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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날개 Sep 15. 2020

[산티아고 순례길] 수비리에 훈풍이 분다. 설렘처럼!

[3일] #2. 수비리

수비리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이다. 바람도 선선하고 햇살도 좋아 마을 어디라도 앉고 싶었다. 작은 광장 사이로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편한 얼굴이다. 빵집과 슈퍼, 야외 카페 테이블에는 벌써 도착한 순례자들이 샤워를 마친 얼굴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부럽지만 한눈팔지 말고 숙소로 향하자 싶었다.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 평발이라 그런지, 일정 거리 이상을 걸으면 찢어질 듯 아팠다. 나이를 먹으면서 발바닥에 지방이 없어진다 더니, 평발이라 더 그런지, 유난스럽다. 마음만 청춘이지, 생체 나이는 흘러가는구나. 숙소로 향하는 동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마을 끝자락에 있는 숙소라지만 소름 끼치게 먼 거리도 아니다.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걸음을 재촉하지만, 윽윽 아프다.


수비리는 예쁜 마을이다.


차도를 따라 쭉 걸어가면 운동장이 보인다. 스포츠 단지란다. 수영장도 있다는데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오는 식당가! 야외 테이블 앞 가로등에 주인을 기다리는 개들이 있다. 인사를 해도 한눈팔지 않는 개들, 목줄이 메인 채 오로지 주인만 기다리고 있다. 훈련을 통해 사람들에게 길들여지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말썽을 부리거나 사납게 굴면 내쳐질 수 있는 운명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늑대에서 개로 길들여지고, 개에서 착한 개로 거듭나는 훈련 동안, 본능은 무의식에 갇혔을 것이다. 때로 얌전한 녀석들의 반란들이 야생의 습을 보여주고, 한평생 봉사한 안내견들의 노년 치매는 욕망 억제로 짓눌린 평생의 스트레스일 것이다.


동물도 이러한데, 사람은 오죽할까. 뛰놀고 싶은 아이들의 욕망은 일찌감치 잠재워졌다. 아이들은 이제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레이스에 일찍부터 합류해야만 한다.

왜 우리는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할 시간을 빼앗겼을까. 왜 어른이 되어서 겪어고 될 삶을 일찌감치 끌어 써야만 했을까. 잃어버린 욕망은 잃어버린 시간 안에 남아있겠지. 


스포츠 단지, 겉보기에 초라한 듯해도 정감 있다. 마을 가까이에 있으니, 접근도 쉽다.


귀염둥이는 오랜 시간 이러고 있었야 했다.


생명을 가진 존재들은 
누구나 사랑받길 원한다.
오랜 시간,
그 사랑 하나만을 기다린다.


목줄에 메인 개들의 눈빛은 주인에 대한 사랑으로 빛난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사랑 하나 얻기 위해 오랜 시간 어디를 보고 있던가. 원하는 사랑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얻는 쓸쓸함, 타인을 통해 얻고자 하는 사랑에 대한 목마름! 이 모든 것은 어쩌면 근원과 맞닿은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으리라.


안녕? 주인을 기다리는 시간은 참 지루해! 그렇지?


슈퍼 갈 때 있던 녀석이 올 때도 있었다. 많이 지쳐 보인다.


마을 끝자락에 있는 숙소는 작았지만 마음에 들었다. 주인장은 젊은 여인! 친절했다. 예약 내용을 확인하더니, 숙박비 지불 과정이 남았다고 한다. 생장에서도 똑같이 부킹 앱을 통해 예약했는데? 그곳에서는 숙박비가 지불되었다고 하던데? 왜 여긴? 내 의심의 눈초리 때문인지, 그녀는 싱긋 웃으며 자신의 숙소는 현장에서 지불한단다. 정신없이 준비한 탓에 돈이 빠져나갔는지도 확인 못했다. 주인장은 순박해 보였다. 괜한 걸로 거짓말할 사람 같진 않았다. 숙소에 따라 현장에서 지불하는 경우도 많다 하니 미리 잘 살펴둘 필요가 있겠다.


