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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저냥 ㅏ랑 Nov 03. 2018

Mitski [Be the Cowboy]


미츠키의 새 앨범 [Be the Cowboy]에 대해 '너무 짧다'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행위다. 지금까지의 그의 작품들 중 이 앨범이 32분 28초라는 가장 긴 러닝 타임을 갖고 있으니 물리적/사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Be the Cowboy]가 유독 짧게 느껴지는 이유는 앨범을 이루는 총 14개의 트랙 중 2개를 제외한 모든 트랙이 1~2분대의 곡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많은 미츠키의 노래들이 그러하니 개별 곡이 2분대라는 것 자체는 별 일이 아니나, 그 길이의 곡들로 앨범을 가득 채웠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사태다. 이런 곡 길이가 '보편적'인 하드코어 펑크에 천착하는 앨범도 아닌데 기타팝(A Pearl), 발라드(Come into the Water), 케이트 부시식의 아트 팝(Geyser), 디스코(Nobody), 신스 팝(Washing Machine Heart), 포크(Lonesome Love) 등의 다양한 장르를 유연하게 가로지르면서 이 모든 장르를 1~2분대의 길이에 욱여 넣는 -당신은 2분짜리 신스 팝을 얼마나 들어봤는가?- 미츠키의 강박은 대체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혹은 이렇게 말해보자. 지금 1~2분대 곡들로 앨범을 채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너무 짧다'는 말의 발화자로선 상찬을 의도했겠지만, 실은 발화자는 미츠키의 강박의 의미에 대해선 차마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당연하지만 미츠키는 "빠르고 싸고 통제 안 되는(Fast, Cheap, & Out of Control)"으로 설명할 수 있을 하드코어 펑크의 어법을 빌리고자하는 생각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장르에 있어 지나치게 '보편적'인 것, 즉 매너리즘화되었기 때문이다.1 미츠키의 강박은 다른 장르(의 방법론)에 귀속되려는 갈망이 아니다. 그런 매너리즘이야말로 미츠키가 가장 경계하는 대상이며2, 그의 주된 관심은 오히려 개별적인 장르보다 더 넓은 범위, 바로 시대를 향한다. 차트 상위권을 채우는 곡들의 길이가 나날이 길어져 4분대가 평균의 위상을 획득하고 앨범의 긴 러닝타임이 곧 미적 야심을 증명하는 지표가 되는 등 적당한 '팽창'이 야심을 지닌 음악가라면 응당 취해야 할 '보편적'인 태도가 된 때에 미츠키는 그 '보편적'인 방식을 뒤집어, '팽창'의 추구가 아니라 '보편'이라는 명명 주변을 맴돌고 훑고 심지어는 핥으면서 철처하게 주의하는 것만이 진정 야심다운 야심임을 과묵하게, 강박적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어떻게? "짧게 느껴지는" 앨범을 만듦으로서. 여기서 중요한 말은 '느껴진다'이다. 실로 [Be the Cowboy]를 채우는 1~2분대의 곡들은 어떤 곡들의 단순한 절verse-코러스 구조와 엮이면서 청자를 작금이 아니라 이런 짧고 단순한 곡/앨범 구성이 '보편적'이었던 시대, 곧 대중음악이 '팽창'이 아닌 단순명료함으로도 이례적이고 신기한 것으로 여겨지던 때의 시간 경험으로 이끌고 있지 않은가. 앞서 제기한 질문에 뒤늦게 답을 하자면, 지금 1~2분대 곡들로 앨범을 채우는 형식적 차원의 시도는 5~60년대의 경험을 기꺼이 재조직하겠다는 비장한 반시대적 태도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미츠키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까 미츠키의 야심은 5~60년대에의 (통상적인 의미에서) 재현이 아니다. 5~60년대에 디스코나 신스 팝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혹은 현대에도 2분짜리 신스 팝이 매우 흔치 않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사실일 터이나, 그에게 이는 조금도 이상한 사태가 아니다. 5~60년대라는 시대와 그 시대(의 음악)을 이루던 낙천성은 이미 지나가버렸고, 그 경험의 일부-형식을 에둘러, 일시적으로 재조직할 수는 있겠지만 그 시대에 전적으로 귀속되는 것은 창작가 개인이 지양하고 말기 이전에 불가능하다. 미츠키는 그 불가능을 인지하고서, 불가능 자체를 이중성으로서 자기-조건화하여 아예 타임라인에 존재한 적 없는 방식, 다시 말해 과거와 현대의 청취 경험의 기괴한 절합을 조직하는 탈시대적 태도로 나아가는 것이다. Happy같은 곡에서, 어쩌면 데뷔작인 [Lush]에서도 이미 희미하게 예견되었던 것이지만, 미츠키는 (이 말의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장르에 국한되지 않으면서 지난 시대의 음악들이 남긴 유산을 (그저 되풀이하는 걸 넘어) 착실하게 상속하고 엄격하게 탐구하여 혼란스럽게 가공한다. 초탈도 과잉도 흥도 아닌, 그 모든 감정의 양태를 '적확하게 비스듬히' 비켜가며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멜랑콜리가 형식의 절합 부위를 마름질하기 위한 필연적인 '제의'임은 이제 당신도 알아차렸으리라. 물론 불가능성의 완강함 속에서 이런 불안정한 형식이 항구적으로 지속 가능할 리 없다. 코러스의 달콤한 하모니 없이 외롭게 노래를 부르고, '무려' 4분의 Two Slow Dancers로, 희뿌연 신스의 안개 속에서 침잠하듯 앨범을 끝내는 '비극적' 제스쳐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드라마틱하길 거부하는 곡들의 집합이 결과적으로 비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고 만다는 '시대적' 아이러니. 그리고 그것이 [Be the Cowboy]의 아이러니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히 감미롭기까지한 '역사적' 충격이다. 그 점에서 이 앨범을 비장한 모험의 기록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으리라. [Bury Me at Makeout Creek]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 오래된 신성이 드디어 누구도 범점할 수 없는 위대한 음악가로 발돋움했음은 누구에게든 틀림없는 사실로 피부에 닿을 것이다. 


각주



1. 여담이지만, 그 점에서 데드 케네디스의 [Frankenchrist]는 제도화되려하는 조류를 거슬러 한 순간도 펑크다우려 하지 않는, 처절한 자기파괴의 흔적으로 절절하게 감동적인 '폐허'이다.


2. Tiny Mix Tapes의 필자 숀 해나는 "이 앨범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미츠키)가 인디 록의 주변부에서 다른 장르의 특징들을 해부하는 방식이다"라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 그가 "해부"라는 말을 쓰기 위해 "analyze"가 아니라 "vivisecting"라는 단어를 끌어들인 이유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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