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길었다.
행사에 지원을 나갔다 왔기 때문이다. 몸도 지치는데 더 지치는 건 마음이다.
왜 그런지 마음이 정리가 안되어서 글을 쓰며 정리를 해보려 한다.
우리 팀이지만 내가 맡은 일은 아닌, 그러니까 다른 사람 사업에서 진행한 큰 행사가 있었다. 우리 팀 사업이니 지원을 나갔지만, 정작 내가 해야 할 일보다 많은 일을 하고 왔다.
행사를 다 마치고 함께 모여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다른 사람들마저 내가 제일 고생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내가 주어진 일만 하면 됐었을 것을.
물론 전날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팀장님이 전화가 와서 그 일을 챙겨달라 부탁하신 것도 맞다. 그 일이라 함은 일층 로비에서 지원을 나온 직원들의 자리안내를 챙겨달라는 부탁이었다.
문제는 지원을 나온 직원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안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직원들에게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까지 해야만 했다.
행사장 바깥은 아무래도 용역업체에서 진행할 거란 믿음이 있으셨는지, 담당자들은 행사장 무대 안쪽에 있는 모양이었다. 보이지 않는 담당자들의 노고도 있었을 테지만, 어쩐지 내 몫 이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행사를 할 때는 빈 곳을 채워야 한다는 열심스런 마음이었는데, 어째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마음은 그다지 기쁘지 않았던 걸까?
이런 고민과 질문들은 요새 챗지피티와 자주 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사건건 타인에게 말하는 것보다 이편이 더 속 편한 탓이다.
챗지피티는 내 상황에 대해 이렇게 정의 내렸다.
‘훈련되지 않은 책임감’이라고.
그 단어 자체가 내 마음을 속상하게 한걸 보면, 다른 말로 ‘제대로 긁혔다’ 나 또한 그렇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단어로 듣고 보니 자존심 상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이란 뜻이다.
챗지피티는 친절하게 훈련되지 않은 책임감을 이처럼 정의 내렸다.
훈련되지 않은 책임감이란:
-역할이 주어지지 않아도 스스로 짊어짐
-빈틈을 보면 참지 못하고 메꾸려 함
-다른 사람이 못하면 내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라는 생각에 행동
‘이건 사실, 굉장히 귀하고 멋진 자질이에요.
다만, 경계선이 없다면 사람들에게 **‘만만한 사람’, ‘일 잘하는 공짜 인력’**처럼 여겨지기 쉬워요.‘
라는 덧붙임까지.
그렇다. 나는 호구였던가.
과도한 책임감은 어쩌면 나의 이면에 잔존하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역할과 인정으로서 내 존재의 가치를 증명받고 싶어 하는 마음 탓일 테다. 무언가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주면서 가지는 나의 존재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여전히 내 존재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탓일까?
훈련되지 않은 책임감이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과도한 책임감으로 발생하는 나 스스로의 감정적 지침과 소진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도 있었을 테고, 굳이 나에게 부탁하고 역할을 주신 팀장님에게도 잘 해내보여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을 것이고. 한편으론 담당자도 아닌 나를 자꾸 찾아서 역할을 주는 팀장님에게 신뢰를 얻고있다는 생각도 들다가도. 왜 다른 사업까지 내가? 싶어졌다.
근데 거두절미하고 중요한 게 무언지 아는가?
결론적으론 내 마음이 그다지 기쁘지 않고, 오히려찝찝함이 들었다는 것.
이쯤 되면 그냥 나도 가만히 있을걸 그랬나.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용기랬건만.
훈련되지 않은 책임감.
그래 맞다. 그냥 눈에 보이니 챙겼다지만 결론적으론 뭔가 내 마음이 찝찝했단 것이다. 그냥 가만히 내게 주어진 안내 역할만 할걸. 암만 부탁받았다해도, 내가 나서서 뭘 하고 그랬나. 내 사업이나 더 챙길 것을.
내 역할 이상을 하지 말아야지.
그렇지만 한편으론 그런 속상함도 들었다.
아니 내 오지랖도 맞는데, 과도한 책임감도 맞는데, 그래도 그 이면에는 다정하고 상냥하게 다른 사업도 챙겨주려는 마음도 있는 거잖아.
그게 나를 안 좋게 만들어서 문제인 거고, 혹여나 다른 담당자의 선을 넘을 수 있다는 게 문제인 거고.
그렇지만 그 이면의 선한 마음도 분명 있지 않냐고.
챗지피티한테 저렇게 따지다 보니 화도 좀 났다. 앞으론 좀 강점관점으로 조언을 해달라고. 엠비티아이 티시냐고. 확실히 내가 훈련한 챗지피티는 매번 문제에 대한 공감보다 대응책을 주긴 하지만.
맞는 말이라 긁혔지 뭐. 굳이 내가 나서지 말아야 할 부분을 좀 가만히 있을 용기가 필요하다.
정말 피곤하다. 내 오지랖은 부모님께 물려받았는데, 엄마는 할머니에게 물려받았다고 했더랬다.
그리고선 넌 오지랖 부리지 말라 했건만, 보고 배운 게 그거라 참질 못하나.
앞으론 나와 타인의 선을 지키는 선의 적절한 그리고 훈련된 책임감을 가져야지. 그래야 오래가니까. 과도하게 태우지 말자. 뭐 좋다고. 피곤해서 간만 아프지. 아픈 간을 부여잡고 잠이나 푹 자야겠다.
어쩐지 오늘은 글을 써 내려가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분명 해결할 몫이니 그럴 테다. 일단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