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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저냥 ㅏ랑 May 30. 2019

<김군>, 순수하지 않은

80년의 광주는 어떻게 재현되어야 하는가? 이는 근 40년 간 남한에 사는 수 많은 예술가들을 괴롭힌 질문이며, 영화 역시 이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80년의 광주를 '직접' 맴도는 ('대중적') 사례는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가 출발선을 그은 이후 30년 간 11편 정도로, 사건의 특수성에 비하면 그 수는 적은 편이며 또한 개별 영화들의 접근 방식 역시 좋지 않았다. 물론 '그 유명한' <꽃잎>과 <박하사탕>을 보았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참극을 순수에의 침탈로 이해해 그 순수의 상징에 참극의 역사적 무게를 전가하고서 연민하는, 나쁜 남성중심 수난극의 전통을 재생산할 뿐이었다. <택시 운전사>는 단지 그 재생산된 이미지의 재생산물이며, <화려한 휴가>는 이념적 순수성에 일관되게 집착하는 빈곤한 영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영화는 80년의 광주를 윤리적 부채감의 대상으로서 주로 재현했다. (문득 떠오르는 <화려한 휴가>의 대사, "우리를 잊지 마세요")


이는 80년의 광주가 진실이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판단의 결과이기도 하겠으나, 그보다는 광주라는 지역을 80년의 광주로 못 박으려는 관점이 지나치게 힘이 센 결과일 테다. 순수한 이들이 순수한 목적으로 싸워 순수하게 상처입은, "민주화의 성지"로서의 80년의 광주. 하지만 (혹은 그래서) 여기서 그 이외의 광주, 심지어는 동시대의 광주마저도 끼어들 틈은 사실상 없다. 이는 지역 자체를 순수성의 영토로 고착시킴으로서 그 순수함을 (뒤늦게라도) 기억하는 '우리'를 도덕적으로 고양시키려는 천박한 정파적 목적의 결과다. 여기서 조금 나아가면 우리는 광주를 '표밭'으로 인식하는 민주당계 정치인들이나 "광주에 있는 대학은 5월에 축제를 하지 않는다"는 정의감에 찬 루머를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다. 한국 영화감독들 중 임상수만이 이를 감지하고서 <오래된 정원>에서 순수라는 게 실은 386이 구성한 알리바이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간접적으로 제기했지만, 그 역시도 80년 광주를 자꾸만 회고적 시공으로 취급했다는 점에서 크게 실패했다. 이쯤되면 짜증스럽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순수하지 않은 광주를 직시할 수는 없단 말인가?


그 짜증 속에서 <김군>을 2번 봤다. 정확히 말하면 3번의 관람 경험에서 두 개의 편집본을 봤다. 의상 정식 개봉 이전에 영화제용 판본을 선편집본, 개봉용 판본을 후편집본으로 부르자. 영화의 기본 전략은 두 판본 모두에서 동일하다. '제1광수'라 이름붙여진 사진 속 남자에게 '김군'이란 이름을 돌려주려는 큰 뿌리를 내리면서 그와 같은 순간을 산 이들,  다중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작은 뿌리를 뻗치기. (하지만 본작의 감독 강상우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야한다 생각한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김군> '이들이 증거요 곧 역사다'라는, 간단하고도 순진하며 진부한 '윤리적' 결론을 태연하게 외치려는 영화라는 건 아니다. "다중"이라는 말을 쓴 것은 <김군>의 인터뷰가 80년의 광주를 경험의 유사성을 근거로 하나의 화살표 안에 집어넣으려는 대신 교란시키도록 배치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김군>은 이전의 80년의 광주 영화들의 실패를 쇄신하려한다.


