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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저냥 ㅏ랑 Jan 05. 2019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인터랙티브가 뭐라고

재생하고 한 5분 만에 확신했다. 이건 구리다. 정말 구리다. 넷플릭스에서 이걸 한다고 들었을 때, 그리고 줄거리를 봤을 때 '설마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진짜로 '게임 안'과 '바깥'을 관통하고 지배하는 어떤 의지를 (실제로 게임을 끌어들여) 게임'적'으로 구현하려 하다니. 심지어 전적으로 그것에만 집중한다니. 이런 걸 "실험"이라고 감히 말하는 기자들은 양심이 있다면 당장 기자직을 그만둬야한다. 필립 K. 딕을 끌고 올 필요도 없이, 2년 전 이종석 주연의 드라마 <W>도 이런 메타(적인 줄 착각하는) 테마 위에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대체 이런 게 하나 더 나와서 무슨 소용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단적으로 말해, 이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나온 인터랙티브 영화라는 점 외에 어떤 차별점도 없다. 


...만약 이 정도만 얘기하고자 했다면 굳이 이 글을 쓸 필요가 없다. 마지막 문장을 물구나무 세워보자.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의 차별점은 "넷플릭스에서 나온 인터랙티브 영화"라는 점이다. 나는 이 차별점을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냥 다른 것들에 대한 다른 점이 아니라, 이 드라마를 말 그대로 차별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과 <서치>는 세간의 평가 이상으로 많고 무거운 질문을 견딜 필요가 있다. 가령 아니쉬 채건디의 <서치>는 그 '판에 박힌' 재현에의 추구 속에서 디지털 시각 주체에 대한 흥미로운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게임'적'인 드라마, 그러니까 게임의 (형식이 아니라) 방식을 영화에 곧바로 접목시키려는 시도들은 참 많았고, 모두가 반짝이지도 못한 채 역사의 블랙홀에 처참히 빠져버렸다. 하지만 <밴더스내치>는 블랙홀에 곧바로 휩쓸리지는 않을 방안을 마련했는데,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블랙 미러>의 스페셜 에피소드로 '방영'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현재의 극장과 인터랙티브 영화 사이의 부조화가 아니다. 만약 <밴더스내치>가 다른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서 온라인상에 공개되었다면 지금같은 호응을 이끌어내는 건 고사하고 투자라도 받을 수 있었을까? <센스 8>, <절멸Annihilation>, <블랙 미러> 등 힙스터와 시네필과 정체성 정치의 시각문화적 창구로 자리잡은 넷플릭스는 우리의 매체 환경에 있어 '새로움'이라는 딱지의 분배를 거의 독점하고 있는 유일한 플랫폼이다. 달리 말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되고 이 타이틀에 걸맞은 나름의 '독특함'을 갖고 있다면 그 영상은 이미 '새로운' 것이다. 


물론 보리스 그로이스가 지적했듯 여기서의 "이미"란 사물/작품 자체의 '새로움'이 아니라 집단적 평가 속에서 자리매김한 '새로움', 탈역사적이며 독재적이려 하는 '새로움'이다. 개별 작품이 어떤 실험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는 큰 문제가 아니다. <블랙 미러>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게, <각성Disenchantment>도 (여하튼) 이전의 클리셰'적'인 것을 부정하고 있으니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다른 상황이긴 하나, 지금 국내 드라마 중 화제성을 독점하는 게 tvN이나 JTBC의 드라마라는 것을 떠올려보자. 개별 작품이 얼마나 판에 박혔는지와는 별개로, 이 방송국에서 방영된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사람들에겐 지상파 드라마 이상으로 화제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만약 MBC의 <붉은 달 푸른 해>나 <나쁜 형사>가 tvN에서 방영되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큰 반응을 이끌어냈으리라). 요컨대, 새로워보이는 방식을 차용한 작품들이 인기를 끄는 현상조차도 전혀 새로운 게 아니지만, 넷플릭스가 거기에 손을 댄다는 것이 거기에 새로움을 부여한다. 넷플릭스는 정말 현대 영상문화 담론의 전반을 지배하는 거대권력이 되고 있다.


인터랙티브 영화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에 접근할 때, 이 형편없는 드라마에서 흥미를 유발하는 몇 안 되는 요소 중 하나는 서스펜스가 생성되는 지점이다. 다른 영상물들에 비해 인터랙티브 영화라는 범주에만 더해진 서스펜스가 있으며, 이는 다름 아니라 '과연 여기서 선택지가 뜰까?'다. 시리얼 종류를 고르는 데에서부터 뜨는 선택지는 그 이후를 따라갈 관객-플레이어들, 스테판이 선택지의 폭풍 속에서 파국으로 향하는 걸 망연히 바라보아야 하는 관객들을 위한 모종의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특정한 목적들 사이의 대립에서 창출되는 관객의 감정이라는 점에서) 서스펜스에 기본적으로 소격 효과의 측면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일은 아니고 외려 모종의 반복이라고 봐야하지만, 인터랙티브 영화에서만 발생 가능한 서스펜스라가 분명 있다는 것은 나름 흥미로운 일이다. 만약 나중에 인터랙티브 영화가 '영화'의 영역에서 발전할 수 있다면, 그 발전의 가능성은 이 서스펜스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리지 않을까. 


또 흥미로운 건 선택지 결정 직후에 종종 뜨는 버퍼링이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와중에 알바처의 컴퓨터로 <밴더스내치>를 '플레이'했는데, 컴퓨터가 구식이라 그런지 몰라도 선택지가 뜰 때마다 버퍼링이 걸렸다. 버퍼링이 워낙 적절한 순간에 계속 걸리니 나로서는 의도된 장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생각을 좀 밀고 나간다면, 관객-플레이어의 결정에 따라 매번 파일이 새로 열리면서 생기는 이 유예시간은 가능세계간의 이행 와중에 생긴 마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밴더스내치>가 작품 내내 매달리는, 스테판과 관객-플레이어의 의지(라고 가정된, 강요된 선택지) 사이의 마찰과 공명하면서 후지기 짝이 없는 후자 이상으로 흥미로운 쟁점을 제기한다.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선택지가 뜰 때 때 화면이 살짝 어두워지다가 컷이 전환되는 건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카메라의 프레임으로 세계를 자른다는 것의 근본적인 의미가 무엇이던가? 


<밴더스내치>를 '플레이'하고서 <스모킹/노 스모킹>, <롤라 런>, <슬라이딩 도어스>, <사랑의 블랙홀>, <메멘토>에서 데이빗 린치와 홍상수의 작업을 거쳐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 이르는, '우발성의 필연성'에 기댄 전-인터랙티브 영화적 시도들을 반추하며 영화에 보다 치밀하게 스며들고 있는 '게임성'의 궤적을 쫓는 작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이미 누가 했거나 앞으로 나보다 더 치밀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 당장 내가 이 작품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이다. 다만 한 가지 의문. <밴더스내치>가 흥행한다는 가정 하에, 만약 이를 계기로 인터랙티브 영화 자체가 인기를 얻게 된다면 그 후에 만들어질 인터랙티브 영화들의 장소는 어디일까? 극장? 스트리밍 사이트? 그도 아니면 저장매체? 만약 극장이라면 4DX나 아이맥스 전용관처럼 인터랙티브 전용관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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