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혹은 변덕스러운 픽션의 삶」
김영사에서 앤솔로지 『라임 앤 리즌 2호: 오컬트』가 출간됐다. 『라임 앤 리즌』은 "혼란스러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색안경이자 문화적 충분조건으로 ‘장르Genre’를 설정하고, 이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담고자" 매 호마다 다른 필자 3명의 길고 상세한 글을 싣는 무크지로, 출판사 서평에 따르면 "과연 오컬트의 부흥을 또 다른 문화적/인간적 몰락의 징후로 볼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함께 이번 오컬트 특집을 기획했다고 한다(여담이지만 커버 디자인이 정말 마음에 든다). 이번 호에는 사진가 임효진, 소설가 최추영, 그리고 내가 참여했으며, 내 몫으로는 「오컬트, 혹은 변덕스러운 픽션의 삶」이란 긴 글을 실었다.
글의 제목에서도 드러난 것이지만, 여기서 나는 "유럽의 신비주의적 사유와 동아시아의 민속신앙 등등을 오늘날에 포괄적으로 오컬트로 호명하는 것이 얼마나 합당한지 따져보는 동시에, 그런 호명이 어째서 어떻게 가능해진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문예 장르 혹은 문화적 기호군으로서 보다는) 픽션으로서의 오컬트에 대한 분류학적 분석을 내놓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 픽션이란 무엇인가, 또 오컬트는 어떤 픽션인가, 그리고 여기서 믿음은 어떻게 활동하는가. 지금껏 내가 발표한 것 중 단연 가장 긴 분량의 글이긴 하지만, 이 육중한 문제들을 숨가쁘게 건드리고 지나가느라 저자인 내게는 야심에 비해 좀 짧은 글로 느껴진다. 하여 윤아랑의 첫 픽션론 정리 정도로 너그러이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특히 아쉬운 것은, 나의 주된 비평 방식인 분류학을 글 전체에서 줄곧 반복하다보니 전개에 있어 답답하고 늘어지는 느낌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글의 주 집필 시기에 사적으로는 국가적으로든 재앙에 가까운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는 데서 기인하지만, 그 이전에 나의 질적인 부족함에서 기인하기도 하는 것 같다. 하나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오컬트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부분이 있으리라고 감히 자신해본다. 특히 오컬트를 하나의 개념으로 다루는 데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는 데에선 나름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여튼 늘 그렇듯, 재밌게 읽히길 바라고 있겠다.
아래는 서설 격인 1장이다. 참고로 각주는 전부 뺐으며, 여기 첨부한 이미지들은 책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1.
오컬트란 낱말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발음이나 그것이 지시하는 세계관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이상한 건 순전히 이 낱말이다. 어디서든 쉬이 마주치고 거론할 수 있다고 해서 이상하지 않은 건 아니며, 오히려 그런 상황이 오컬트란 낱말을 더더욱 이상하게 만든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이상함이란, 언어로서 그것의 고정성이 갈수록 모호해진다는 데서 기인한다.
오늘날의 우리는 초자연적 존재와 세계관을 오컬트로 통칭하곤 한다. 귀신, 요괴, 괴물, 정령, 악마, 그리고 외계인 등등… 그런데 원래 오컬트라 불렸던 대상들과 이들은 큰 차이가 있지 않나? 이 단어가 공개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16세기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으로 고개를 돌리면, 하인리히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Heinrich Cornelius Agrippa)와 블레즈 드 비즈네르(Blaise de Vigenère)가 각각 선언한 ‘오컬트 철학’(1510)과 ‘오컬트 과학’(1586)의 경우가 일러주듯 본디 (연금술과 점성학 등을 필두로 한) 오컬트는 “기독교 신학의 요소를, 고대 이집트의 마법 이론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천문학과 연금술에 이르는 다양한 비기독교적 전통과 결합한 (…) 역사적으로 서로 자주 대립했던 다양한 지적 전통의 혼합체” 로서 신비주의적 사유 체계를 이르는 낱말이었다.
