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 생장 피에드포르(St Jean Pied de Port)
순례 첫날부터 뒤숭숭한 꿈을 꿨다.
얼마 전 스스로 세상을 떠난 친척이 꿈에 나타났다. 기도를 해달라는 것인지, 아침부터 어수선했다.
아침 일찍 숙소 주인장이 나를 불렀다.
"수, 당신을 찾아온 사람이 있어요. 아래에서 기다린대요."
누굴까? 나는 눈곱도 안 떼고 부랴부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어제 헤어진 중년 부인이었다.
예전에야 중년 나이를 40대~50대로 보았지만 지금은 65세~80세가 중년이라 한다. 자신의 나이를 60이 훨씬 넘었다는 중년 부인은 그래서 중년이 얼추 맞지 싶었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편하다. 그래야 별 실수가 없다. 중년 부인을 P선생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분은 왜 이른 아침부터 내 숙소로 왔을까? 그것도 완전 무장 상태로? 나는 아직 씻지도, 아침을 먹지도 않았는데! 함께 떠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사연은 이랬다.
어제 공립에 사람이 가득 차서 사무실로 가서 숙소를 추천받았는데, 안 좋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첫날부터 숙소 주인장이랑 싸우고 나왔다고 했다. 본인 기분이 엉망인 건 알겠지만, 다른 사람 기분까지 망칠 필요가 있나? 이분은 지금 남을 배려할 여력이 없을지 모르겠다. 머리가 아팠다. 어제 여기서 함께 묵어도 됐는데, 왜 굳이 공립을 가겠다고 나선 건지! 자신이 원하는 누군가를 찾아 나선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어쩌면 그게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여겼는지 모르겠다.
나의 숙소 주인장은 참 좋은 사람 같았다.
p선생님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있게 하다가, 나중에는 아침식사를 안 했으면 같이 먹어도 좋다고 했다. 첫 순례길부터 힘든 일을 겪는 것에 연민을 가진 눈빛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기운이 빠졌다. 그 숙소에서 겪은 일을 내내 내게 쏟아붓고 있었다. 화가 났다. 나도 나지만, 이 작은 숙소가 떠나가라 얘기를 하는 통에 다른 순례자들의 첫 시작까지 망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나는 조용히 부탁했다.
"목소리 좀 낮춰주세요. 여기 숙소에는 저만 있는 게 아니니까, 아침을 드실 건가요? 저는 아침을 먹고 갈 겁니다. 피레네를 넘어야 하잖아요. 제가 식사하는 동안 기다리실 건가요? 아니면 먼저 걸어가고 계셔도 되고요."
p선생님은 숙소에서 나오기 전에 조금 먹었다며 자리에서 빵과 차를 먹겠다고 했다. 주인장이 이미 가져다준 모양이다.
아침을 먹는 내내 기분이 가라앉았다. 다른 순례자들과 얘기를 나눌 마음의 여유도 생기지 않았다. 피레네를 넘어야 하는 날인만큼 부담도 컸다. 잠도 푹 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대충 먹고 짐을 챙기러 올라갔다.
큰 배낭은 동키로 보내기로 했다.
순례자 사무실 근처에 있는 동키 사무실에 미리 신청해두었다. 8시까지 숙소 입구에 두면 된다고 했다. 각 숙소마다 들러서 가져가는 모양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갈 때는 많은 순례자들이 동키를 이용한다. 옛날에는 당나귀로 짐을 실어다 주었나 보다. 지금은 짐차가 실어다 준다. 값은 8유로였다. 거리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나지만, 대부분 5유로인데, 이 구간은 비싸다고 했다. 비수기에는 동키가 없기도 하고 있어도 비싸진다고 한다.
첫날 피레네를 넘는 일은 고된 일이라고 했다. 첫날인데, 순례 구간 중에 제일 높고 길고 힘든 구간인 것이다. 론세스바예스까지 25킬로, 평균 20킬로도 처음에는 힘들어서 나눠서 걷어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산중으로 가는 길은 실제 거리보다 더 길고 힘들다. 순례자들은 산중 오리 손에서 1박을 하고 싶어 한다. 미리 메일로 예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쉽지 않다. 성수기 때는 몇 개월 전부터 밀려 있고, 비수기 때는 확인 조차 안 하는 듯하다. 나 역시 미리 메일은 보낸 상태였지만, 떠나는 날까지 답장은커녕 읽지도 않은 상태였다. 별이 아름다운 곳이라더니,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 일단 포기하고 다음 마을까지 걷기로 각오했다. 어쨌든 첫날은 무리가 될 것이다. 산을 넘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남들도 가는 길이니, 나라고 못 갈 게 뭐가 있나. 다만, 더 일찍 서둘러야 했는데 늦은 감이 있었다.