숙박비를 지불하며 식사도 함께 예약했다. 저녁은 훌륭하니까 일단 신청하는 게 좋을 거라는 주인장의 부심! 돈 좀 벌어보겠다는 눈빛은 아니었다. 동네를 둘러보며 카페나 식당가에서 저녁을 먹을까 생각했는데,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 일단 여기서 해결해야지 싶었다. 누군가 이곳 식사가 훌륭하다고도 했던 것 같다. 이런 기본정보가 신뢰를 준 것이겠지! 저녁이 맛있는 집은 아침도 맛있겠지? 사실 아침은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둘 다 신청했다. 론세스바예스 때처럼 후회하는 일 없이!


건물 입구에 차가 쭉 세워져서 숙소 입구를 찾기 힘들었다. 왼쪽으로 꺾여 쭉 올라와야 만나게 되는 간판!


순례자 코스는 대부분 10유로~15유로 사이다. 초반 13유로 가격에 만난 저녁 식사는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줬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걷는다는  정말 힘든 일이다. 마을이 금방 나오면야 다행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여는 카페와 바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따뜻한 커피와 빵과 감자 오믈렛, 오렌지 주스를 먹고 싶어도 문을  열면 땡인 것이다. 숙소에서 아침이 제공되면 일단 먹어야 한다. 굳이 건너뛸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


<알아두면 좋아요>

숙박비에 포함되는 경우와 따로 신청하는 경우, 어떤 것이든 사설 알베르게에서 제공되는 기본 아침은 접수가 필수다.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저녁은 인근 식당가에서 많이 사 먹으니, 굳이 훌륭하다고 소문난 곳이 아니라면 나가서 먹는 경우가 많다. 공립 알베르게에 머물 때는 고민할 것도 없다. 공립 알베르게에서는 아침이 제공되지 않는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가 예외지만! 대부분의 공립 알베르게에서는 순례자가 직접 식사를 해 먹을 수 있는 부엌이 제공된다. 물과 불, 식기와 냉장고를 쓸 수 있다. 물론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다. 다만 컵 정도는 자신의 것을 준비하면 좋겠다. 이따금 컵을 쓴 후 물로만 헹궈 놓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른 식기도 준비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려도 워워 자제해야 한다. 코털 하나라도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무게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


어? 로만손 일행이다. 그들이 왜 여기에? 오리손에서 내 일정을 미루어줄 때는 자신들도 이 숙소에 묵을 거라는 언급이 없었다. 아예 모르는 숙소를 대하는 눈치였는데? 아마도 수비리 공립이 문을 닫아서 일로 왔나 보다. 그나마 평점이 좋은 곳을 택했겠지!

그들의 원래 계획은 공립 알베르게였을 것이다. 수비리 공립이 공사 중이라는 소식을 뒤늦게 알았나 보다. 지금 수비리에서 숙소를 잡는 건 행운이라고 했다. 비수기라고 방심했다가 날벼락들이다.


로만손 일행을 다시 봐서 좋았다. 수비리에 훈풍이 분다. 마치 하루 만에 계절이 바뀐 듯? 지대가 낮아져서인가? 피레네 쪽 기후와 조금 차이가 있지 싶었다. 유난히 따뜻한 바람!  로만손 일행의 따뜻한 미소 때문인가. 로만손이라는 바람이 내 마음에 와 닿았나? 로만손은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살짝 설렜다. 아저씨! 혹시 나 따라서 여기에 온 거야? 물어볼 겨를도 없이 벌써 안으로 들어가 버린 야속한 님들! 알았어. 나 아니야, 그래!


수비리에 부는 훈풍에 살짝 설렜다.


해가 진 여름 저녁의 활기랄까?
날이 따뜻해서 더 그런지도!
저녁노을이 짙다.
오래 걸려있는 해도 좋다.


침대에 커버를 씌우고 짐을 정리를 하고 쉬려는데, 창문에서 바람이 몰아쳐 들어왔다. 내 침대는 창문 옆 2층이었다. 아직 침대에 오르기도 전에 바람을 심하게 맞은 꼴이다. 창문을 조금 닫았다. 로만손 일행은 다른 방에 묵었다. 남녀를 일부러 나눈 것 같지는 않은데, 방이 작아서인지, 이곳은 여자들 대부분에 남녀 커플 한 팀이 있었다. 2층 침대 3개, 총 여섯 개의 침대가 꽉 들어차서 좁았지만 창문이 크게 있어서 환했다.


