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나는 이 균형을 지키고자 주말에 옷을 샀다. 옷을 산 것과 균형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나는 나를 위한 소비가 필요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와, 돈을 벌기 위해 내가 무언가 필요한 것을 사는 단순한 소비가 아닌 의미적 소비 말이다.
몇 달 동안 회사에서 맡은 일로 인해 야근도 잦게 하고, 사람으로부터 스트레스도 많이 받다 보니 집이고 회사고 이래저래 회사와 일 생각이 많아졌다. 일을 하다 보면 위에서 들어오는 수많은 요구와, 아래에서 직접 실무를 뛰어야 하는 나를 포함한 실무진들과 함께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한다. 사업의 총괄자로서 나는 그 중간을 잘 찾아내어 균형을 이뤄낼 필요가 있다. 특히 사업을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책임감도 있지만, 같이 업무적 소통을 조율해야 하는 중간자적 입장에서 사람 때문에 지치는 것도 너무 크다.
보통은 회사에서 퇴근하면 일 생각을 하지 않고, 적절히 스트레스를 잘 관리할 줄 안다고 생각했건만. 요 근래 계속되는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스스로도 컨트롤되지 않는 상황과 감정이 속상했다. 왜 그럴까? 자문해 봐도 딱히 답은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두 단어가 떠올랐다.
“균형.”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왜 이 말이 떠올랐을까.
나는 일을 하다가 겪는 불균형에 몹시 괴로웠다. 다른 사람을 위한 책임감을 위하자니 나는 두 가지의 불균형을 갖게 되었다.
첫째는,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다 충족시키고 싶어 했다. 사소한 것 하나 요청하고 질문하는 윗사람들과, 윗선의 요청에 움직여야 하는 실무진들 사이에서 나는 그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어 했다. 지난주에는 윗선의 다소 과도한 요청에, 실무진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이게 맞아요? 우리는 그 사람들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닌데. 이럴 때 보면 현타가 좀 와요.‘
난 그 말에 아차 싶었다. 아, 나는 모두를 만족시키려다가 정작 중요한 본질적 의미와 가치를 놓쳤구나. 나는 사실 공공기관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공익을 위한 목적성 사업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사익이 아니라 공익. 요 근래 내가 중점을 두고 결정한 방식은 공익이 아니라 사익이었다. 부끄럽지만 그랬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나의 사익일 수도 있고, 공익을 목적으로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정치적 의견을 무시하지 못할 윗선의 과도한 요구에 순응했던 것이다. 그 일에 대해 그분의 한 마디가 말 그대로 뼈를 때렸달까.
첫 번째 불균형은 일을 하는 본질의 목적과 균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던 상황에 대해 발생한 불균형이었다. 앞으로 결정되는 요구에 대해, 판단의 기준은 하나가 되어야 하겠지. 그게 사익인지, 공익인지. 공익을 위함은 어떠한 것인지. 휘둘리지 않기 위한 스스로의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두 번째는, 내 삶과 일의 분리가 되지 않는 불균형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일 생각을 한다. 일터에서 내가 했던 행동, 부족했던 부분, 열받았던 거, 좋았던 거 그냥 상관없이 다 생각이 난다. 물론 지금 다니는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도적으로 해내야 하는 중압감이나 압박감이 꽤나 컸던 모양이다.
무언가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데,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자니, 그럴 힘도 없고. 무언가 감정을 환기할 만한 것이 필요했다. 얼마 전엔 빔프로젝트도 샀다. 자꾸 스트레스를 돈으로 풀면 안 되긴 하지만, 어쩐지 토요일에도 근무를 해야 하는 요즘의 상황에선 그나마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여행을 갔으련만.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어제는 퇴근 후 두 시간 반가량 요리도 했다. 냉장고가 꽉 차서 넣을 곳도 없을 지경의 광기였다. 진짜 내 삶에 좀 더 집중할 만한 좋은 것들을 채워놓을 필요가 있다. 돌아가선 운동도 할 참이다. 할 수 있는 일과 삶의 분리를 계속 찾아갈 수밖에.
애석하게도 사람을 만나도, 그 다지 일생각에 기쁘지 않고, 즐겁지 않아서 마냥 풀리는 기분은 아니더라. 6월 초 무리해서 떠난 삼척여행에 가서도 계속 나를 열받게 하는 과장님 이야기로 화만 났다. 진짜, 이러면 안 되는데. 사람에게 질리니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달까.
불균형의 균형을 찾기 위한 여러 가지의 일상적 노력들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결과적 균형을 이뤄내는 중요한 요소이건만.
어쩐지 이마저도 일 같다.
아, 균형을 찾아야지. 균형.
그래서 오늘 옷을 산 것이다.
슬프게도 일하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어서, 살이 점점 찌고 있다. 요새 옷은 왜 이렇게 조그맣게 나오는지, 물가가 올라서 천을 아끼려는 상술인 건지. 옷 고르다가 화가 날뻔했지만, 귀찮아서 몇 번이나 어플을 껐다 켰지만, 결국엔 옷을 사내 었다!
균형.
무언가 명쾌한 해답은 아닐 수 있겠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말이다. 그래야 길게, 오래가지. 그래. 균형 한번 어디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