생장 피에 드 포르는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힌다. 문화유산, 음식, 축제, 경관들이 순례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도시라고 한다. 과연 그런 듯하다. 보는 것 만으로 치유가 되는 마을이다. 본격적인 순례를 시작하기 전에 영혼의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다. 떠나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이제 진짜 순례길의 시작이다.
순례자들이 머물던 마을을 조금 벗어나면 아랫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구간이 나온다. 그곳에 횡단보도가 있다. 이제 산 쪽으로 들어가는 길과 연결될 것이다. 앞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가파른 언덕길이다. 피레네 산으로 올라가는 구간이라 그렇겠지만, 아직은 동네인데, 벌써부터 가파르다. 아침부터 기운이 달린다. 걸음 속도가 현저히 늦어진다. P선생님은 자신이 평소 하던 호흡법 때문에 걸음이 빠르다고 한다. 혼자 먼저 가도 되는데, 쭉 앞서 걷다가 나를 기다리는 식이다. 부담스러웠다. 40대 말, 아직은 그래도 40대 이거늘! 이 저질 체력은 60대를 못 쫒아가고 있다.
드디어 뜨문뜨문 있는 집들을 지나면 한적한 평지 구간이 나온다.
평지가 계속 펼쳐질 리 없겠지. 이게 곧 푸른 초원에 둘러쳐진 오르막 구간이 나온다. 지그재그 언덕을 올라가기 위해 머리를 땅에 박고 허리 굽혀 올라가야 한다. 숨을 헐떡이며 걷다가 허리 펴며 주변을 둘러보면 저절로 나오게 되는 탄성!
"우와~! 멋있다. 이 맛에 길을 걷는구나!"
풍경의 힘으로 다시 불끈 일어서 걷게 된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 구간이 시작된다.
부엔 까미노!
좋은 순례길이 되시길!
천천히 걷는 나를 지나치며 순례자들이 '부엔 까미노'를 외친다. 부엔 까미노에는 좋은 길이라는 말만 담긴 건 아니었다. 지나치면서 표정과 말투와 상태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었다. 서로 "부엔 까미노!"라고 외치면 '안녕하세요.' '힘내세요.' 반가워요.' 같은 의미도 담았지만, 상황에 따라 '해내자!' '힘들지만 끝까지 가는 거야!' 같은 뉘앙스도 담긴다.
나를 보며 빙그레 웃는 남자, 눈빛이 선했다.
누가 봐도 느리고 느리게 스틱을 짚으려 걷고 있는 내 모습을 응원하는 남자! 부엔 까미노를 외치며 내게 힘내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나는 멋쩍어하며 고마움과 반가운 마음으로 역시 부엔 까미노를 외친다. 그가 시익 웃으며 천천히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혼자가 아니었다. 일행이 줄지어 가며 역시 인사를 건넸다.
"천천히 걸어와요!"
그렇지 않아도 기어가고 있는 내게 그런 주문을 하다니! 아예 자고 오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P선생님은 앞서 걷다가 나를 기다리는 듯 멈춰 있었다. 선한 눈빛 남자 그룹이 다가갔을 때 말을 걸었다. 모르긴 해도 선한 눈빛 남자는 아직 결혼을 안 했거나, 했어도 혼자인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곁에는 장난기 많아 보이는 노인과 조금 까칠해 보이는 노인이 있었다. 그들은 트리오였다.
P선생님은 나를 기다린 건지, 그 트리오를 기다린 건지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들과 걸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늦어서인지, 순례자들을 많이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사람이 귀해서 그러가보다 싶었다.
사실 홀로 천천히 걷고 싶었다. 아까부터 자기가 묵었던 숙소에서 싸웠던 이야기를 쉬지 않고 해대서 대꾸하는데 지쳤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길, 더 힘들었다.