나는 침낭을 꺼내서 물품을 정리하고 배낭을 캐비닛에 아예 넣어야지 싶었다. 그때, 현관문 옆 침대, 즉 창문을 마주 보는 위치에 있는 1층 침대 노인인지 나이가 좀 먹어 보이는 아줌마인지, 내게 창문을 열라고 했다. 명령 같은 예의 없는 말투였다. 내가 좀 전에 창문을 조금 닫은 것을 보고 한 말이다.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창문 바로 옆 침대에는 바람이 몰아쳐서 들어오니 조금만 닫은 거라고! 그녀는 내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아랑곳하지 않았다. 계속 창문을 다  열어 놓으라고 한다.


유럽에도 꼰대가 있다.


나이 먹은 사람을 통틀어 꼰대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니다. 구분해야 한다. 꼬장꼬장한 태도로 상대를 가르치려고 하고, 괜한 고집으로 상대를 애 먹이고, 앞뒤 안 가리고 자기가 살아온 방식을 강요하는 사람들! 이게 바로 꼰대다. 꼭 나이가 많은 사람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안하무인 사람들을 일컫은 말일 것이다. 이 유럽 여성도 나이 먹고, 얼굴에 ‘나 꼬장’이라고 쓰여있다. 무엇보다 비아냥 거리며 비웃는 듯함 표정이 스쳤다.


순례길에서 인종차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모를 수 있다. 그들과 밀접하게 지내본 적이 없어서 인종차별을 어떻게 하는지 눈치채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데, 너무 예민하게 느낀다 싶은 사람들은 이미 그들 사이에 인종차별의 의미를 담은 메시지라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왕따 시키고 놀리는 수단으로 쓰이는 메시지를 알아둘 필요는 있으리라.


일단 참자 싶었다. 침대에 누워 있기에는 머리 쪽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지만 아직 추운 바람은 아니니까.

“지금 창문을 활짝 열어두는 건 괜찮아요. 하지만 밤에 잘 때는 닫을 게요!”

그러자 안 된단다.

“창문을 닫으면 숨 막히고, 덥잖아!”

“지금은 바람이 따뜻한 편이지만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서 차가워요.”

그러자 다른 침대에 있던 사람들도 동조해서 난리다”안 추어요. 바람이 왜 차가워져요? 이 지역 기온이 피레네랑 달라요.”


젠장! 다 서양인들이었다. 젊은 남녀도 내 옆 창문 쪽 침대 1층은 남자가 2층은 여자가 썼다. 아무리 커플이라고 해도 함께 온 사람들에게는 침대 1층은 한 사람에게만 제공한다. 타인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미에서! 남녀 커플이 있는 침대는 창문 쪽이긴 해도, 문을 내 쪽으로 잡아당겨서 여는 구조라 바람이 나한테 몰아서 들어왔다. 활짝 열지 않으면 그 친구들에게도 바람이 잘 닿지 않은 것이다. 난감했다. 저녁이 되면 바람도 차가워질 텐데 어쩐다? 주인장에게 침대를 바꿔달라고 할 여분의 침대도 없을 것이다. 이미 예약이 풀로 찬 곳이니까.


서양사람들과 동양사람들은 생활패턴도 다르고, 신체 구조도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를 낳으면 뜨거운 온돌방에서 땀을 내면서 몸조리를 하는 반면, 서양사람들은 애 낳느라 더웠다며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마신다더니! 대놓고 다른 신체 구조 때문에 난감했다. 인도와 아시아권을 여행하면서 이런 고민은 없었는데!


그때 내 아래층 침대에 자리 잡은 거구의 여인이 캐비닛 위쪽을 가리켰다.

