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 빚을 다 갚았다.
모종의 이유로 엄마의 빚을 갚고 있었다. 세상사 참 우습게도 언제 이 빚을 갚나 했는데. 몇 년 만에 열심히 아끼고 죽어라 모아서 다 갚았다.
퇴근길, 기다리지 못하고 집에 가는 길목에 서서, 휴대폰 어플로 남은 대출금을 갚았다. 어찌나 심장이 뛰던지. 대출 갚느라 수고했다는 은행 알림톡을 고이 캡처해 두었다.
아, 갚은 과정을 생각하면 울컥한다. 난생처음 내 이름으로 대출을 받았다. 내수중에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는 큰 돈을 말이다.
솔직히 미운 마음도 컸다. 남들은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차도 사고, 집도 사고 하는데. 나는 월급의 반이상을 빚을 갚았으니 쌓이는 게 없었다.
회사 때문에 거처를 옮기느라 전세대출을 받는데, 대출금 때문에 집도 구하지 못할 뻔했다. 월급에 비해 빚이 너무 많다는 이유였다.
은행마감시간에 늦을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는데, 엉엉 울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고 다닌 기억도 난다. 다행히 주거래 은행 천사님이 해주셨긴 하지만.
월급날이지만, 매달 나가는 대출금에 속상하기도 했다. 대출금 갚는 날이라며 뜨는 알람이 어찌나 야속하던지.
적은 월급으로 매일 도시락 싸가고, 눈 오는 날 자전거 타고 다니고, 비싼 광역버스 안 타겠다고 일반버스 기다리다가 회사 지각하고. 지지리 궁상과도 같던 순간도 파노라마처럼 생각난다. 주말이나 퇴근 후에는 채점알바도 했다. 일이 많아도 아픈 간을 부여잡고 또 일을 하는 심정이란.
그러고보니 참 열심히도 갚았네.
쓰다 보니 다 기억난다.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 딸로서 아픈 엄마가 돈을 벌지 못하는 순간에 해줄 수 있는 책임, 나 스스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죄책감에 살 거란 생각.
그냥 그 모든 순간이 다 지나갔다.
그냥 다 지나고 끝이 났다는 사실이 홀가분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내게 빚은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약간은 억지스럽기도 하고, 다 지났으니 기어코 또 다른 이면으로 살펴보자면 이런 이유들이 있다.
1. 엄마빚을 갚아야 해서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장으로 이직을 시도했다.
2. 시도했다고 말하는 것은, 직장사기 수준으로 전 직장과 급여가 크기 다르지 않았다. 일은 적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3. 머나먼 타지까지 왔건만 잘못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착잡했다. 몇 달 정도 방황하다가, 결국 직장을 선택해야 하는 중요순위가 돈이 아님을 깨달았다.
4. 나에게 중요한 직장은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5. 이직에 이직을 거쳐 현재 직장에서 나름대로 주체성 있게 의미 있는 일들을 하게 되었다.
6. 물론 완벽한 직장은 없으므로 5번의 의미를 충족한다는 것에 만족한다.
엄마의 빚이 나에게 또 다른 인생의 방법을 생각하게도 했다. 마냥 이렇게 살 순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니까.
가진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 이 문제를 해결해 보자 싶었다.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생각보다 내가 높다고 여겨졌던 선택들이 실제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방법도 는것 같다.
그 모든 시발점이 엄마의 빚이었으니, 생각보다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었을지도. 라며 다 지나고 나서야 의미를 부여해 본다.
거두절미하고, 나 스스로도 잘한 일은 제대로 칭찬해주자 싶기도하다. 그런 의미에서 언니와 친한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나 오늘 빚 다 갚았다고.
나름대로 자축의 의미로 평소 꿈꿔왔던 대출금 완납 파티도 해보았다. 집 근처 맛있는 식당에 가서 마제소바도 먹고, 감격에 젖어 인근 공원을 하염없이 걷다가 그 비싼 하겐다즈아이스크림 한통을 사 왔다.
치킨값만 한 아이스크림을 사며 오늘은 이 정도해도 된다고 신이 났다. 얼마나 좋았는지 난생처음 내 돈 주고 사본 하겐다즈 큰 통을 먹으며 자본의 쾌락을 즐겼달까.
아, 묵은 때가 내려간 기분이다. 지난 몇 년간 진짜 고생 많았다. 이제는 조금 더 편하게 살아도 되겠지.
라고 하지만 또 어디서 뒤통수 맞을지 모르는 게 세상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낼 힘이 많아져서 괜찮을 터이다. 그렇게 믿으며 살아야지 별수 있나.
고생했다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