이리저리 달래도 소용없었다. 계속 반복이었다. 나와 이야기하는 사람은 허깨비였다. 머릿속에서 같은 구간을 계속 무한 반복 재생 중이었다. 자기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상태의 사람!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다.
"많이 속상하셨겠네요. 그냥 잊어버리세요.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거예요. 이 멋진 풍경을 보면서 위로받으세요."
이 정도면 알아차릴 줄 알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끊임없이 계속, 계속, 계속, 해댔다. 사돈의 팔촌 얘기까지 끌어와서 쉬지 않고 했다. 도대체 왜 이 멋진 피레네에서 과거에 있었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로 떡을 쳐야 하는 것인지! 왜 멀찍이 가지도 않고 딱 붙어서 그러는 건지! 나중에는 귀를 막고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수준으로 멈춰서 대꾸 없이 멋진 풍광만 내려다보았다. 기껏 와서 몇 초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하고 가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정말 눈치가 없는 것일까? 멈춰 서서 대꾸 없으면 이제 자중 모드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었는데, 적당한 곳에 서서 자기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한다.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 참에 나도 찍어달라고 했다. 앞으로 전신샷이 귀할 테니 말이다. 피레네에서 전신샷은 더더욱! 그런데 오르막에서 찍어서 참 볼품없이 나왔다. 다시 태어나야 바꿀 수 있는 샷을 말하는 게 아니다. 최소한 애정이 담겨야 피사체도 잘 나온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분은 자기애만 넘치나 싶었다. 하지만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은 이렇게 아프지 않다. 이분은 어디선가 상처를 받고 치유 없이 그저 억지로 자기를 끌고 왔을 것이다. 절대 지지 않아, 그 마음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차라리 아프지, 차라리 울지, 차라리 엎어지지! 그 시간들을 겪고 나면 결국 털고 일어날 힘도 생겼을 텐데! 누르고 회피하면 언젠가 시간의 벽을 뚫고 무의식에 쌓인 이상한 것들이 떡하니 나타날 텐데!
사진 속 나는 많이 지쳐 보였다.
멋진 풍광 앞에 특유의 하회탈 미소를 꺼내지 못했다.
P선생님이 또다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한숨을 쉬었다. 지겨웠다. 제발 그만 떠드세요. 소리치고 싶었다. 앞서 가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헥헥 거리는 내 앞에 몇 걸음 앞서 걸으며 계속 얘기를 했다. 지치지도 않았다. 저 기운이 어디에서 오는지! 평소 단련된 몸이라면 정신수양도 하시지! 왜 자기 문제를 그토록 타인에게 털어대려고 하는지! 왜 내게 붙어서 이러시는지!
나를 살폈다. 내 어떤 에너지가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들고 있을까. 왜 평화의 길에 이 사람이 방해를 할까. 기도하며 오르고 싶은 이 길에 왜 자꾸 분심을 주는 존재에 시달려야 할까.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옵니다. 내가 밀어내고 있으니 더 달라붙는 게 아닐까. 내가 이 분을 통해서 뭘 들여다봐야 할까? 내 무의식에서 끄집어내야 할 이야기가 무엇일까?
나는 고요를 택했다.
더 이상 들으려고 애쓰지 않고 걸었다. 어쩐 일로 잠잠해진다. 내가 노골적으로 자신을 피하는 걸 알아서인지. 처음으로 조용했다. 이제 산만 넘으면 안녕하리라. 어제 그 처자들이 왜 도망쳤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반복된 상황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안 되는 상태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함께 걷는 동안만이라도 잘 대해야지 싶었다.
늘 꿈꾸던 풍광들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어디 쉴 구간도 없다. 앉을 만한 구간은 나무 아래 한 두 군데 정도였다. 그나마도 풀이 젖어서 앉을 곳이 없었다. 열심히 헥헥 거리며 오르다가 발아래 풍광 좋은 곳에 서서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다가 다시 걸어간다. 내 호흡소리만 들어도 이 길이 얼마나 힘겨운 길인지 알 수 있다. 다른 사람 숨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 그들은 수월하게 오르는 듯했다. 날이 조금 흐리다.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지 않았지만 좋은 날이 아닌 건 분명했다. 힘들긴 해도 푸른 언덕이 펼쳐진 이 길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