“추우면 저 담요 덮어요!"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나를 유난스러운 사람이라고 여기나? 언제 적 담요인지 내가 알게 뭔가? 먼지니 벌레니, 걱정되는 판인데! 이 정도 기온은 내 침낭으로도 충분하다. 왜 한겨울 담요를 덮으라는 거야. 바람이 많이 불어서 창문을 조금 닫자는데! 그런데 이 친구, 조금 천진한 눈빛을 가졌다. 어쩐지 이들과 결이 다른 사람 같았다. 마치 동양인인 내가 추위를 많이 타는 걸 정말 안타까워서 해준 말 같았다.


나는 창문 옆에 서서 누구랄 것도 없이 '서양인 너희들에게 고하노라'를 시작했다.

“지금은 바람이 따뜻해서 창문을 열어둬도 상관없지만 저녁에는 기온이 낮아져서 추운 바람이 들어온다. 보시다시피, 내 침대가 창문 옆 2층이니까 머리 맡으로 바로 바람이 몰아서 들어오잖아? 지금처럼 창문을 활짝 열어 둘 수 없어! 조금만 열어둘게!”

그러자 1층 맞은편 꼰대 같은 그녀가 나를 놀리듯 말했다.

“오, 그렇게 추울까 봐 걱정이야? 왜 그럴까? 그럼 나랑 침대를 바꿔야겠네? 엄청 시원한 자리잖아! 네 신체가 아무리 춥다고 해도 우린 춥지 않아! 우린 창문을 활짝 열고 자야겠는데?”

우리? 우리라고 표현했다. 나를 따로 떼어놓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열이 받기 시작했다.


그간 서양인과 동양인들의 마찰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알베르게를 가면 대부분 서양인들과 동양인들을 나눠서 입실시켰던 것 같다. 우선은 남녀, 그다음은 동양, 서양! 그다음은 노친네와 젊은이들! 그러다가 나중에 자리가 차면서 섞이는 정도였다. 들어오는 순으로 일단 침대부터 잡는 공립과 달리, 사설은 그런 배려들을 조금 하는 듯했다. 이곳 숙소는 예약 난을 겪으면서 이것저것 고려할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꼰대 같은 노인의 비아냥 표정과 말투가 마음에 걸렸다. 히히히 웃으며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하는 것도! 그녀가 침대를 바꿔준다는 것도 날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도 안다. 상대를 얕잡아보며 제압하려는 태도! 한 생각이 스쳤다.  


예전 아버지가 시계점을 하실 때였다. 방문 판매가 흔하던 시절, 우리 가게에도 보따리 상인들이 많이 들어와 물건을 팔려고 했다. 그때는 그냥 장사꾼, 장사치로 불리던 때였다. 어느 날, 녹음기를 파는 장사꾼이 들어왔다. 가전제품을 들고 다니며 파는 사람도 많았다. 이 남자는 커다란 녹음기를 들고 다녔다. 흔히 야유회 가면 들고 다니던 녹음기들! 그가 아버지와 무슨 얘기를 하다가 장사꾼스런 말투를 쓰며 아버지를 약 올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향해서 "당신! 이 녹음기 살 돈 없지? 당신에 물건 다 팔아도 이 녹음기 못 사지? 내가 당신네 물건 다 사줄까?"

아버지가 인상을 구겼다. 자존심 상한 사람들이 이 수법에 많이 넘어간다는데? "내가 왜 그걸 못 사! 하나 줘봐!" 이렇게! 깐족거림이 하늘을 찌를 때 아버지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어, 그래! 내가 녹음기 살게! 대신 돈은 당신이 우리 집 물건 다 사면 줄게!” 그러면서 아버지가 녹음기 보따리를 다락방에 올려놓았다. 놀란 장사꾼은 아버지에게 싹싹 빌듯이 미안하다고 했다. 팔고 싶어서 허풍 좀 떨었다며! 아버지는 그에게 넌지시 얘기했다. “장사에도 정도가 있는 거야! 선을 지켜야 한다고!”

그 뒤로 그는 오다가다 우리 가게에 들러서 시계 줄이나 시계 약을 갈고 가기도 했고, 아버지한테 커피를 사달라고 해서 마시고 가곤 했다. 아버지에게 가게를 얻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물었던 것 같다. 작은 시계점이었지만 아버지에게는 큰 자부심이었다..


