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청춘도 아니건만, 오른쪽 볼에 여드름이 덕지덕지 올라왔다. 환절기 비염이 도진 탓이다.
문득 얼굴에 여드름이 난 걸 보며 생각했다.
진짜 인생 힘들 때는 이 여드름들 조차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원흉이 될 거라고.
마음이 힘들고, 몸이 힘들고, 무언가 힘이 들면 작고 사소한 일에도 버티기 어려워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사고의 흐름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볼에 여드름이 잔뜩 났다 -> 생각해 보니 내 인생에선 피부가 좋았던 적이 별로 없다 -> 나는 가진 것도 없는데 피부도 못 가졌다 -> 피부 외에 내가 가지지 못한 다양한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 내 삶은 불행으로 가득 찼다 -> 내 인생 망했다. 진짜 우울하네.
부정적인 생각의 꼬리는 ‘모두’, ‘절대’ 등과 같은 양극단의 결괏값으로만 삶을 평가하게 만든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없는 정말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이 여드름에 내가 좌절할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지는 선택하면 된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감정 없는 ai가 아니어서, 감정이 날뛰거나 우울한 날에는 부정의 흐름으로 흘러갈 확률이 높다.
실제로 삶은 긍정보단 부정이 쉬우니까.
부정에 잠식된 날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여드름 하나에, 내 인생 망했네가 된다.
나는 여드름을 ‘부정적 인생의 발작버튼’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 인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작거나, 때론 큰 시발점들.
내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면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발작버튼들이 꽤나 많아진다.
굳이 발작버튼이 아니더라도, 가만히 살고만 있어도, 이 지구상의 생존자라는 이유만으로 예기치 못할 문제들을 겪어야 한다.
저 드넓은 대지의 자연 속, 그저 피었다 지는 꽃 한 송이마저도 갑자기 닥치는 빗줄기를 감당해야 할 순간이 오는 것처럼.
통제하지 못할, 당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흐름 속에서 갑자기 닥친 불행은 대비조차 못한다. 닥치면 그냥 닥치는 대로 맞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상태’이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부정할 것인가, 자연스레 흘려보낼 것인가.
그래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 내 마음의 상태 말이다.
이를테면 오늘 내 얼굴에 난 여드름조차 짜증 나고, 속상하고 버거워질 때도 있다. 어떤 날은 내가 괜찮아서 얼굴에 난 여드름을 기어코 진물이 날 때까지 짜서 없애버릴 수도 있다. 똑같은 상황도,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정말 크고 버겁거나, 별것 아닌 것처럼도 느껴진다.
오늘 내가 좀 예민하다 싶으면, 알아주면 된다. ‘아, 오늘 내가 예민하구나.’
정말 견디기 힘들면, 잠을 자면 된다. 자고 일어나서 몸이라도 적정한 상태로 회복해 내는 것이다.
사실 정말 힘들 땐 아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부정적 발작버튼이 도처에 깔려있으니 말이다.
이때 피해야 할 것은 양극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 나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어 ‘, ’ 내 인생은 늘 불행해.‘, ’ 내가 그렇지 뭐.‘
당신의 부정적 버튼이 아무리 부정의 길로 끌어당길지라도, 기어코 힘을 내어 부정을 부정해내야 한다.
‘나는 항상 불행하지 않았어.’,‘이번은 실수를 했지만, 늘 그렇지는 않아.’
부정을 부정하는 일도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계속 키워내야만 한다.
다시 여드름으로 이야기를 마쳐보려 한다.
볼에 여드름이 잔뜩 났다 -> 진짜 짜증 나네. 여드름 따위가 내 기분을 망치다니. 더 열받아.
최근의 내 상태이다. 아마도 나는 부정보다 화를 다스려야 할 시기인가 보다.
삶은 원래 훈련의 연속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