한편 우리가 흔히 쓰는 방식이 저 낱말에 씐 것은 가까운 1970년대로, 1960년대 서구의 대항문화(Counter Culture) 세대가 뉴에이지를 비롯한 신비주의적 코드들을 흡수 및 활용한 것의 연장선에서, 이 시절에는 하드 록 앨범 《Led Zeppelin IV》(1971)나 영화 〈엑소시스트(The Exorcist)〉(1973)처럼 대놓고 오컬트를 소화한 대중문화의 작품들이 엄청난 흥행을 거두고, 악마를 비롯한 초자연적 존재들을 조명하는 잡지가 대거 출몰하는 등 오컬트가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고 널리 퍼졌다. 이렇게 오컬트와 보편적인 문화 산업이 결합한 형태를 오컬쳐(Occulture)라 부르며, 여기에는 전통적인 오컬트뿐 아니라 (아랍과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동양의 (민속)신화, 대체 과학, 그리고 외계인 음모론 등이 갈수록 더해지고 뒤섞여 갔다. 달리 말하자면, 현대에 들어선 오컬트는 사유 체계가 아니라 특정한 문화적 코드의 불균질한 집합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엔 또 어떤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의 만화/애니메이션 〈단다단(ダンダダン)〉(2021~/2024~)같은 경우가 극단적으로 보여주듯, 이제 오컬트는 (이 집합이 흔히 지시하는) 공포에의 공통감각(Common Sence)에서 시작하되 그것을 낱낱이 해체하여 모에화(萌え化) 혹은 밈화(memeification)하려는 시도들에 의하여, 순전히 다양한 창작을 위한 소재군(群) 중 하나가 되었다. 즉 귀신이나 악마는 무서울 때도 있지만 웃길 때도 있고 성적으로 ‘꼴릴’ 때도 있는, 완전히 세속화된 대상이 된 것이다. 이렇게 오컬트는 갈수록 모호한 이합집산의 개념이 되어간다. (오컬트의 역사적 용법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은 뒤에서 보충하도록 하겠다) 간단한 비교 속에서 이제는 당신께도 이 이상함이 이해되었을 것 같다. 물론 그 어떤 언어도 고정적일 수 없으며 발화자 개개인에 따라, 혹은 문화권과 시공간에 따라 매번 차이를 갖고 활용되긴 하나, 오컬트는 분명 그중에서도 두드러지게 모호한 편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작 ‘옛날의 오컬트와 지금의 오컬트는 다르다’라는, 정말이지 하나 마나 한 말을 하려고 이렇게 글을 시작한 건 아니다. “오컬트 자료들을 변용한 것들 가운데 일부는 하찮고 경박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컬트 사상은 탄력적이며 쉽게 변용될 수 있다”라는 피터 포쇼의 말을 그대로 믿어보자면, 우리는 역으로 오컬트란 낱말이 어떻게 이 모든 양상을 하여튼 간에 아우르고 있는지, 혹은 왜 그럴 수 있는 지를 따져 물어야 하지 않을까? 달리 말해, 유럽의 신비주의적 사유와 동아시아의 민속신앙 등등을 오늘날에 포괄적으로 오컬트로 호명하는 것이 얼마나 합당한지 따져보는 동시에 그런 호명이 어째서 어떻게 가능해진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아가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모호한 이합집산의 성질이야 말로 이 ‘세속화 시대’(찰스 테일러)에 오컬트를 여전히 매력적이고 강력한 낱말로 만드는 게 아닐까? 예컨대 오컬트적 세계가 실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오컬트를 다루는 컨텐츠를 곧잘 즐기는 사람의 경우는 어떤가? 사실 이 질문들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나는 줄곧 오컬트적인 것에 엄청 집착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집착이라 할 수밖에 없을 만큼 귀신과 괴물이 나오는 책만 줄창 읽었고, 또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만 썼다. 그리고 유령이나 심령체험 따위의 초자연적인 것들을 진정으로 맞닥뜨리길 염원했다. 그래, 한때 나는 오컬트를 진심으로 믿으며 실재적으로 경험했던 게다.
한데 지금은 오컬트를 믿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오컬트를 다루는 컨텐츠들을 즐겁게 향유하고 있다. 때로는 인터넷을 떠도는 괴담을, 때로는 만화나 영화로 만들어진 무서운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말이다. 스스로의 상이한 태도가 이루는 연속적인 향유에 대해 궁금해하던 나는, 문득 믿음이라는 개념이 세간에서 너무 고정적이고 무겁게만 쓰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얼마나 역설적으로 들리든지 간에, 믿음은 어떤 무신론을 함축"한다고 주장한 자크 데리다를 따라, 광의의 믿음이란 의심과 불신을 동반하며 나아가 포함하리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세속화 시대'로서 근현대에도 불구하고 오컬트가 지속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근현대이기 때문에 오컬트가 새로운 생명력을 얻은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이 자리에선 오컬트라는 낱말/개념의 내외적 복합성을 따져보며, 그것이 이루는 관계들이 어떻게 오컬트를 '따로 또 같이' 동시대적으로 성립시키는지에 대해 논하도록 하자. 이 속에 숨어있던 여러 분류와 성격들이 우리의 논의와 함께 부상할 터이며, 이들 사이를 묶는 매듭은 다름 아닌 픽션(Fiction)이 될 것이다.
(이 다음부턴 책에서 확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