상대가 나를 우습게 보거나 간을 볼 때 선택해야 한다. 그냥 지나칠 것인가, 맞닥뜨려야 할 것인가!

1층 꼰대 같은 여인이 또다시 비아냥 거리길래 나는 시익 웃어줬다.

"그럼, 바꿉시다. 지금!”

그러자 그녀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이 먹은 사람이 일찍 도착해서 침대 커버도 진작 깔아놓고 뒹군 상태였다. 내 침대는 아직 내가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깨끗하게 시트를 깔아놓은 상태 그대로였다. 깔끔한 침대를 가진 내가 바꾸자고 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눈치였다.


나는 작정하고 눈을 마주쳤다.


"지금 바꿔 주세요! 샤워하러 가야 하니까!"

그러자 그녀가 멀뚱하게 자기 짐을 바라봤다. 아, 귀찮은데? 그냥 말까? 그런 표정이었다. 사실 그녀가 뒹군 침대가 조금 찜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침대 커버를 벗겨서 가라고까지 할 수 없었다. 샤워는 한 것 같으니 침대 커버가 아직은 괜찮겠지 싶었다. 내가 올 때부터 나를 지켜봤으니, 그녀는 알았을 것이다. 내 침대가 더 깨끗하다는 것을!


내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꼰대 여인은 조금 기죽은 모습이었다. 짐을 들고 재촉하는 내 옆을 지나 조심스레 창문 앞에 섰다. 바람과 인사를 나누는지! 아니면 바람 상태를 체크 중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자비 없이 짐을 옮겼다. 그 와중에 창문 옆 커플 남자가 자기가 대신 침대를 옮기겠다고 했다. 그러자 꼰대 여인이 좋아하는 눈치였다. 오! 갸륵하다고 여겨야 하나? 그는 적절한 교환이 될 거라고 믿는 듯했다. 나에게는 말도 없이 자기들끼리 이러네 저러네 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얄밉게 웃던 그 녀석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소용없어. 네 침대도 창문 옆인데, 창문을 활짝 열고 자면 바람이 다 들어오잖아! 너희들이 더운 거 싫듯이 나도 추운 거 싫다.”


괜한 자존심 대결이었다.


1층 침대에 있던 꼰대 여인은 얼떨결에 2층 침대로 옮겨졌다. 그녀가 쓰던 침대는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현관 옆이지만, 머리 쪽이 다른 사람들의 침대에 가려 바람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놔도 감기 걸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꼰대 여인은 이 구조가 답답했나 보다. 덕분에 나는 출입문과 가깝기도 하고, 옆에 있는 화장실 가기에도 수월했다. 무엇보다, 일찍 와서 잡아야 하는 1층 침대가 아니던가!


그에 반해 그녀는 현관문에서 바로 보이는 침대 위치에 그것도 2층 침대! 손해 보는 기분이 그제야 들었을 것이다. 그러게, 잘 때 창문을 조금 닫자는데, 왜 그리 비웃으며 사람을 몰아세워! 꼰대 여인에게 아까와 같은 비아냥 눈빛은 사라졌다. 나 역시 경계 모드 해제! 다른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그들에게는 쿨한 면이 있다. 어떤 식으로든 상황이 정리되면 그걸로 끝이다. 오늘 밤 창문을 열고 자도 나는 추위에 떨 일 없을 테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역시 이날 새벽에 누군가 창문을 닫았다. 자존심으로 버티기에는 기온이 너무 떨어진 것이다. 마리 바로 위로 바람에 들어오는 위치의 꼰대 여인일 것이다. 새벽에는 기온에 낮아져 바람이 차가워지는 걸 왜 모른단 말인가! 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단 말인가! 그들도 나도 순례길을 걸을 때 몸 상태를 잘 살피고 조절해야 하는데 말이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기 위해 숙소 입구 쪽에 있는 빨래터로 갔다. 수도가에 세면대 같은 모양이지만 빨래할 수 있는 빨래판이 새겨 있었다. 비누로 슥슥 문질러 조물조물 빨기 좋게 해 놨다. 이런 것도 귀찮고, 빨래 양이 많을 때는 세탁기에 맡겨야 했다. 더 진화해서 건조까지 하면 럭셔리 그 자체가 된다. 함께 돈을 모아서 하면 이런 호강 코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홀로 다니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많지 않다.


