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성정치_1부. 가부장제의 고기 텍스트들
1장. 육식의 성정치
부시맨의 신화에서
권력을 쥔 자가 항상 고기를 먹었다. 유럽의 귀족사회는 온갖 종류의 고기로 가득한 요리를 소비했으며, 반면 노동자들은 합성 탄수회물을 소비했다. 식습관은 계급구분을 명확히 해주며 가부장제에 기초한 구분도 명확히 한다. 2류 시민인 여성들이 먹는 것-야채, 과일, 그리고 고기보다는 곡식-은 가부장제 문화에서 2류 식품으로 여겨진다. 육식에서 드러나는 성차별은 형식은 다르지만 계급차별로 되풀이된다. 고기는 남자의 음식이며 육식은 남성다운 행동이라는 신화가 모든 계급에 스며들어가 있다.
남성 정체성과 육식
육식사회에서 남성은 그 사회의 음식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을 확보하고, 고기의 텍스트들은 음식 선택과 남성 정체성 간의 이런 연관을 철저히 승인한다. [우리가 먹는 고기.1966]는 "자유로운 고기 공급이 항상 행복하고 사나이다운 인간과 연관이 있었다"고 쓰고 있다. [고기 기술.1977]은 "통구이 송아지의 머리에서 직접 골을 떠 먹는 것이 진정한 사내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음식과 성역할의 상관관계를 처음 접한 것은 무의식중이었지만 어린 시절 줄곧 들어온 옛날이야기에서일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왕은 집무실에서 티티새 스물네 마리(원래는 장난꾸러기들 스물네 명)로 만든 파이를 먹고 왕비는 빵에 꿀을 발라 먹는다는 이야기(헨리 8세부터 전해 오는 <6펜스의 노래>에 나오는 이야기)는 은연중에 남성적인 행위를 각인시킨다. 모든 나라의 전설을 살펴보면 괴물은 남자이자 "인간을 잡아먹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고기가 남성의 특권이라는 것은 성서에서도 발견된다. "사제들은 제단 앞에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무와 숯을 이용해 매우 정성들여 고기를 요리했다. 여자들은 고기의 맛을 볼 수 없었으며, 모세의 형이자 유대교 최초의 제사장인 아론의 아이들 중 사내아이들만이 맛을 볼 수 있었다."(여성의 시각에서 본 성경)
반면 채소와 고기 이외의 음식은 여성만이 먹는 음식으로 여겨진다. 수단의 누어Nuer족 남자들은 달걀 먹는 것을 사나이답지 못한 행동으로 여긴다. 다른 부족 남자들도 채소나 달걀을 먹을 때는 여자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소스를 곁들인다.
고기-남성만을 위한 것
근대화된 사회에서 요리책은 남자가 고기를 먹는다는 가정을 그대로 증명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요리책 대다수가 바비큐를 남성을 위한 특별 요리로 추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날 식사"로 추천되는 요리에 고기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날에 추천되는 음식에는 반드시 고기가 들어가며, 저녁식사로는 소 옆구리살을 재료로 만든 런던 브로일London Broil이라는 스테이크 요리를 추천한다.
20세기에 출판된 요리책들은 대부분 시대 상황의 변화를 반영하기보다는 19세기에 형성된 역사적 양상, 즉 영국 노동계급이 가족 전체를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고기를 살 수 없었던 때의 식습관을 답습하고 있다. 고대부터 내려오는 신화(남자는 고기를 필요로 한다. 고기는 황소같은 힘을 가져다준다)를 신봉하는 문화에서 고기를 먹는 것은 실제로 "가장"인 남자였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상황에서는 고기의 성역할이라는 전제들이 그다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부유한 영국 상층계급 내의 여성과 남성의 경우, 상층계급 여성과 노동계급 여성의 경우를 비교한 것보다 식사에 있어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더욱이 고기의 공급이 풍부했던 미국에서는 고기의 공급이 제한되지 않는 이상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다.
