찌 되었을까? 이 정도 기상으로 이 길을 걸었다면 더 힘들었겠지? 로만손 일행과 P선생님에게 새삼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더 잘 알고 있었구나. 나는 나를 좀 더 살펴야 할 것이다.
이제 평온해진 숲길로 들어섰다. 비가 어느새 가늘어지고, 바람도 없었다. 멈춰서 물 한 모금 마셨다. 스틱 길이를 조절하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애매한 길이었다. 무엇보다 귀찮았다. 비옷과 배낭, 스틱, 사람이 보이면 재빨리 해결할 각이 아니었다. 이제 론세스바예스까지 내리막 이리라. 급경사 길은 벌써 도착했을 거리였다. 우회로도 곧 나오겠지 싶었는데, 계속이다. 조금 지쳤다.
드디어, 울타리 문이 보인다. 마을 경계에 들어선 것이다. 안내표가 보이는 집! 개신교 교회였다. 더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교회 앞마당에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빨리 알베르게로 가고 싶어서 이제 막 길 떠나는 사람들 무리에 섞였다. 교회 앞 숲길로 안내된 길! 교회를 기점으로 왼쪽으로 꺾여야 하는데, 일부의 사람들이 교회 차도로 걸어갔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았기에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질펀한 흙길로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발이 숲길로 가고 있었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발! 누가 조정하는 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