빨래를 하려는데, 세제 따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으니 잘 모르겠다면서도 살펴서 따줬다. 한국 남성이었다. 자기도 한국 젊은 친구들과 한 코스 같이 왔다나? 나중에 보니, 군대 갓 제대한 그 친구! 어느새 젊은 여자들과 친해지고,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합류한 것이다. 그 친구는 나를 보자 반갑게 인사는 했지만, 함께 어울리는 것은 반댈세, 태도였다. 나도 안 껴! 그들이 일찍 도착해서 동네를 이미 두 바퀴 이상 돌다 왔다는데, 또 나가는 것 같았다. 슈퍼와 빵집에 있는 맛있는 것들에 대한 깨알 정보를 알려줬다. 그걸로 됐어. 이 얼마나 흡족한가.


나는 얼른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었다. 발바닥 아프다는 건 어디로 갔는지, 맛난 것들에 대한 고찰을 위해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하려 했다. 그때 로만손이 빨래를 가지고 나왔다. 론세스바예스부터 계속 손빨래 중이었다. 세 사람이 함께 다니면서 세탁기를 돌리면 쉬울 텐데? 순례의 기본을 지키려 하나 싶었다. 저녁 식사 때 보자며 헤어졌다.


숙소에서 이런저런 볼 일을 보다가 저녁 식사 시간이 겨우 30분이 남았다. 얼른 가서 내일 필요한 간식거리를 사다 놔야지 싶었다. 길에서 로만손 일행과 또 만났다. 어느새 빨래를 마치고 슈퍼에서 뭔가를 사 오고 있었다. 로만손은 빠르네? 손에 든 건 술인가 싶었다.


마마드가 잊지 않고 물었다.

"어디가? 저녁 먹을 시간이야!"

"알아요. 아직 30분 남았잖아요. 얼른 슈퍼 좀 다녀올게요."

"멀잖아. 뭐 살 건데? 과일 좀 줄까?"

"아니요. 구경도 할 겸 얼른 갔다가 올게요."

"저녁 식사 시간 늦지 마!"

"물론이죠!"

자리를 맡아달라고 할까 하다가, 30분 안에 오면 되겠다 싶어서 그냥 지나왔다.


한가로운 수비리, 거리에 차가 많지 않다.


햇살이 만만해져서 인지,
사람들이 거리에 넘쳤다.
비수기네 마네 해도 
순례자들이 많이 보이니 
뿌듯했다.


슈퍼에서 구경을 한참 했다. 배낭만 아니라면 잔뜩 들어 올려서 이거 다 주시오,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진정해야 했다. 물가가 이렇게 싸다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비싼 물가에 있는지, 와보기 전에는 체감할 수 없었다. 그간 우리보다 잘 살지 못하는 나라에서 물가 낮은 것을 보고 경제 수준이 낮아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유럽 물가를 보니, 노동은 고급화, 물가는 저렴! 살기 좋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싶었다. 물론 복지를 위해 세금도 많이 떼 간다고 하는데,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물가가 싸면 사람들이 더 여유 있겠다 싶었다. 동네를 기웃거리다 보니, 식사 시간이 다 되었다. 서둘러 걸어야 했다. 먹겠다는 신념으로 발바닥의 아픔까지 극복!




야호! 신나는 저녁 식사 시간이다.


