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실천해 왔던 채식주의는 내가 추구하는 페미니즘과 거의 관련이 없었다.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육식의 성정치] 초판 서문의 첫 문장이자 1975년 메리 데일리가 진행한 페미니스트 윤리학 강의에 제출한 논문의 첫 문장.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 간의 관계로 말해진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인간과 다른 동물 간의 사회적 관계 또는 구조를 밝히는 분석 도구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산드라 L. 바르트키(Sandra L. Bartky)는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보다도 사물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반대로 "페미니스트들은 동일하게 보이는 것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페미니스트의 의식은 모험일 수도 있으며, '사실'을 '모순'으로 바꾸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필라델피아 주의 한 가족 공동체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식습관과 생활비 문제 그리고 사실 요리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수동적이고 모순적이지만 육식가이기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다음에 이사하게 되면, 반드시 채식주의자 가정으로 이사하겠다는 결심은 하고 있었다. 다음 해에 곧바로 그런 기회가 와 보스턴으로 이사했다. 보스턴으로 오자마자 나는 <케임브리지 여성센터>가 운영하는 게시판의 주거정보란을 통해 페미니스트-채식주의자 두 명을 알게 되어 같이 살게 되었다.
나는 페미니스트적 맥락에서 채식주의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에 기반을 둔 모계제가 육식에 기반을 둔 가부장제에 의해 전복되었다는 굴드 데이비스의 주장, 채식주의자였던 19세기의 수많은 페미니스트들, 예를 들어 샬롯 퍼킨스 길먼이 쓴 [여자만의 나라]등을 통해 채식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987년에 나는 남편과 함께 댈러스로 이사했다. 댈러스로 오는 길에 이틀째 밤을 아칸소주에서 묵었다. 이날 밤 나는 마가렛 호만스가 쓴 [여성, 단어를 낳다]를 읽고 있었는데, 이 책의 처음 몇 페이지에서 '부재 지시대상absent referent'이라는 개념을 발견했다. 나는 잠시 읽기를 중단하고 책을 내려놓은 채 이 개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부재 지시대상'-이 개념은 고기를 먹는 동물들, 즉 인간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 나는 이 '부재 지시대상'이라는 개념이 여성과 동물에게 동시에 가해지는 학대를 서로 연결지을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육식의 이면에 부재하는 것, 그것은 음식으로 먹힐 고기를 남기고 죽는 동물의 죽음이다. '부재 지시대상'은 육식가를 동물과 분리하고, 동물을 자신의 최종 생산물인 고기에서 분리하는 것이었다. '부재 지시대상'의 기능은 우리가 먹는 "고기"를 '그 남자 또는 그 여자가 한때 살아있는 동물이었다'라는 생각에서 분리하는 것이자, "음매" 또는 "꼬꼬댁" 또는 "매~" 등의 울음소리를 고기와 분리하는 것, 그리고 어떤 것what을 어떤 사람who으로 간주되는 존재와 분리하는 것이다. 고기의 현존이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죽은 동물의 존재와 분리되는 순가네 "고기"는 그것의 원래 지시대상(동물)에서 떨어져 나와 자유롭게 움직이는 이미지가 되고, 이 이미지는 여성의 상태뿐만 아니라 동물의 상태를 지시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동물은 육식 행위에서 부재하는 지시대상이다. 한편 동물은 도살되고, 정형[고기를 부위별로 나누는 것]되고, 또는 소비되는 여성의 이미지에 대한 부재 지시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