고기의 인종 정치학
미국과 서구 세계의 식사를 특징짓는 육식은 남성 권력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인종주의의 지표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인종주의는 백인들이 권력 배분과 관습에서 우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유색인들에게 이런 자신들의 우월성을 인정하도록 강제하는 수단으로 백인의 육식 습관을 내세운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육식과 관련해 서구 세계의 백인이 인종주의를 수단으로 삼은 이유에는 두 가지 유사한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우선 고기의 공급이 제한된다면 백인만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신념이고, 반대로 고기가 풍족히 공급된다면 모든 인종이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육식의 성정치학이 다루고자 하는 본질적인 대상 중의 하나다. 고기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과정에서 설정되 이런 위계 관계가 인종, 계급, 성의 위계를 강제한다.
19세기에 백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고기를 고상한 음식으로 간주했다. 당시 외과의사로 중간계급의 질병을 조사했던 미국 신경학의 선구자 조지 비어드에 따르면, "정신노동자들"은 주식으로 기름기를 뺀 고기를 먹었지만, 사회의 "미개"한 "하층"계급들은 기름기 없고 영양가 없는 조잡한 음식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비어드는 당연히 음식에 대해서도 진화론에 기초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동물성 단백질이 인간이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인 인류로 진화하는 데 채소보다 훨씬 중요했다는 것이다. 비어드는 이런 인종주의적 분석에서 진화론이 갖는 명백한 모순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진화론에 근거해, 어떻게 이 미개인들은 동물성 단백질을 다량으로 섭취하지 못했는데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미개인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세계를 지적으로 우수한 육식자들과 열등한 채식자들plant eaters로 나누는 것-이 영국인이 다른 문화를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을 정당화하는데도 이용되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육식이 서구 전역으로 확대되는데 크나큰 기여를 했다. 1940년대 한 육류 기업의 홍보 담당자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폈다. "우리는 고기를 먹는 인종이 인류의 진보와 좀 더 높은 지위를 향해 세대를 이어온 투쟁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종주의는 고기가 최상의 단백질 원천이라는 생각 속에 항상 내재되어 있다. 영양 측면에서, 동물성 단백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단백질을 대부분 채소와 곡물에서 얻어온 문화들의 유구한 식문화를 왜곡하는 것이다. 채소와 곡물 식사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육식의 문화적, 정치적 우월의식으로 인해 억눌려 있다.
고기가 왕이다
전쟁 동안 정부의 배급정책은 대개는 남자, 즉 군인을 위해 고기를 확보해 두는 것이다. 음식을 차리는 일은 여성들의 몫이다. 군대 문화가 사병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맞춰져야 하듯이, 가부장제 문화에서 아내는 남편이 요구하는 식사, 특히 고기의 경우 남편의 입맛에 맞게 요리해야 한다.
노동하는 남자가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고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통념이다. 이것과 비슷한 또 다른 통념은 힘 센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것에 비례해 강해질 수 있다는 미신이다. 우리는 글자 그대로 남성 권력이 환기시키는 것을 이런 고기의 관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고기는 왕이다. 고기를 지칭하는 이 왕이라는 명사는 남성 권력을 지시한다. 육식가들이 고기 이외의 다른 음식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인 채소는 고기가 남성과 연관되듯이 여성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는, 여성이 채집자였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여성이 남성이 지배하는 육식 세계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이 먹는 음식 역시 남성 지배에 종속되어 있다. 이류 시민인 여성의 음식은 열등한 단백질로 간주된다. 여성이 자립적이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것처럼 우리는 채소가 그 자체로 식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담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노예인 채소는 자신이 타고난 운명에 만족해야 하며, 왕인 고기의 자리를 탐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여성이 스스로 왕이 될 수 없을 때, 과연 누가 여성의 음식을 왕위에 앉힐 수 있을까?
성 불평등/종 불평등
무엇이 고기를 남성 지배의 상징이자, 이 지배를 찬양하는 데 이용되도록 만들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성 불평등이 육식이 선포하는 종 불평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한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대다수 문화에서 고기를 수중에 넣는 쪽은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고기는 가치 있는 경제 상품이었다. 이 상품을 통제하던 사람들이 권력을 획득했다. 그리고 남자들이 여성들에 비해 훌륭한 사냥꾼이었기 때문에, 이 경제적 재화를 통제하는 일 역시 남자들의 수중에 놓이게 되었다. 전근대 사회들에서 여성의 지위는 고기의 사회적 비중과 반비례 관계에 있었다.