아, 뭐야, 자리가 없었다. 저녁 식사 시간만 기다린 사람들처럼 이 많은 사람들이 두 줄의 테이블에 꽉 찼다. 오리손 꼴이다. 로만손 일행들과는 테이블까지 달맀다. 마마드와 아란은 물론 로만손까지 나를 보는 눈빛이 시큰둥해졌다. 아무래도 내가 의도적으로 자기들을 피하는 거라고 결론 내린 듯했다. 그전부터 내가 의도적으로 자리를 안 맡았다고 여기는 것 같았지만 해명의 기회가 없었다. 그쪽 테이블은 평균 연령이 높아 보였다. 꼰대 여인도 있는 걸로 봐서! 시골 이장님처럼 거기서는 로만손이 제일 젊은이다. 로만손이 고생이 많다. 로만손이 순례길에서 노인들을 잘 보좌하며 갈지 걱정이 됐다. 이미 피곤한 기가 역력했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다.
이 밤이 지나면 다시는 못 볼 거라는 느낌!


나는 로만손 일행을 바라볼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등진 자리에 앉아 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눠야 했다. 내 옆은 아까 내 침대 아래층에 있었던 거구의 여인! 그녀는 여전히 순진한 표정이었다. 나이는 나랑 비슷할까? 잉카라는 이름의 미국 여인! 유럽 사람들과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나는 이번에 유럽 사람들을 겪어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미국 사람들의 스타일에 익숙해져 왔는지 깨달았다. 밉네 싫네 해도, 미국식 영향을 받으며 살아온 시간이 오래인 것이다. 어느새 미국 마인드로 미국 시각으로 유럽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유럽의 낮잠 시간과 느린 행보들이 여유로워 보이지 않고 비합리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잉카와는 조금 허물없이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음식에 대해서 신나 하는 공통점 때문인지?



저녁 식사 전에 오리손처럼 짧지만 서로의 소개가 이어졌다. 어쩌다 보니 나는 부자들(?) 사이에 끼어 앉게 되었다. 늦어서 선택할 수 없는 자리였다. 한국 친구들도 테이블 저 끝에 앉아있고, 독일인 부자와 한국인 부자! 잉카와 나, 남녀 커플! 그 정도였다. 옆에 있는 잉카가 그나마 말 벗이 되어 주었다. 그녀도 혼자 순례 중이라고 했다. 딱히 정다운 눈빛으로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격의 없이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 정도는 됐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주인장의 설명이 곁들여졌다. 호텔인 줄? 모두 만족해하며 고마움을 담은 박수가 이어졌다. 음식을 먹으며 맛있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나의 리액션도 훌륭했다. 미국 잉카와 함께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흔들며 오 마이 갓! 을 쉴 새 없이 외쳤으니!


음식은 정말 훌륭했다.
주인장이 직접 준비한 듯했다.
정성껏 마련한 티가 났다.
어디서든 정성이 든 음식은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다.
먹는 사람의 기분도 좋게 한다


아버지와 아들, 부자들이 여행을 다닌다는 건 남자들의 로망일 것이다. 엄마와 딸, 모녀들의 여행 또한 어느 나라든 부러움을 샀다. 젊은 친구들은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고, 나이 먹은 사람들은 딸들을 생각한다. 나는 나이를 먹고도 부모님을 생각하고 있으니! 어쨌든 부러운 건 부러운 거지!


어쩌다 얘기 중에 시국 얘기가 나왔다. 아무래도 독일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점일까. 독일 부자와 한국 부자들이 섞여서 얘기를 나누는 중에 한국 아버지의 견해가 나랑 조금 달랐다. 사실 개인이 하는 여행에서 개인끼리 나누는 대화에 어떤 얘기를 한들 문제 될 건 없다. 다만, 적어도 내 나라에 대한 얘기는 조금 객관적일 필요가 있었다. 지금의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들? 정치인이 혐오스럽다 한들! 내 정치 성향과 조금 다르더라도, 그에 맞는 얘기들을 해줘야 되지 않을까? 나 또한 촛불집회 당시 그 당위성과 함께 반대하는 이들의 배경과 입장도 이런 게 있다고 알려왔다. 그들에 성조기는 왜 들었나 하는 설명들 말이다. 내가 동조하지 않지만 그들의 주장도 알려줄 필요는 있다 싶은 것들이다. 역사적 배경 속에서 빨갛네 노랗네 물감을 뿌려대 왔던 우리나라의 상황들을 조금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 더군다나 까미노에서 역사적 견해에 따라 서로 나뉠 일도 아니니 말이다. 종교가 달라도 문제없는 이 순례길에서 굳이 정치적 성향으로 충돌할 이유가 뭐가 있나? 백날 얘기해도 좁혀지지 않을 거리라면 유지만 잘하자. 괜히 돌 던지지 말고! 특히 외국인과 대화할 때 내 나라 얘기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독일 부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독일 아들이 문득 내게 질문을 던졌다. 웅성 거리는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다시 물어봐 달라고 하자 독일 아버지가 아들을 툭 치면서 눈치를 줬다.

