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가 실시되기 하루 전날. 체는 미련스럽게 천 원짜리 책 열 권을 사 가지고 나를 만나러 왔다. 그리고는 너무 무거워서 다 가져가기 힘들다고 내게 한 권을 내밀었다. 찰스 패터슨의 <동물 홀로코스트>였다. 자기 전에 잠깐 읽어야지 하고 첫 장을 폈는데 마지막 장을 보고 말았다. 마음이 아팠고 무거웠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여럿이 둘러앉아 뭘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때마다 고기를 챙겨 먹는 것도 아니었고. 죄책감이 덜했다. 다만 백숙을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소곱창! 아 그래 소곱창이 있었지...
그렇게 한 해가 지났는지. 어느 날 체와 피자를 먹으러 가게 되었다. 그 식당은 악기점을 인수하고 인테리어를 바꾸지 않은 채 장사중이었다. 음식이 나오고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천장에 샹들리에처럼 매달려 있던 바이올린들을 보게 되었다. 바이올린들은 유아용부터 성인용까지 크기별로 동그랗게 열을 맞춰 매달려 있었고, 순간 나는 쇠고리에 매달린 죽은 동물들을 본 것 같았다.
시저 샐러드만으로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나는 한평생 고기를 먹지 않기로 다짐했다.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정하고부터 점차 외로워졌다. '너는 뭐 먹을거야?'라는 질문이 가장 두려워졌다. 내 선택이므로 책임도 내 몫이었다. 그렇지 않을 거면 어떤 식당에 갈지 내가 정해야 했다. 하지만 채식 메뉴가 포함된 식당은 많지 않았고 가격도 비쌌고 무엇보다 친구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약속 시간을 4시나 8시로 애매하게 잡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여러 사람들과 모여 먹는 걸 힘들어 했던 나는 집에서 혼자 끼니를 떼우는 일이 많아졌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도 많이 받게 됐다. 고기를 안 먹으니까 좀 건강해진 것 같아? 동물은 불쌍하고 식물은 안 불쌍해? 이~ 해봐라던 사람도 있었다. 육식을 하는 인간은 송곳니가 뾰족하다며, 내 송곳니가 뭉툭한지 궁금하다는 게 이유였다.
채식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판단하고 싶어하는 것은 비단 남들 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걸로 충분할까? 하는 생각이 언제나 들었다. 외식을 나가 생선을 먹는 나에게, 추운 겨울날 패딩을 입는 나에게, 마스카라를 칠하고 립스틱을 바르는 나에게 나는 계속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괜찮아? 왜 제대로 하지 않아?
가끔 푹 끓인 엄마표 백숙이 너무나 먹고 싶었고 친구들과 편하게 치킨에 맥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그보다 더 자주 나는 사람이 고팠고 아무 질문 받지 않아도 되는 식탁이 필요했다. 그리고 제대로 하고 싶었다.
영문도 모르고 태어나 무서운 소리를 듣고 무서운 냄새를 맡으며 좁은 공간에 갇혀 살아가야 한다면. 계속해서 털이 깎이고 살갗이 벗겨지고 주사를 맞고 아파해야 한다면. 그러다가 어느 날 영문도 모르는 채로 컨베이어 밸트에 올라타야 한다면. 그리고 그 끝에 쉭쉭 날아다니는 도끼와 망치가 있다면.
문득 행복한 날에 나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잔인했는지. 내가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나의 의식주가 다른 살아있는 것의 고통과 죽음으로서 존립하게끔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고민은 어떤 것을 먹고 어떤 것을 먹지 않을 것이냐를 넘어서는 고민이기도 했다. 이제 일은 훨씬 더 복잡해졌고, 나는 관계와 더불어 지금 살고 있는 공간까지도 한 차례 잃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곳을 떠나서 나는 잘 할 수 있을까? 아마 떠나봐야 알 것이었다. 나는 떠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