인류학자인 펜실베니아대학의 페기 산데이Peggy Sanday 교수는 농작물 경작에 토대를 둔 경제와 여성 권력 간에 상관성이 있고, 가축이나 동물에 기반을 둔 경제와 남성 권력 간에 상관성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동물 소비에 주로 의존하는 경제의 주요한 특징은 아래와 같다.
노동의 성차별.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만 이들의 일은 별로 가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성들은 육아에 대한 책임이 있다.
남성 신 숭배
부계사회
"채소"-여성 수동성의 상징?
"남성"과 "고기", 현재 이 두 단어는 사전적으로 매우 한정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고기는 이제 모든 음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man이란 단어가 더는 여성들women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기는 [미국 역사유산 사전]에 의하면, '어떤 것의 본질 또는 중요한 부분the essence or principal part of something'으로 정의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의 본질meat of the matter', '핵심 질문a meaty question'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어떤 것을 'beef up'한다는 것은 '향상시킨다, 보강한다'는 것을 뜻한다.
반대로 '채소 같다'라는 표현은, '수동적인 것, 따분한 것, 또는 단조로운 생활, 활기 없는'등의 뜻을 갖고 있다. 식물처럼 생활한다는 것은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이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1988년에 민주당 듀카키스 후보와 공화당 조지 부시가 격돌한 미국 제41대 대통령 선거를 예로 들어 보자. 각 진영의 대선 후보들은 채소를 빗대어 상대방을 비하했는데, 이것은 채소에 대한 가부장제적인 경멸을 그대로 보여준다. 듀카키스는 "야채 요리 같이 밋밋한 후보the Vegetable Plate Candidate"로 불렸다. 노던 썬 머천다이징 사는 '조지 부시: 채소인가 독초인가?'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그리고 '영양학 퀴즈: 다음 중 어떤 것이 채소일까요?'라는 문구와 레이건의 초상화를 새겨 넣은 티셔츠도 배포했다.
고기는 가부장제의 상징
저명한 인류학자인 매리 더글러스Mary Douglas는 자신이 쓴 [식사의 분석.1975]이라는 논문에서 음식을 차리는 순서와 식사때 반드시 내놓아야 하는 음식이 우리 문화의 등급화라는 문제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식사는 디저트로 시작하지 않으며, 수프를 마지막에 먹지 않는다. 모든 식사는 나오는 순서가 정해져 있으며, 주 요리는 항상 고기다. 이 패턴을 따르는 것이 한 사회의 문화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식사 때 주 요리인 고기를 주문하지 않는 것은 거대한 가부장제 문화의 구조를 위협하는 것이다.
소설가 매리 맥카시Mary McCarthy가 쓴 [버즈 오브 아메리카]에는 고기를 고부하는 여성에게 으름장을 놓는 한 남성이 묘사되고 있다. 맥카시의 묘사는 군대의 전투 행위와 연관된 전쟁 풍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장군은 백병전에서 손에 무기를 들고 싸우듯이, 고기 국물을 뜨는 국자를 손에 확 움켜잡았다." 식사 뒤 베트남전을 놓고 설전을 벌이던 와중에 "민간인에게도 신성한 전쟁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소녀가 질문을 던지자 장군은 당연히 베트남 폭격을 옹호하고 나선다. 장군의 부인이 남편의 무례한 행동을 대신 사과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미 눈치챘지만, 당신이 올려준 음식을 거부하는 소녀를 보고 화가 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채식주의자가 된 남자들은 남성의 역할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것-예를 들어, 고기 섭취-을 거부한다. 1836년에 그레이엄주의Grahamism로 알려진 당시의 채식주의 요법에 대해, 뭇 남성들은 "남성들의 거세가 그레이엄주의의 첫 번째 결실"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뉴욕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절 믿으세요. 사나이다움의 종말은 남자에게 있어 중요한 것의 종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언급이 함의하는 모든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