"시국 관련된 이야기는 조심해서 해야 한다."

우리나라 남북한 교류에 관한 이야기인가? 북한 어쩌고 한 것 같은데? 이들도 역사적으로 민감한 나라에서 살았으니 눈치가 빤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아들을 조심시키는 게 낯설지 않았다. 상대 나라에 대한 배려이든, 자기들 몸 사리는 습성이든,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 독일 부자와 함께 나 또한 적당히 화제 전환에 동참했다.


아버지와 걸어서 좋다는 한국 아들이 발이 아프다고 했다. 피레네에서 무리해서 오래 걸은 게 화근이라고 했다. 발에 대한 이슈는 젊거나 늙거나, 처음 걸었거나 여러 번 걸었거나, 운동을 많이 했든 아니든,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다 똑같다. 발바닥의 고통을 알기에 그의 아픔도 공감할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심각한 듯했다. 내일 천천히 걸어봐야 알겠지만, 어쩔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즐거운 저녁 식사가 끝났다.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준 주인장과 격의 없이 얘기를 나눠준 순례자들 모두 고마웠다. 함께 앉아서 리액션을 담당했던 잉카와도 많이 친해졌다. 저녁식사 13유로는, 그 이상의 진한 감동을 주었다. 이런 자리를 로만손 일행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은 오랫동안 후회로 남았다. 로만손 고마워요. 까미노 추억을 남겨줘서!



무엇이 중요한가?

순례길에서는

저마다 인생에서

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그 삶의 모토가 그대로 적용된다.
답은 없다.
그저,
짧은 시간 속에

이러저러한 경우를 접하면서
자신의 삶을

점검하게 된다.  
다각적 시선에 노출된
다각적 삶이
재미로 다가온다.




<알아두면 좋아요>

초반에는 적응을 위해 사설 알베르게를 많이 이용한다. 순례에 익숙해진 얼마 후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공립 알베르게를 이용한다. 아침과 저녁 식사의 기준도 거기에 맞춰진다. 아침식사는 다음 마을까지 해결할  있기에 너무 일찍 나서지 않는다. 일찍 나서려면 카페나 바가   시간까지 허기를 달랠 비상식량 정도 마련하면 좋다. 배낭에는 항상 먹을  있는 간식들이 있다. 점심 때도 먹고, 마을이 나오지 않을 경우, 아침에도 먹게 된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너무 일찍 아침을 시작하지 않는  좋다. 대부분 8 전에 떠나야 알베르게에서 약속하듯 7시에 8 사이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이 너무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는 불평들을 가끔 듣게 된다.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나간다고 해도, 휴대폰 불빛과 침낭 접는 소리, 배낭을 챙겨서 문밖으로 나가는 소리들은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자극이 된다. 기절각으로 자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에 배려가 필요하다.

일찍 출발해서 다음 코스에 좋은 침대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둠 속에서 놓치는 풍경들을 생각하면 조금 아깝다. 땡볕 전에 도착할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서 출발 시간은 조금 일찍 잡되 숙면을 취하는 너무 이른 새벽은 삼가면 좋을 듯하다. 그것도 공존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수비리에 가면>

수비리는 ‘다리의 마을’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예전부터 강을 중심으로 살던 사람들이 많은 다리를 놓고 살았을 것으로 추측!

수비리는 숲은 물론 깨끗한 수질의 강과 연못을 자랑한다. 송어 낚시의 즐거움이 있는 곳!

미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볼만한 박물관도 있다.

스페인의 위대한 철학자 하비에르 수비리 탄생지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정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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