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저 트윗이 내 타임라인에 뜨자마자 보인 건 "韓国版「つげ義春作品集」" 뿐이었고,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곧장 우와 우와 소리를 육성으로 연발했다. 세상에, 쓰게 요시하루라니! 내가 아는 그 쓰게 요시하루가 맞단 말이야? 타카노 후미코의 「막대가 하나」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이상으로 놀라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쓰게는 자신의 작품이 번역되는 것을 꽤나 기피해왔기 때문이다. 「새만화책 VOL.2」에 <나사식>이 (조악한 식질로) 한국어로 번역되어 실릴 때까지, 그러니까 일본에서 그의 전집이 두 번씩이나 만들어질 때 그의 작품이 해외에 공식적으로 번역된 건 미국에 한 번, 프랑스에 두 번 뿐이었으며, 그마저도 한 번에 한 작품만이 공개되었다. 그 이후에도 아주 간헐적으로나 번역 소식이 들렸으니, 작품집을 작업 중이란 소식이 충격적일 수 밖에. 그가 <별리>를 마지막으로 (대안 만화 잡지 가로의 폐간과 동시에) 절필한 것이 1987년이다. 무려 30여 년만의 경사라 하겠다. 이글루스 출신의 만화 번역자/편집자 '대산초어'님이 관여했을 것이 뻔한 이 기획은, 그를 통해 쓰게 요시하루란 지평을 맞닥뜨린 모든 이들을 다시금 흥분으로 몰아넣으리라. つげ義春 팬페이지란 블로그를 짧게 운영한 분의 기분이 궁금하다.
그런데 찾아보니 올해에 쓰게를 번역 출간하겠단 계획을 공표한 출판사가 '다른' 해외에도 몇 군데 있어, 간략하게 정리해보았다.
미국에선 <늪>을 표제작으로 한 작품집을 내년 1월에 출간하는 것을 시작으로 총 7권에 달하는 작품집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대담한 기획이 아닐 수 없는데, 아무리 쓰게가 "전설적"인 만화가라 한들 이 "전설적"이란 표현은 그를 존경하는 표현인 동시에 그가 기껏해야 알음알음 알려진 일본 만화가임을 지시하는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7권 전부를 한 번에 계약해버린 그들의 '덕력'과 포부에 감탄과 부러움이 함께 터져나온다.
독일에선 더 나아가 올 10월에 쓰게가 66년에서 73년 사이에 가로에서 발표했던 작품 20개를 수록한 작품집을 출간한다. 왠지는 모르겠으나 이 쪽이 선택한 표제작 역시 <붉은 꽃>이다. 프랑스 쪽 출판사와 '국제적'인 공조를 한 건지 아니면 유럽인들의 공통적인 기호인지 잘 모르겠지만, <붉은 꽃>이 시쳇말로 적잖이 '빻은' 작품이라 생각하는지라 개인적으론 썩 내키는 결정은 아니다. 재밌게도 이 작품집은 그가 어시스턴트로 일했던 작가 미즈키 시게루의 <논논할멈과 나>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다. 아마 노렸겠지.
...이렇게 봤을 때, 2019년 들어 갑자기 쓰게 요시하루가 여러 국가에서 번역되거나 그럴 예정이라고 공표되는 것은 그의 고집이 어느 정도 풀어진 결과인 듯 하다. 노인네가 죽을 때가 된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하고. 물론 쓰게가 번역 출간된 작품집에 서문을 쓰기 전까진 짐작만 할 수 있지만. 그리고 한 가지 예상되는 건, 이 작품집이 출간되면 적잖은 말이 오가리란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쓰게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의 작품 속 '쪼그라든' 주체들이 갖는 힘은 여전하지만 다른 한 편 그 '쪼그라듦'을 위해 여성의 타자성을 잔뜩 짓눌러 매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의 작품 속 '빻은' 요소에 대한 다툼이 격렬하게 일어나면 좋겠단 생각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페이스북에 일본 대안 만화 관련 포스트를 운영하는 모 씨가 여기서 욕을 먹으면 좋겠다. 저런 '오타쿠'들은 정말 그만 보고 싶다.
하지만 번역 소식 때문에 적잖은 걱정도 생긴다. 지금껏 한국에 번역 출간된 일본 대안 만화들의 식자 작업이 대개 별로였기 때문인데, 가령 타카노 후미코의 「막대가 하나」에 대해선 이런 비판이 있고, 오카자키 쿄코의 <River’s Edge>는 너무 일그러진 글씨 폰트를 쓴 데다 원작에선 쓰이지 않은 마침표를 매번 붙였다. 게다가 「새만화책 VOL.2」 버전 <나사식>의 여러모로 낮은 품질까지 생각하면... 부디 이 작품집이 시장에서 좋은 선례가 되어주길 바란다.
아, 그리고보니 소설가 박솔뫼도 쓰게 요시하루의 대단한 팬인데, (불가능하겠지만) 그가 작품집의 추천사를 쓴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이 기획의 편집자께서 꼭 보시길.