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에 가는 길이다.
오래간만에 여행길에 나섰다. 나름 프리미엄버스라고 이래저래 좋은 게 많다.
먼 길을 갈 때 버스를 타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전환점과도 같은 기억들이다.
첫 기억은 이십 대 초반에 학교에서 집으로 오며 있던 기억이다.
게으른 고등학생으로서 그다지 좋은 대학교엔 가지 못했기에, 시외버스를 타고 대학교를 오갔다. 그때 당시에는 사람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었다. 지금도 스스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인데,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과 학생회장을 자원했었다. 그땐 멋모르고 하겠다고 덤볐다가 사람들의 질타나 훈계에 눈물을 쏟았다. 22살 어린 나이에 사람들 앞에 나서고 리드하는 게 힘들었다. 다시 하라면 죽어도 안 할 건데, 사실 그땐 그럴 능력도 없던 것 같다. 인정하긴 싫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늘 눈물바람이었다. 다른 사람 앞에선 울기도 싫었다. 그저 힘들다, 진짜 왜 이렇게 서럽냐 엉엉 울었다. 버스라 소리도 못 내고 그냥 소리 죽여 울었다. 대안책, 대응책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냥 힘들다. 힘들다 보면 생각은 부정적으로 빠지기 쉽다. 그땐 화도 못 냈다. 그냥 다 내 탓만 같았다. 노력해도 안될 것만 같았다. 그저 힘든 일은 힘들고 우울해서 나를 잠식시키는 것만 같았다.
생각해 보면 그땐 그 정도로 힘든 일이 아닌 것들에도 힘들었다. 친구관계가 중요한 중고등학생 때는 친구관계가 세상의 전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대학생이 되면서 좀 나아지려나 했건만. 또 다른 사회적 역할이 부여되고 앞날을 준비하면서 갖는 그때의 어려움이 있었다.
남들은 즐겁다 못해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십 대 초반이 나는 싫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그냥 천국이나 빨리 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땐 나에 대해서도, 나의 힘듦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 방법을 몰랐다.
두 번째의 기억은 네팔에서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단맛쓴맛 다 겪고 네팔에 갔다. 타지에서 가족도 친구도 없이 간 곳이었다. 일도 힘들고 사람도 힘들고 다 힘들었다. 비자문제 때문에 네팔에 있는 음악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도 먼 길을 오가며 버스를 탔다.
가던 길이고, 살던 일상이니 그러려니 하고 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날은 왜 이렇게 갑자기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났다. 그땐 그냥 마냥 힘들지 않았다. 이유를 알았다.
문득 나는 나 스스로를 무척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도 미숙해서 네팔생활이 쉽지 않았고, 일을 하기에도 제약이 많았다. 무엇보다 한국에서의 일이 힘들어 떠난 곳이지만, 한국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모든 걸 다 버리고 떠나왔어도 그곳에서 나를 제일 힘들게 한 건 나였다.
그냥 나는 나를 싫어하는구나. 매일 같이 붙어있어야 하는 나 스스로가 나를 싫어하는구나.
그 생각이 드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왜 이렇게 나를 싫어할까.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있던 일은 무수히도 많다. 나를 싫어하지 않기 위해 했던 노력들.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보았던 것 같다. 웃기지만 나는 디데이를 세기도 했다. 서른다섯 살. 서른다섯 살이 되기 전에도 이 지경의 삶이면 무언가 다른 선택을 해보자고. 물론 극단적인 선택은 아니다. 그저 또 다른 환경에 떠나보자는 결심이었다. 진짜 원하는 곳으로. 근데 지나고 나서 솔직히 말하자면, 우울의 한 끗으로 아마 그런 생각도 좀 했다. 그만큼 힘들었으니까.
나에게 친절한 것만큼 어려운 게 있을까.
나를 돌보고, 나를 칭찬해 주고, 고생했다 위로해 주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격려할 줄 아는 것. 그 방법을 지금은 터득한 것 같다. 물론 여전히 가끔은 나의 동굴에 갇혀 잠식되는 순간도 있다. 다행인 것은 그 순간이 오래지 않아 금방 나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삼척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또다시 암흑 같던 이십 대를 떠올리자니 심란해진다. 그 정도로 길고 힘들었던 시기를 버티니 서른 살 초중반의 지금이 더 편한 것일지도. 한편으론 잘 지나왔구나 라는 후련함도 든다.
방법을 모르며 마냥 힘들기만 했던 이십 대 초반.
힘들긴 하지만 이유는 알아챘던 이십 대 중반.
힘듦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다시 나를 알아가고, 부족함을 인정하며,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알게 된 이십 대 후반.
그리고 앞으로 더 가야 할 길에 넘어지더라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시 일으켜줄 수 있는 힘을 쌓아가는 서른 초중반 이 무렵까지.
살아보고, 겪으며 쌓은 것들은 결코 흩어지지 않는다. 흩어진 것들도 결국엔 모인다. 작고 작은 것들 일지라도 쌓여서 어느 순간 내 것이 된다.
내 것으로 남는 모든 삶의 경험과 지혜가, 오늘의 나와 다른 이들과 함께 다정한 하루를 살게 한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그러니까 삶을 ‘사는 일’이라고도 한다. 싫은 말이지만, 그 일들을 겪어낸 순간마다 보내는 시절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것도 같다.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