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한 그루

by 서쨍

사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뭔가 풀리는 것 같다가도, 반대로 꼭 풀리지 않는 숙제들이 있었다.

이만하면 잘 사는 거지 싶다가도 왜 이렇게밖에 못 살지 하는 생각의 반복.


그냥 살다 보니까 세상엔 내 뜻대로 다 되는 게 아니더라.

노력이라는 것도 결국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내가 이만큼 착하게 잘 산다고 해서 그 뜻을 갸륵하게 여겨 세상 사는 일이 쉬운 것도 아니더라.

무엇보다도 그냥 나라는 존재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더라.


그냥 요새 드는 생각은,

삶은 생각보다 자연과 닮았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자연 이야기를 하느라 터무니없겠지만,

그냥 내 삶이 하나의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숲 속에 자리하나 차지하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내 인생이라고 해보자. 내가 있는 이 숲에 태어날 생각도 없었는데, 그냥 자라났다. 자라나고 보니 바람도 불고, 어떤 날은 해가 쨍쨍해서 파릇파릇하다.

어떤 날은 폭풍우가 쏟아져서 거의 뽑힐 듯이 죽을 고비를 넘기는 날도 있다. 열심히 자라다 보니 적어도 사과 하나는 만들어낼 줄 알았더니, 막상 다 크고 보니 별거 없는 저 숲 속 거들떠 안 보는 나무 한 그루다.

그걸 깨닫고 보니 어찌어찌 이 숲에서 살아남기는 수월하다 싶지만, 마음 한편에는 아쉽고 아쉽다. 사과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가치한 존재 같아서.

그래도 뿌리는 박혀뒀으니 뽑히기 전까지는 이 숲에 온전히 살아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광합성이 되고, 오며 가며 지나는 다른 것 하고도 같이 산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내 인생도 숲에 자라났는지도 모르는 나무 한 그루라고 생각하면 인생이 이래서 그렇구나 싶어진다.

어릴 땐 적어도 내가 특별한 존재니 이렇게 고생하나, 이렇게 고생하다 보면 좋은 날이 있겠지. 그런 마음이었다.

지금은 고생을 하면 그냥 그런 마음이 든다.

아, 지금은 그냥 숲 속에 비가 내리는 날이구나.

어떻게 하면 빨리 비가 그칠까. 어떻게 해야 덜 맞을까. 뭐든 그냥 지나가라. 짜증 나니깐. 아직까진 짜증은 난다. 아마 앞으로 계속 그럴지도.

반대로 햇빛이 좀 드는 것 같으면, 이것도 적당히 있다가 지나가겠지. 비 오기 전에 햇빛 좀 실컷 누려야지 한다. 그래서 마음껏 누리지도 못한다. 어차피 사라질 거라는 생각에.


내 인생이 그냥 이렇게 숲에 핀 나무 한 그루라면

인생이 보인다.

그저 그런 존재 같지만, 그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가끔 드는 햇빛에 겨우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힘들고 고생스러운 것에 대해 신이 나를 버렸느니, 나는 선택받지 못한 불행한 존재라느니, 남들은 이렇게 안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드냐느니.

그런 불평불만 가질 거 하나 없다.


그냥 나는 저 드넓은 대지의 자연 위에 핀 하나의 나무 한 그루인 것이다.


갑자기 눈이 오고, 바람이 불다가, 아침이 지나 낮이 되어 어이없이 비추는 따뜻한 볕이 당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다가 또다시 추워지면, 그 또한 당연한 것이다.


말은 그렇다.

근데,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살아내는 것은 너무나 다른 차원의 문제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오래 걸린다.

조금씩 이해하고, 그만큼 살아낸다.


지금의 내가 이해한 만큼, 나라는 존재가 그다지 크지 않으며, 내 삶이 그렇게 특별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만큼, 삶이 쉽고 단순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불행하고, 행복하고, 괜찮아지고, 평온해지다가도 다시 불 같아지는. 반복되는 삶이 짜증 나고 싫지만.


그냥 그게 사는 것이라면

그 모든 것들이 그냥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일어나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것들이라면

억울하긴 해도 내 잘못은 아니니까. 좋아도 내가 잘해서만은 아닌 거니까.

그럼 적당히 슬퍼하고, 적당히 기뻐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사는 게 무가치한 것도 같다. 그냥 왜 사는데.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데. 마냥 가만히 당하고만 사는 게 사는 건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질문할 수밖에 없다.


그럼 또다시 자연 속나무 한 그루를 떠올리는 것이다.

비 올 때 나무는 어쩌지?

그냥 맞지 뭐. 맞다가 무거우면 나뭇가지 좀 부러져도 다시 자라니깐. 그래도 뿌리는 단단하니까. 비도 어차피 곧 그칠 테고. 영원히 내리는 비도 없고.


그냥 터득하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나 법도를.


나는 지금 이만치 깨달았으니,

그만큼 편하진 않은가 보다.

아닌가. 이 정도 깨달았으면 괜찮은 건가.


거두절미하고,

오래 살아보고, 많이 공부한 사람들이

결국 말하는 결론이 뭔지 아는가?

나도 책으로만 봐서 아직은 다 못 깨달았지만,

그냥 단순하게

복잡하지 않게

무엇이든 사랑하라고 말한다.

단순하게, 사랑하면서 살라고.


아마도 나는 이 답을 알아내고

이 답처럼 살아내는 연습을 앞으로 해야 할 테다.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서

그게 진짜 맞았다 할 날이 오려나.

그럼 좋겠다.

그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광활한 숲 속 구석에서 자란 나무 한 그루여도 보람되게 죽을 것 같다.


아, 내일은 또 어쩌려나.

내일을 버티려면 자러 가야지.

오늘따라 참 짧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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