지만원의 조악한 논리를 반박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 그 반박이 정확하려고 하면 할 수록 광주 자체를 "민주화의 성지"로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지만원의 주장에 반박한답시고 사진 속 인물을 찾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오기철의 말로 이를 명확히 한다. 그 대신 전두환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 시민들의 응원과 지원을 얻기 위해 총을 든 이, 트럭 위에서 해방감을 느낀 이, 자신에 대한 기록을 거부하는 이, 그리고 넝마주이들 등 '민주적 대의'와는 상이한 개인들 역시 80년의 광주 속에선 항쟁의 동지''다는 (당연하지만 외면받은) 사실을 우직하게 향하는 이러한 배치는, 그 말의 가장 정확한 의미에서 80년의 광주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란 사후적인 의미도, 진상규명이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현재적인 의미도 아니라, 80년 5월의 경험이 어떻게 서로 다른 벡터의 개인들을 하나로 만들어 그들의 삶을 바꾸었는가 라는 역사적인 의미다. 조연출 안지환이 "차 몰고 다니시다보면 당시 그 곳도 지나치곤 하실텐데 그 때 당시 생각이 나지 않으세요?"라고 물어보는 건 바로 그런 의미에서이다. 이 때 '김군'이라 불리는 사진 속 인물은 그 존재 공백으로써 사람들과 역사로부터 말을 끌어내는 맥거핀적 기호, 곧 말 그대로의 유령으로서 작동한다.


두 판본이 크게 갈라서는 건 '김군'의 유력한 후보로 이강갑이 등장할 때이다. 선편집본은 이에 대한 추적을 클라이맥스로 삼아 긴 시간을 할애해 서술한다. 이강갑 '김군'인가? 그는 어떻게 살았는가? 하지만 그가 '김군'이 아닐 수 있다는 증언이 제기되고, 이 순간 영화에는 모종의 긴장감마저 감돈다. 그런데 후편집본에선 이 부분많이 쳐내 거의 긴장감없이, 건조하게 진행는데, 흥미로운 건 이러한 무드의 차이 정서의 강도 차이를 넘어 결론의 차이를 지향한는 것이다. 장 씬 이후의 전개를 떠올려보라. 이렇게 할 수 있다. 기본 전략에서 선편집본은 유령으로서의 '김군'의 작동원리에 보다 집중한 결과이고, 후편집본은 "80년의 광주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에 보다 집중한 결과다. 이 점에서 영화 후반부에서 다시 보이는 (넝마주이들이 살았던) 다리 밑의 풍경 이미지는, 학살당한 시민군의 시신을 찾을 수 없다는 통화 음성까지 동일하게 구성되었으나 앞뒤 맥락의 차이에 의해 두 판본 사이에서 다른 의미를 창출하는데, 선편집본에선 그것이 유령을 붙잡지 못하게 하는 정치적 상황에 대한 (자신의 탈구된 역사성으로써의) 증언으로 작동한다면 후편집본에선 나아가 그 정치적 상황이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반복될 수 있음에 대한 역설로 작동하는 것이다. 물론 이 반복은 자국민을 탄압하는 권력의 논리의 재림에 관한 것인 동시에 그에 대한 투쟁의 몸짓에 관한 , 즉 이중화된 반복이다. 풍경 이미지 바로 다음에 80년의 광주 당시 사람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던 주옥이 30여 년 뒤 항쟁 희생자와 세월호 희생자 영정 앞에서 이를 반복 때, 우리는 이를 절절히 실감한다. 그렇게, <김군>의 두 판본은 '지금-여기'서 80년의 광주를 대하려는 두 가지 태도를 구현다. 그것이 굳이 영화의 두 편집본을 함께 말한 이유이며, 그렇기에 후편집본이 공식적으로 공개된 판본이라고 해서 선편집본이 마냥 기각되었다 여기고 싶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두 판본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 이 글을 읽은 뒤 곽영빈 평론가의 논문 「애도의 우울증적 반복강박과 흩어진 사지의 므네모시네 : 5·18, 사면, 그리고 아비 바르부르크」를 찬찬히 읽어보시길 권한다. 본 논문은 (아무리 급하게 쓰여졌다 해도) 나의 글이 누락하거나 잘못 논하고 있는 중요한 지점들을 적확하게 논하고 있는, 반성을 내재적으로 요구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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